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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차이일까, 아니면 상황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일까. 삶의 고비마다 혹은 나이 먹어가면서 모퉁이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깊은 만남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무덤덤하게 그 시간들을 지나오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일까.

<선생님의 가방>의 화자(話者)인 쓰키코는 지난 시간들을 조금은 무덤덤하게 지나온 것 같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흔이 내일 모레인 쓰키코는 단골로 드나들던 선술집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국어 선생님과 우연히 자리를 함께 하게 되고,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선생님과의 만남을 기록해 나간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 소설 속 쓰키코의 선생님처럼 우리 선생님도 국어를 가르치셨고, 살아 계셨더라면 올해 쉰 아홉으로 예순을 눈앞에 두고 계셨을 것이다. 5월에 돌아가신 선생님 소식을 들은 것이 9월쯤이었던 것 같다. 벌써 4년 전 이야기이다.

고3 생활은 유난히 견디기 힘들고 어려웠다. 교과서를 교실 안 사물함에 모두 넣어 둔 고3의 책가방 속에 든 것은 삼중당 문고 몇 권, 책상에 엎드려 책 읽을 때 고개 아프지 않게 받쳐 주는 베개용 원숭이 인형 한 개, 그리고 200㎖ 우유 하나가 전부였다.

성문 종합 영어와 수학 정석의 시대였다. 보들레르의 시집을 읽고 있으면 악마파 시인이라며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빼앗고, 책은 대학에 가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며 안타깝게 혀를 차던 때였다.

학교 수업을 빼먹고 거리를 돌아다녀도, 정독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그 어디에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도망가고 싶었다. 차라리 모두 끝내고 싶었다. 분명 누군가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모두들 대학 합격이라는 목표만 쳐다볼 뿐, 애타는 목숨의 SOS 신호를 단 한 사람도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선생님 나름의 방식으로 교복 입은 작은 체구의 고3 여학생을 도우려 애쓰셨다. 이야기를 끄집어내려고 귀를 기울이셨고, 같은 보폭으로 걸어주려고 노력을 하셨다. 학교 안에 머물고 싶지 않을 때 자유롭게 쓰라며 날짜를 쓰지 않은 외출증을 건네주셨을 때 비로소 나는 마음의 문을 조금 열었던 것 같다.

쓰키코는 선생님을 마쓰모토 하루쓰나 선생님도, 은사님도, 교사도 아닌, 말 그대로 '선생님'이라 부른다. 그래서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선생님'은 굵고 진한 글씨체로 적혀있다. 60대 후반의 선생님은 선술집에서도 허리를 지나치게 곧추세운 자세로 앉으시는 분이시다. 옷은 늘 단정하게 입으시고, 손에는 어김없이 낡은 가방을 들고 계신다.

오래 전 혼자 되신 선생님은 다 쓴 건전지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시지만, 혼자 사는 삶에 잘 적응을 하셔서 나름대로 편안하게 일상을 유지해 나가고 계신다. 쓰키코는 회사에 다니며 집에서는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데 사는 일에 별다른 열정이나 적극성 같은 것을 보이지 않아서일까, 마흔이 다 되도록 결혼은 커녕 남자 친구도 없다.

별다른 약속 없이 그 선술집에 들러서 서로 만나게 되면 다행이고 아니면 마는 두 사람은, 각자 마시고 싶은 술과 먹고 싶은 안주를 따로 따로 주문하고 물론 계산도 각각 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이 시장 구경도 다니고, 버섯 따러 산행도 하고, 선생님 아내의 무덤이 있는 섬으로 여행도 간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선생님과 제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깊이 받아들이게 된다. 사랑을 느끼고 먼저 표현하는 쪽은 쓰키코. 선생님은 아이를 대하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피해 가려고 하신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학교 졸업 후 다시 만나서 2년, 정식으로 데이트를 시작해서는 3년 정도의 시간을 같이 보낸다.

선생님은 어딜 갈 때면 꼭 가방을 들고 다니셨는데, 선술집에는 물론 산에 갈 때도 들고 가셨고 1박 2일의 여행 준비물도 그 가방 안에 다 넣으셨다. 다른 남자를 따라 집을 나간 아내의 무덤을 아직까지도 돌봐주시는 선생님의 마음 속이야 다 알 수 없지만 쓰키코는 선생님이 좋다.

세상을 슬렁슬렁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쓰키코에게 선생님은 때로 교과서를 가르치듯이 말씀하시지만,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그 사람 나름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뜻이리라.

책 속의 선생님이 쓰키코의 머리를 오래 오래 쓰다듬어 주시는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선생님을 생각했다. 우리 선생님도 살아 계셨다면 가끔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을 텐데, 각자 먹고 마신 술과 안주 값을 따로 계산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가끔은 만나뵐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은 그리움이었다.

시간이 흘러 책 속의 선생님은 세상을 떠나시고 쓰키코에게 가방을 남기신다. 쓰키코는 '선생님과 완전히 친해지기 전에 선생님이 어딘가로 가 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선생님, 아무 데도 가지 마세요." 했던 쓰키코의 바람 역시 시간과 함께 접힐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남겨주신 가방 안은 텅 비어있었다.

우리 선생님은 쉰 다섯에 서둘러 세상을 떠나셨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이 못난 제자에게, 선생님은 마음을 남기고 가셨다. 쓰키코가 받은 선생님의 가방 안이 텅 비어 있는 것처럼 선생님의 마음도 이제는 텅 비어 그 안을 채우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나이와 세대를 뛰어넘는 교류와 교감, 사랑이 담겨있는 이 소설의 맛은 참으로 독특하다.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억지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아주 잔잔한 물처럼 보이지 않게 그 바닥에서부터 섞여드는 것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선생님의 텅 빈 가방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서로 남김없이 나누고 마지막을 그렇게 비워둘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남은 사람의 몫을 그대로 두고 갈 수 있는 것이 나이듦의 지혜라면 우리들 생의 마지막은 또 얼마나 멋진가. 쓰키코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우리 선생님과 한 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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