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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점심시간 중앙정부청사 후문 앞에는 난데없이 치열한 눈치작전이 벌어지곤 합니다.

청사의 수없이 삼삼오오 떼지어 나오는 공무원들의 단 몇 초간의 시선을 선점하려는 1인 시위자들의 공간 경쟁! 그러나 사실 그런 경쟁도 저같은 초보 기자만 의식할 뿐입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또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느 때는 두서너 사람, 많게는 대여섯 사람들이 각자가 몸자보를 몸에 걸고, 손에 들고, 땅에 세우고, 별 인사도 없이 눈빛만으로 모든 연대와 격려를 다하고 1인 시위를 시작합니다.

바로 그렇게 엊그제 7월 31일에 약 보름간 진행되었던 1인 시위 하나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지난 7월 15일 출범한 장애인교육권연대가 '장애인 교육예산삭감저지와 정책요구안 수용' 요구하며 다음날인 16일부터 31일까지 중앙청사 정·후문에서 점심시간에 때맞춰 1인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별다른 마찰도, 시끌한 언론의 주목도 없이, 대중적인 참여도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매일 그 1인 시위를 사진에 담았고 직접 1인 시위에 참여도 했던 저는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손쉽고 대중적이며 효과적인 집회 시위의 방법으로 1인 시위를 생각합니다. 그 생각은 한편 맞고 한편 틀리기도 합니다. 특히 그 사안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거나 이미 충분히 일려져 있어 뉴스 가치가 높을 경우 더욱 그러하거니와 1인 시위 참여자들이 사회 원로거나 저명인사 연예인일 경우에는 정말 효과 만점이지요.

그러나 장맛비 지겨운 2003년 7월 중앙정부청사앞 1인 시위 현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 보통 사람들이 벌이는, 온통 버림받거나 외면받은 사안들이거나 지겨워하는 주제들 뿐이지요. 그나마 장애인교육권연대가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 좀 나은 편입니다. 예산문제가 걸려 있는 것인지라 교육인적자원부관계자들이 가끔은 격려도 해주고 아는 체도 해주니까요.

그러나 매일 9시 뉴스에서 나오는 뇌물액수를 접할 때마다 과연 우리나라가 장애인 교육을 위해 300억에도 미치지 않는 금액을 증액 예산으로 쓰지 못하는 것일까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렇지만 여느 1인 시위와 마찬가지로 점심을 하러 오고가는 공무원들의 관심어린 눈빛을 얻어 내야 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중앙정부청사에서 제일 높은 고건 국무총리가 지나갈라치면 모두들 긴장하고 힘껏 텔레파시라도 보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잠시 1인 시위를 하고 있을 때 옆에 경비를 서고 있는 전경이 총리가 나온다고 귀띔까지 해주더군요.

한 시간 또는 두 시간 길게는 3시간 넘게 혼자 서서 1인 시위를 진행한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지나가는 공무원들의 너무나도 다양한 눈빛들을 적절히 받아 넘기기 위해서는 보다 강한 내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관심있어 하는 눈빛에서부터 경멸하는 눈빛까지 다양할 뿐더러, 조금 늦어 정부청사 건너편 현대해상 빌딩앞에라도 자리를 잡으려면 그곳 보안요원과 한바탕 싸울 각오를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힘들 때는 점심시간이 끝나 철문이 닫히고 오가던 사람들도 하나 없이 1인 시위자들끼리만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인 것 같습니다. 가끔 우리를 응시해 주는 전경들이 오히려 고마울 정도니까요.

하지만 진정 외롭고 외로운 것은 1인 시위를 혼자 시작하고 혼자 정리해야 하는 일입니다. 주제별로 단체에서 한두 명 지원나오는 일도 가끔 있지만 정말 가끔 있는 일이고 아픈 다리와 주린 배를 쥔 채 홀로 시위를 시작하고 끝맺는 일은 매일같이 1인 시위를 해본 사람이라면 느껴 보았을 겁니다. 거기에다 비까지 왕창 쏟아지면 비장미까지 느껴집니다.

도로따라 서있는 나름대로 울창한 가로수들이 고마울 지경입니다. 우산을 쓰고 있어도 그 비장미는 여전하지요.

이번에 진행한 장애인교육권연대 1인 시위는 제가 참여하고 취재했던 장애인 관련 1인 시위 중에서 세 번째였습니다.

장애인 오이도역 추락사사건, 도경만 선생님 충남교육청통합교육캠프징계사건에 이은 세 차례 중에서 대학생들의 응원도 열띤 취재 경쟁도, 유명인사의 참여도 없었지만 그곳 1인 시위자들의 개개인 하나하나의 강건한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장애인 교육권연대는 7월 장맛비 속의 1인 시위를 에너지 삼아 8월달에는 지역순회 투쟁이라는 새로운 투쟁을 계획하고 준비할 것입니다.

아울러 오늘의 1인 시위자들이 지각할 때마다 막간맨으로 투입되었던 제가 직접 참여하고 취재하면서 배운 것은 딱 하나, 쉽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모두에게 이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인 시위는,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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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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