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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내 나이 때 어땠어요?"
마흔이 넘으면서 잊을만하면 묻고 또 물었다. 나의 질문이 늘 같아서였을까. 어머니로부터 돌아오는 답도 한결 같았다.
"우리 때는 먹고 살기 바빠서 뭐 다른 생각 할 새가 없었지."
아, 그렇다고 내가 다른 생각 하는 건 아닌데….
내 나이 마흔이 되던 1999년. 직장에서 승진을 하면서 부서 하나를 맡게 돼, 파트타임 근무를 풀타임 근무로 바꾸고 왕복 세 시간씩 걸리는 직장에 매일 출근하며 정신 없이 한 해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가슴 속에서는 때아닌 바람이 일어 휘몰아치는데,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잠도 푹 잘 수 없었다. 물론 그 바람은 순전히 내 안에서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또 다른 삶이었다.
마흔이면 불혹(不惑)이라고, 부질 없는 일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 하던데…. 그것은 정말 책에 써있는 글씨로 혹은 그렇고 그런 경구(警句)로 남아있을 뿐, 내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가정도, 일도, 관계도 하루아침에 완전히 무너질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가 살면서 이루어 놓았다고 하는 것들이 그 바탕은 사실 얼마나 허약한 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는 그 허약한 관계를 목숨 걸고 지키려 하는 일은 또 얼마나 어리석고 쓸쓸해 보이는지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
가고 싶은 곳과 있어야 할 곳이 다르고, 속에 품은 마음과 나눠야 할 손길이 다른 데서 오는 혼란은 나를 송두리째 집어삼킬 것처럼 무서운 불이었다. 말 그대로 미혹(迷惑)의 소용돌이에 갇혀 버린 듯했다. 그 때만큼 스스로에게 많이 묻고 답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불혹(不惑)의 나이에 미혹(迷惑)의 시험지를 받아 앞에 놓았구나, 내가 과연 이걸 제대로 풀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왜 나만 이런 시험 문제를 풀어야 하는 걸까, 그 누가 있어 이런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정말 마흔이라는 나이는 내게 어떤 의미인가…. 질문은 끝이 없었고, 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책〈마흔의 의미〉의 저자 마치자와 시즈오는 '진정한 성인'으로 넘어가는 40세에는 현재의 능력과 과거의 삶을 재평가하게 되고,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가가 그 이후의 인생을 크게 좌우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 저자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음을 물론이다.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남들보다 늦게 다시 의학을 공부해 31세에 의사가 된 저자는, 30대에는 '일본의 교활한 학력사회, 치졸한 학벌주의'와 계속 싸웠고, 40대에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신경과 진료와 연구에 몰두해 좋은 성과를 얻지만 가족, 특히 아이들에게는 일만 아는 아빠로 비난을 받는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40대에 해당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겪는 일이기에 전혀 낯설지 않다.
'진정한 성인'이란, 생물학적으로는 분명한 성인이지만 심리·사회적으로 미숙한 20대나, 심리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아직도 완전한 인정을 받지 못하는 30대와 달리, 심리·사회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이 바로 40세를 전후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저자의 표현대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40대"를 맞을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건실한 가장이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고, 일과 가정을 양립하며 잘 해온 아내가 갑자기 불륜에 빠지고, 그런가 하면 앞으로 남은 인생도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갈 것 같았던 사람이 갑자기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되고…. 책 속에 나오는 위기를 겪는 40세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친구나 이웃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직감이 가장 예리한 시기인 30대와 달리 40대는 세상의 상식이나 자신의 경험 등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숙한 성인은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받아들이려 한다"는 말은 큰 위로가 되며 갈 길을 바로 보게 해 주는 힘이 된다.
종이 한 장에 가로로 선을 그어 놓고, 왼쪽의 어느 한 점이 내가 세상에 태어나던 해 그리고 오른쪽 끝 어느 한 점을 평균 수명에 비추어 본 나의 마지막 해라고 할 때, 40은 아마도 그 중간 어디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40세는 인생 전체의 한 가운데 서서 좌우로 앞뒤로 인생을 종합해 볼 수 있는 나이인 것이다.
자기 발견이 주로 40세의 위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마도 40이 되면 자신의 삶의 길이 어느 정도 정해지고 동시에 자신이 앞으로 남은 생에 걸어가게 될 길을 어느 정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성숙한 40대가 되기 위해서는 그 전 단계인 30대에 '자신의 의지로 인생을 선택할 것'과 40대에 접어들어서는 '남편은 아내가, 아내는 남편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도록 서로 이해하고 도울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면서 레빈슨과 골드의 주장을 빌어 '성숙한 40대를 맞이하기 위해 30대에 준비해야 할 것'을 보너스처럼 덧붙여 놓고 있다. 역시 세대와 세대는 홀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것. 30대에 필요한 일들을 아는 것은 40대를 잘 살아가기 위한 준비이기에, 40대 중반에 이른 내게도 여전히 도움이 된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4년 전 받은 미혹(迷惑)의 시험지에 끝내 답을 써넣을 수 없었다. 아직도 그 시험지는 내 가슴속에 남아 때때로 내게 말을 건다. 인생 중반, 40대를 어떻게 넘어가고 있느냐고. 비록 답을 쓰진 못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인생의 모든 길, 선택해야 할 모든 길, 그 길은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성숙한 40대를 맞이하기 위해 30대에 필요한 일들〉
· 적절한 생활 기반을 세울 것
· 성공을 위해 밟아야 할 단계를 파악할 것
· 권리와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할 것
· 목표와 달성에 대해 재평가할 것
· 시간에 한계가 있다는 실망감을 극복할 것
· 건강에 관한 관심을 높일 것
· 부모를 배려할 것
(마흔의 의미, 40 SAI NO IMI / 마치자와 시즈오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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