금융감독위원회가 생보사 상장안을 8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지난 21일 참여연대·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생보업계 등 관련기관들이 생보사 상장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금감위는 이를 바탕으로 8월말까지 생보사 상장안을 내놓고 공청회를 열어 의견 조율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은 21일 참여연대·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삼성생명·교보생명·생보협회·보험학회 등 11곳에서 생보사 상장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 받은 상태다.
그러나 상장 차익 처리를 둘러싼 시민단체와 생보업계 양측의 입장이 99년 1차 논쟁 때의 상황과 거의 비슷해 조율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생보사는 ‘상호회사’인가, ‘주식회사’인가?
생보사 상장과 관련된 논란의 핵심은 생보사의 성격에 대한 해석의 차이다.
| | | 상호회사와 주식회사 | | | | '상호회사(相互會社)'란 사원간의 상호보험을 목적으로 하여 보험업법의 규정에 따라서 설립된 특수 사단법인을 말한다.
상호회사는 보험관계를 전제로 하여 사원관계가 성립되는 비영리법인으로서, 상호회사의기금은 자본금이 아니라 사원들이 공탁한 담보자금이다.
상호회사의 설립에는 100명 이상의 사원이 있어야 하며(보험업법 44조), 보험사업에서 발생하는 손익은 상호회사에 귀속되며, 그 이익은 사원에게 분배한다.
상호회사도 규모가 커지면, 운영·조직에서 상법상의 주식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정관의 변경이나 회사의 해산 등은 모두 상법의 규정을 준용한다.
'주식회사(株式會社)'란 주식의 발행으로 설립된 회사를 말한다.
사원인 주주의 출자로 이루어지며 권리 ·의무의 단위로서의 주식으로 나누어진 일정한 자본을 가지고 모든 주주는 그 주식의 인수가액을 한도로 하는 출자의무를 부담할 뿐, 회사채무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따라서 주식회사의 근본적 특색은 자본과 주식과 주주의 유한책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식회사는 어디까지나 회사의 일종이기 때문에 사단법인이며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 또 사원의 개성과 회사사업과의 관계가 극도로 희박하여, 실질적으로는 자본 중심의 단체이며 물적회사의 전형이다. 자본은 회사가 보유할 재산액을 표시하는 것이며, 실제로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재산의 총체인 회사재산과는 다르다. (두산백과사전 참고) | | | | |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국내 생보사들은 배당상품을 계속 판매해 왔고 계약자들은 경영이익과 함께 위험까지도 공유해 왔기 때문에 ‘상호회사’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장으로 발생하는 차익을 보험계약자와 주주에게 공평하게 주식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의 경우, 지난 40년에 걸쳐 유배당 계약자들의 보험료에 의해 수십조원의 자산이 형성되고 거대한 판매조직이 구축된 반면, 소수 대주주의 실제 자본금 출자는 각기 40억원과 5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내 생보사 자산과 내재가치의 대부분은 상호회사가 주로 취급하는 유배당 보험상품의 계약자가 납입한 보험료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상장을 통해서 발생하는 이익은 계약자와 주주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의 경우 1957년과 1958년 각각 회사를 설립한 이후 1992년 8월 무배당 상품이 허용되기까지 유배당 상품만 팔았다. 또 생보사들은 무배당 상품이 허용된 이후에도 금리가 크게 떨어진 2001년 전까지 무배당 상품을 취급하는 비중은 미미하다고 시민단체들은 지적한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한성대 교수) 소장은 "생보사 상장의 기본원칙은 상장차익이 계약자와 주주에게 주식배당을 통해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하는 것"이라면서 "상장을 통해 생보사의 소유·지배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특정 대주주나 공적자금 회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닌 법과 원칙에 입각한 상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특히 “주식배당이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일부의 주장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주식배당방식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기존 대주주의 이득을 보호하기 위한 기만적인 태도”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감독기관이 상장 요건으로 주식배당을 제시하고 이를 생명보험사의 주주들이 수용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주식배당 방안만이 사실상 상호회사 형태로 운영되어온 생명보험사를 상장할 때 법과 원칙이 부합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의 지적처럼 국내 생보사들이 보험계약자들이 곧 주주인 ‘상호회사’로 규정된다면, 이들 생보사들이 기업 공개를 할 때 계약자들에게 주식을 배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된다.
1999년 상장 당시 자산규모 1780억달러로 미국 내 2위 생보사였던 메트로폴리탄이,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을 앞두고 1100만 계약자에게 총 발행 주식의 69%를 나누어 준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생보업계 “주식 배분 주장은 위법을 강요하는 것”
이에 대해 생보업계는 “모든 국내 생보사는 상법상 엄연히 주식회사”라며 “시민단체의 주장은 위법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적극 반발하고 있다.
국내 생보사는 현행 헌법과 법률상 일반 주식회사이므로 기업공개도 주식회사의 공개절차를 따라야 하며, 기업공개에 따른 상장차익은 당연히 주주의 몫이며 이를 계약자에게 나눠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배당상품 판매의 유형 또한 고객의 선호도, 시장성 등을 고려한 수익극대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지 회사 형태와는 무관하다는 지적이다. 선진국의 생보사들도 대부분 유배당 상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상호회사로 분류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 국내 생보사들의 유배당 상품 비중이 높았던 것은 유배당 상품만이 허용되었던 상황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최근 무배당 상품 허용 이후 그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시민단체와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생보협회의 한 관계자는 “생보사 상장은 재무건전성 강화를 위한 자본조달 창구 다양화, 외자유치 활성화, 공적자금 회수, 지배구조 개선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면서 “이러한 생보사 상장이 현재 일부의 비논리적 주장으로 인해 지연되고 있다”고 시민단체를 직접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이어 “국제 사례, 법과 제도, 논리성 등을 고려할 때 국내생보사의 상호회사적 성격, 과거 재평가차익 내부유보분의 자기자본 역할을 근거로 계약자에게 상장차익을 주식으로 배분해야한다는 주장은 매우 비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삼성생명의 한 관계자도 “생보사 상장이라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그 시기가 문제가 아니겠느냐”면서 “생보사 상장에는 모든 생보사에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일반적이고 보편타당한 기준이 필요하며, 따라서 현행 법체계와 제도에 따라 상장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생보사 상장이 뭐길래...
지난 99년에도 금융감독원이 상장 유보를 선언했던 생보사 상장 문제가 다시 급부상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복잡한 현안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먼저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등이 지난 89년과 90년 기업공개를 전제로 자산재평가를 실시해 나온 차익에 대한 세금(법인세) 납부 문제가 걸려있다.
상장이 다시 늦춰질 경우 다섯 번이나 개정된 조세특례제한법을 다시 고쳐할 상황이 올지 모른다. 삼성생명의 경우 올해 말까지 상장을 하지 못할 경우 자산재평가 차익에 대한 법인세로 3200억원을 물어야 하고, 교보생명은 2240억원을 납부해야 한다. 당연히 생보사들은 상장이 미뤄질 경우 조세특례제한법을 다시 한번 개정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 뻔하다.
게다가 채권단이 지난 99년 삼성자동차 부채처리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받은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삼성생명이 채권단에 갚아야 할 부채는 3조5천억원에 이른다.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양측의 입장이 팽팽한 만큼 조율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주식배당이 현행법상 어렵다면 계약자에 대한 현금 배당비율을 조정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아니겠냐”고 조심스럽게 대안을 제시했다.
지난 99년 생보사 상장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른 지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 과연 이 논란이 어떻게 해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