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공룡 중국은 과연 오래지 않아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인가. 중국의 실험은 결국 성공할 것인가. 중국은 사회주의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결국 자본주의 국가가 될 것인가.
많은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이 나오지만, 알면 알수록 어려운 나라가 바로 중국. 세계는 중국시대가 될 것이라는 섣부른 절망과 '되놈'이라는 외면이 함께 공존한다. 이러한 중국을 경제학자 정운영이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중국경제산책(생각의 나무 간)'이 그 삐딱한 시선의 결과물이다.
정운영은 광대의 경제학(1989),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수상집1990), 경제학을 위한 변명(수상집1991), 노동가치 이론 연구(까치 1993), 시지프의 언어(까치 1993), 레테를 위한 비망록(한겨레1997), 세계자본주의론(편저), 한국자본주의론(편저), 국가독점자본주의론(편저) 등 많은 경제학 서적을 편찬했다.
또한 EBS '정운영의 책으로 읽는 세상'을 비롯, MBC '100분 토론'의 진행을 맡은 바 있다. 현재는 경기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중앙일보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재직중이다.
과거 100분 토론에서 보여준 그의 시선을 기억하는 이라면, 이 책에서도 그의 삐딱한 시선을 기대해도 좋다. "중국이 저렇게 빨리 달리니 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는 식의 호들갑과 북새통에 나 하나쯤은 이렇게 '삐딱한' 얘기를 해도 좋으리라는 배짱으로서, 취재 현장 못지 않게 역사와 자료를 뒤졌다"라는 책머리 글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마오쩌둥(毛澤東)과 등샤오핑(鄧小平)에 대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중국인의 처세술에 대해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 저자는 경제개발 이면의 어두운 면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듯하다.
"기사는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의 곡예 운전으로 우리의 일정을 맞춰주었다. 무엇이 운전기사를 그처럼 미친 듯이 달리게 했을까? 그 동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아마도 그 답은 노력에 따른 보상이었으리라. 그러나 미구에 그는 소득이 노력에 비례하지 않고, 자본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죽을 둥 살 둥 달려봐야 더는 소용이 없다고 느낄 때, 그의 좌절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내륙과 해안지방의 경제적인 격차를 해소하기 시작한 서부 대개발이 ‘자원 고갈 작전의 하나’라는 ‘믿거나 말거나 소문’을 들려주거나, 이상하게 발달한 중국의 지방 자치 덕에 지나는 지방마다 고속도로 요금을 내야하는 불합리성, 일본의 마쓰시다가 휴대전화기의 국가 코드에 대만을 중화민국으로 표기했다는 이유로 영업정지를 한 중국의 째째함에 대한 사례 등도 저자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경제산책’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정운영의 산책은, 대국적인 기질과 철저한 장사 속으로 무장한 중국인들의 처세술에 감탄하며 종종 정치 장정으로 빠진다. 적대국으로 마주보고 있는 대만의 중국통일연맹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이니 중화민국이니 복잡하게 부를 것 없이 그저 중국으로 쓰자”고 제의한다.
이 큰일 날 일에 대해 대만의 천수이벤(陳水扁) 총독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겨버렸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저자는 국가보안법으로 상대방을 겨누고 있는 우리의 남·북 대치를 떠올린다. 부패와의 전쟁에 나서며 “내 것을 포함해서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는 비장한 결의를 토한 주룽지(朱鎔基) 총리에게서 이런 정치인을 수입할 수 없냐고 한숨을 내쉬는 것 등이 그렇다.
저자인 그도 대국 기질에 대한 부러움과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에서 좀 뒤지면 어떻습니까? 신발 끈 죄고 따라잡으면 그만 아닙니까? 그러나 사람에서 지면 정말 끝장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심란할 때 여권(DJP) 공조인가 무엇인가가 깨졌다는 2김 쇼와 꿔준 국회의원을 되돌려 받았다는 ‘의원 환불’ 코미디 소동을 숙소에서 인터넷 서비스로 읽었습니다. 천추에 늠름함을 바라기는커녕 당대의 부끄러움조차 피하기 어려운 우리 정치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정운영의 경제산책’에는 현지인들의 목소리가 많이 등장한다. 삽과 괭이로 토관 공사를 하는 인부들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해서 하루 일당이 우리 돈으로 4800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결국 캐내고(?), 도농 합작의 향진기업 사장에게 “시장 변덕 때문에 당한 곤란이 없느냐”는 질문을 던져, 동석했던 당서기가 당황한 부분 등을 통해 보다 생생한 중국을 볼 수 있다. 특히 중국과학원 국정연구센터 주임이자 칭화대학 교수인 후안강 교수 인터뷰 내용은 중국을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중국에 대한 정밀한 보고서와는 거리가 멀다. 책 분량도 그렇거니와 애초의 기획의도도 그러했던 듯하다. 그보다는 중국을 무조건 두려워하거나, 무시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균형잡힌 시각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