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창선 연륙교
삼천포에서 바다를 건너면 남해 창선도가 나옵니다. 배 한번 타면 바로 삼천포가 나오기에 창선사들은 오히려 삼천포 생활권이 더 가까웠지요. 금년 4월에 이 멋진 다리가 개통되었습니다. 개통 하루전인가요? 창선과 삼천포를 잇는 마지막 배가 닻을 올렸을 때 창선사람들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답니다. 감격과 회한의 눈물이었겠지요.
평생 고사리를 캐다가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내 평생 소원은 삼천포와 창선을 잇는 다리를 내 발로 걸어보고 죽는 것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육지를 향한 창선 사람들의 염원은 대단했습니다.
남해대교와 더불어 연륙교가 생기면서 남해는 '다리공화국'이라고 부를 정도로 전국에서 예쁜 다리를 가장 많이 보유하는 섬이 되었답니다. 1995년 착공하여 금년에 완공되었으니 8년의 대공사였네요. 사진에 보듯이 3개의 섬을 연결했습니다.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다리가 같은 모양이 아니라 다양한 다리 공법들을 적용했다고 합니다.
창선 사람들은 이제 말 그대로 삼천포로 빠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리만 연결되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릴 줄 알았던 창선사람들. 예쁜 다리 때문에 외지인이 몰려들어 주말마다 교통 체증에 시달린답니다. 그것이야 참을 수 있지만 무질서와 폭력, 절도 등 사회문제는 벽을 높이고 문을 꼭 걸어 잠그게 만들었습니다. 수 백년동안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이웃에 마실 다녔던 창선사람들은 연륙교 개통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시어업죽방렴
창선도에서 남해섬 사이를 '지족해협'이라고 합니다. 워낙 물살이 세서 고기 맛이 좋기로 소문 났지요. 명절 때 백화점에서 수 십만원을 호가하는 '죽방멸치'의 산지가 바로 이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들어간 고기를 끄집어내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하루에 두 번, 물이 완전히 빠졌을 때 어장주들은 둥그런 발통이 달린 작은 문을 열고 참나무 그물에 갇힌 생선을 뜰채로 떠냅니다. 세상에 이렇게 편하게 고기 잡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만들어진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조상 대대로 이런 방식으로 고기를 잡았다고 하니 분명 살아있는 문화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창선대교 중간에 차를 잠깐 세울 공간이 있습니다. 저녁 노을이 길게 바다로 늘어질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이 장면을 놓치지 않을려고 몇시간 전부터 기다린다고 합니다. 다리 가로등이 바다를 비출 때 낚시대를 드리우면 큰 고기가 낚을 수 있다고 현지인이 살짝 귀띔해 줍니다.
물건리 방조어부림
'물건리'라는 이름이 참 대범하지요? 그렇습니다. 이 나무들이야말로 '물건'입니다. 천연기념물 150호로 350년 수령의 1만5000그루의 나무가 1,5km의 군락을 이루고 있답니다. 그렇다면 '방조어부림'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폭풍우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 고기떼를 부르는 숲이랍니다. 녹색의 나무 잎들이 햇빛에 반사되면 그걸 보고 고기들이 몰린다고 하니 참으로 신기할 따름입니다. 한 여름엔 이 울창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냅니다.
남해는 인공방조어부림이 전국에서 가장 많고, 특히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가장 큰 규모랍니다. 선조들의 지혜 덕을 우리 후손들이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지요. 이 곳에서 잡힌 멸치, 역시 그 맛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어찌나 조용하고 아늑한 포구인지. 올해는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항구' 중에 하나로 뽑혔답니다.
해오름예술촌
남해에 와서 가장 놀랐던 곳이 바로 해오름예술촌입니다. 입구부터 대나무가 하늘을 찌릅니다. 무려 1천여평이나 대숲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를 봅니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바다 가운데는 예쁜 섬이 그림처럼 떠있습니다. 우리나라 예술마을 중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가 또 있을라구요?
살포시 드러난 삼각형의 건물에 눈이 휘둥그렇게 됩니다. 40년된 폐교 '물건초등학교'를 이렇게 예쁜 예술촌으로 탈바꿈시킨 것이지요. 겉모습만 예쁜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다실과 판화공방과 도자기실, 천연염색실에 화랑, 와인숍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너른 잔디에는 무엇이 좋은지 벅수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촌이라 열등감 속에 살았는데 이런 문화공간이 생겨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노모를 모시고 온 남해사람의 감격 어린 말에는 자부심이 묻어납니다.
대한민국 남단 남해섬. 그 중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에 이런 예술마을이 생긴 것은 바로 '불이 정금호'씨의 눈물겨운 의지와 땀방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네요.
다도실입니다. 직접 촌장님으로부터 다도 강의를 들을 수 있답니다. 이 곳에서 차한 잔 마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굳이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서양의 것도 우리실정에 맞는다면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요. 와인과 차는 잡는 법이나 음미하는 방법이 참으로 비슷합니다."
알 공예실이지요. 타조알 오리알, 계란에 예쁘게 색칠합니다. 그럼 자신만의 작품을 되겠지요.(수강료 및 재료비 1만원: 3시간 소요)
장작으로 때우는 도자기 가마랍니다.
"무슨 색깔이 나올지는 저도 몰라요. 오직 불길 만이 알 수 있지요."
지금은 세계범선모형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10월 12일까지 섬 주민의 시야를 세계로 향하는 마음에 전시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아주 귀한 작품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습니다. 예술인이라면 누구라도 창작활동 할 수 있는 미술실입니다. 지역주민을 위해 3개월 과장의 강습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테라스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이곳에서 녹차 한잔 우려 드세요. 바로 당신이 신선입니다.
| | 불이 정금호 촌장과의 만남 | | | |
| | | ▲ 불이 정금호 촌장 | | 길게 늘어진 수염과 진한 눈썹에서 풍겨 나온 이미지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의 문화에 대한 애착을 느꼈으며 차츰 그의 인간미에 매료되어갑니다.
-예술촌을 만들게 된 취지는 무엇인가요?
"제가 태어난 고향입니다. 문화에 소외된 이 곳에 창작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자라 나는 아이들에게는 마이크 수업이 아니라 직접 체험해가면서 우리 문화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예술촌을 만들었습니다.
삼천포시와 연결되는 연륙교가 생기면서 횟집과 여관만 늘어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남해의 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시작한 건가요?
"2년 전 멀쩡하게 직장을 다니고 있는 딸과 사위를 불렀지요. 그리고 맨 손으로 잡초를 뽑고, 땅을 일구었습니다. 설계도 제가 직접하고 조경도 제 손으로 했습니다. 제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지요. 금년 5월 개촌식 때 연단에서 인사말을 하는데 그저 눈물만 쏟고 내려 왔어요. 묵묵히 일해준 딸과 사위 그리고 목수와 미장공이 떠올라 아무 말도 못하겠더라구요."
-보람이 있다면?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한 남해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각종 전시회, 문화행사, 체험행사를 통해 남해인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고 자부합니다."
-하루방문객은 어느정도나 됩니까?
"대략 하루에 1천명이 예술촌을 방문합니다. 차츰 입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듭니다. 주말에는 그 넓은 주차장이 모자랄 정도로 가득찹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 올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손님 접대하느라고 정신이 없어요. 그래도 행복하답니다."
-해오름 예술촌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창작활동을 원하는 분들은 누구나 환영합니다. 좋은 시설과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낸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지금까지 한국화, 서예, 장승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남해는 섬이기 때문에 바다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많이 열 생각입니다. 10월 12일까지 세계 범선기획모형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역사 속의 유명한 배를 보면서 바다에 대한 동경심과 모험심을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동서양의 만남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통만 고수하지 않습니다. 서양 것 중에서도 배울 점을 배워야지요. 와인을 음미하는 것과 차를 마시는 것은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비교체험을 하면서 우리 것을 찾아야지요. 중국, 일본, 유럽 등을 다니면서 접했던 여러 경험들을 우리 것에도 접목할 생각입니다."
-복도에 전시된 민속유물들은 어떻게 수집하신 건가요?
"남해에서 옛 집을 부수고 새 집을 짓는다면 현장에 있는 포크레인 기사가 전화를 해줍니다. 그 즉시 달려가서 옛 유물들을 샅샅이 뒤집니다. 그리고 한 두 점 모은 것이 저렇게 많습니다. 30년을 수집한 유물이지요. 포크레인 기사에게 전화가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어려웠던 점은 없습니까?
"처음 예술촌을 계획했을 때 무모한 짓을 한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했어요. 23년동안 교직생활 해서 번 돈과 퇴직금을 다 쏟아 부었는데도 끝이 없더군요. 할 수 없이 부모에게 받은 논과 밭을 전부 처분해서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제 뜻에 동참하는 독지가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예술촌 직원은 13명인데 한달에 1500백만원의 유지비가 들어갑니다. 겨울에 숙박시설과 식당공사가 끝나면 어느 정도 수익성을 확보하겠지요. 그저 아이들의 웃는 모습에 힘을 얻고 있습니다.
남해에는 아직까지 8개의 폐교가 잡초 속에 뒹글고 있습니다 버려진 폐교를 이렇게 꾸며 놓았는데 그것이 국가 재산이라 1년에 2천여만원의 대여세를 냅니다. 조금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촌을 통해 남해사람들이 받는 혜택도 생각해야 될텐데. 그것만 없어도 숨통이 트일 겁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좀 알려주십시오.
"이 잔디 마당에 '무료전통혼례장'을 개방할 예정입니다. 쭉쭉 뻗은 대밭에서 신랑신부가 나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넓은 바다를 향해 멋지게 살겠다고 맹세하는 겁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창작공간을 만드는데 일생을 바칠 생각입니다. 솔직히 돈에는 욕심이 없습니다. 남해에 멋진 예술가가 탄생한다면 그것 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이종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