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배수원
폐교라는 남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방문을 자주 받게 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방문을 지금까지는 거절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가려서 들여놔야 할 것 같다.

무더위가 온 세상을 삼킬 듯이 덤벼들던 엊그제 낯선 봉고차 한 대가 우리집 플라타너스 그늘 밑으로 파고들더니 중년의 남녀 3쌍이 내렸다. 차 번호판을 보니 인근 도시에서 온 차였다.

"저수지에 낚시 왔는데 나무 그늘 아래서 잡은 고기로 매운탕 좀 끓여 먹고 가면 안되겠습니까?"

그 중에 한 남자가 내게 물었다.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부탁이라 나는 쉽게 허락을 하면서 반드시 쓰레기만큼은 주의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음식 쓰레기는 버리고 가도 괜찮지만 그 외 쓰레기들은 되가져가야 한다고 내 쪽에서 부탁을 했다. 그 중년들은 당연한 듯이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 중년의 남녀들은 준비 없이 놀러 나왔다며 식칼이며 양념 따위 등을 빌려간 후 그늘 밑에서 조용히 쉬다가 떠났다.

그러나 친구가 놀러와 있던 참이라 그 중년들이 떠나는 모습을 유심히 보지 않은 것은 내 불찰이었다. 음식 쓰레기만 버리라고 한 말이 무색하게 그 중년들은 소주, 맥주병 그리고 그들이 방금 매운탕을 떠먹었을 멀쩡한 숟가락에, 잡 쓰레기와 끈 떨어진 샌들까지 버려놓고 도망을 간 것이었다.

도시에는 비교적 쓰레기 분리수거 방식이 정착되어 있고 분리 수거할 수 있는 여건이 잘 마련되어 있다. 헌 신발이나 의류를 버리는 곳도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그들은 왜 마땅히 쓰레기를 처리할 곳이 없는 시골에 그런 쓰레기를 버리고 갔는지 정말 한심하다.

시골에서는 헌 신발, 폐건전지, 가구 쓰레기가 생기면 처리할 곳이 마땅치 않다. 우리집의 경우도 그런 쓰레기들은 잘 모아 놓았다가 도시에 사는 친구들에게 처리를 부탁하는 형편이다.

시골살이에 있어 쓰레기는 그 처리가 여간 난처한 게 아니다.
쓰레기를 분리해도 면사무소에서 병과 플라스틱 류 등의 재활용 수집품 외에 다 쓴 건전지나 스티로폴, 폐지류, 헌 옷류, 헌 신발 등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다니는 면사무소 쓰레기차도 가져가지 않는다.

담당 면직원 말에 의하면 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에서 그런 류의 쓰레기는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한다.

그러니 시골 마을에서 사색하기에 좋은 산 속 오솔길에도 폐 건축 자재가 낙엽 속에 묻혀 있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저수지 가에는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밭 한 쪽에는 농약병과 비료 푸대들이 잡초 속에 숨어있기까지 하다.

낭만적이고 자연적인 시골에도 그 이면에는 이런 속사정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시골에 놀러 오는 도시 사람들이 더 쓰레기 처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쓰레기가 거름이 되고 땔감이 되는 시절에 살았던 어르신들은 환경 오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 어른들은 그렇다치고 고향집에 찾아 온 배울 만큼 배운 그 자손들은 도시의 찌꺼기들을 왜 고향집에다 처리하고 가는가.

주말이나 요즘같은 피서철이면 도시에 사는 자손들이라도 다녀갔다하면 다이옥신이 나온다는 쓰레기 태우는 냄새가 온동네를 뒤덮는다. 1 회용 기저귀와 고장난 장난감, 도시에서 가져온 편의적인 물건들의 찌꺼기들이 고향집 뒷마당에서 다이옥신을 비롯해 이름도 복잡한 발암물질들로 변신, 마을 주민들은 모두 그 냄새를 맡게 된다.

쓰레기 봉투 몇 장 아낀다는 것이 오히려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고향집 마당을 발암물질로 오염시키고 마는 것이다. 다 타지 않은 1회용 기저귀 따위는 바람에 굴러다니다가 부모님이 가꾸는 텃밭으로 굴러들어가고, 연로한 부모들은 손주들에게 줄 고구마를 비롯한 옥수수와 반찬거리가 될 모든 것을 그 밭에 심고 가꾼다.

제발 부탁하고 싶다. 시골 부모님들의 등골이 휘도록 교육시킨 자손들이여, 시골집에 올 때는 쓰레기 봉투를 가지고 오자.

요즘 웬만하면 자가용 한 대씩 굴리고 시골집에 나타나지 않는 자손들은 없다. 부모님이 뼈빠지게 농사지은 먹거리들만 챙겨가지 말고, 시골에서 처리하기 곤란한 쓰레기들 좀 올 때마다 한 자루씩 싣고 가서 도시의 분리 수거함 넣어보자.

그리하면 알게 모르게 병들어가고 있는 고향 땅이 서서히 좋은 기운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