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틈새를 비집고 다시 떠난 곳은 지상에 펼쳐진 낙원 '김녕미로공원'이다.
제주도 북제주군의 유명한 만장굴과 김녕사굴 사이에 만장굴문화원이 대규모로 개발예정인 만장굴 관광지의 주요한 매력요소로 제주김녕미로가 있다.
영화 비밀의 정원에 나오는 키 큰 나무 사이로 샛길이 만들어져 한 번 들어가면 방향감각을 잃게 되어 어디로 나와야 할지 헷갈리게 하는 그런 미로이다. 그 낙원 속 미로공원에서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보다는 또 다른 세상을 체험하면 좋을 듯싶다.
'김녕미로공원'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로 디자이너 '에드린 피서'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현재 아시아의 유일한 관엽상징 미로공원이다.
제주의 역사와 지리를 말해주는 6가지의 상징물로 디자인이 되어 있는데 제주의 애니미즘을 상징하는 뱀, 조랑말이 있으며 서쪽 부분은 17세기 말경에 처음으로 한국과 제주도를 서양에 소개했던 하멜이 타고 가다 난파되었던 스페르베르호를 상징하고 있다.
"산새. 나비. 꽃뱀. 개구리. 거미, 지렁이 등 많은 친구들이 나무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보이거든 반갑게 인사를 해 주십시오."
입구에 적혀 있는 메시지 때문에 나는 또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그 어리석음으로 인해 30분 동안이나 헤매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찾아 나선 것은 '미로'가 아닌 산새와 나비. 꽃뱀과 개구리였기 때문.
길은 여러 갈래가 있었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는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마치 인생을 자신이 살아가듯이, 그래서 미로공원일까? 처음 길을 잘 옮기면 바로 정상이 보이는데, 자칫 길을 잘못 떠나면 미로 속에 헤매이게 된다.
"미로에 들어서면 쉽게는 10분. 길을 잃으면 30분이 걸려도 나오지 못합니다"는 말은 장난이 아니다.
바로 옆길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데,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다. 어디 그것뿐이랴. 바로 내 앞에 정상의 계단이 보이는데 그 계단으로 향하는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 바로 미로 공원의 매력이기도 하다.
미로의 주인공들은 찾아도 찾아도 다시 제 자리에 돌아오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길 끄트머리엔 얄밉게도 "제발 뒤돌아 가세요"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아이쿠! 그럴 줄 알았으면 사람들이 많이 간 길을 택할 걸.
이쯤에서 후회를 해 보지만 입구조차 찾을 수 없으니,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한단 말인가. 갑자기 '정호성의 길떠나기' 라는 시를 떠올린다.
나의 지상 최대 반란인 길 떠나기는
잊기 위함이 아니라
미움과 증오를 버리고
사랑과 미움을 굳히기 위함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성찰의 시간이었다.
늘 그러했듯이 방황 끝에 돌아와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마치 누에가 허물을 벗듯
일련의 뜨거운 한숨과 잔잔한 미소가
묘한 부조화를 이루는 나의 모습으로부터
이제 진정 나 자신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혔노라고
또 하나의 나- 너에게만큼은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나 언젠가 새 실을 짜내어
또 다른 고치를 틀고 있을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니
번민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미로의 끝이 이렇게 위험한 길이란 걸 안 것은, 지나온 길을 다시 걸으면서였다. 그리고 그 안에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산새와 개구리. 꽃뱀을 찾아 나서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랠란디'가 사방으로 펼쳐진 푸르름 속에서 자연과 사람이 숨을 쉬고, 잠시 일상을 탈피하여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을 가져가기 위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정상에는 초등학교시절 시작과 끝을 알리던 '학교 종'을 볼 수 있었다. 이 '학교종'은 정상을 탈환한 사람만이 칠 수 있는 프리미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로 속에서 내가 얼마나 헤맸는지 모를 것이다. 나 또한 그들이 어느 길을 택해서 왔는지 묻지 않았다. 뒤돌아가는 길 역시 '미로여행'이기에.
다만 정상을 탈환한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땡! 땡! 땡! 종을 세 번씩 울리고 지나온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김녕미로공원은 제주공항- 12번 국도(동쪽)-함덕-김녕- 만장굴 가는 길 500m 전 지점이며,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주변 관광지로는 함덕해수욕장과 만장굴. 비자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