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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이학사
우리는 조지 오웰을 <동물농장>과 <1984년>이라는 우울한 미래를 그린 작가, 스탈린주의에 반대했던 작가로 기억한다. 그런데 법학자 박홍규는 <조지 오웰>에서 "권력에 복종해서는 안 된다"(15쪽)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그를 다시 읽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오웰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나 권력의 부름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부정하기 위해 삶을 산 참된 야인이었다. 오웰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 인간다운 품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배치되는 것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싸움을 건 점에서 돈키호테"(44∼45쪽)였다.

평전에서 드러나듯이 오웰은 평생을 어느 한 이데올로기에 치우치지 않고 살았다. 그는 사회주의를 지지했으나 혁명의 필연성과 도그마를 주장하는 소련식 사회주의를 반대했고 '소련 숭배'에 저항했다. 그렇다고 그가 자본주의를 지지한 것은 아니다.

오웰은 "영국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그 극복을 위해 산업의 광범위한 국유화를 주장하기도 하면서, 비중앙집권적인 정치·사회 구조와 노동자에 의한 산업의 자주적 관리를 주장"(53쪽)했다. 왜 그는 박쥐라는 억울한 누명을 쓸 수도 있는 애매한 입장을 선택했을까? 어느 한 입장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안전과 명성을 꾀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것은 그가 계속 깨어있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스스로 하지 않으면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것, 자비에 가득 찬 독재 체제 따위는 있을 수 없다"(278∼279쪽)는 것을 주장하고 싶어했다. 그의 이런 고집은 여기저기 철새가 등장하고 권력의 그림자를 쫓는 오늘날의 한국 현실에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저자 박홍규는 "오웰 문학의 가장 큰 줄기 중의 하나가 제국주의 문제"(32쪽)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나는 오웰이 가장 역동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시기에서 그의 고민을 엮어보려 한다.

전 세계가 파시즘의 물결로 넘실거릴 때,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조차 파시스트들을 막지 못하고 아무런 대처방법을 제시하지 못했을 때, 유럽 남쪽의 땅에서는 그들에 맞서 대중이 봉기했다. 1936년 스페인의 파시스트 프랑코는 선거를 통해 평화롭게 수립된 공화정부에 대항해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유럽 열강과 파시스트들의 지원을 받는 프랑코를 공화정부가 제대로 막지 못하자 유럽의 '자유인들'은 '자발적으로' 의용군을 조직해서 스페인 전쟁에 참여했다. 오웰도 의용군에 지원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들어갔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그 격동의 시기를 직접 경험한 오웰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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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민음사
이미 그 규모에서부터 스페인에서 벌어졌던 전쟁은 '내전'이라는 한 국가의 차원을 넘어섰다. 오웰은 내전이라는 시각을 거부한다. 그가 본 스페인은 단순히 프랑코에 대항하기 위해 일어선 사회가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여는 혁명적인 사회였다. 그 새로운 사회를 잠시 엿보자.

"웨이터와 매장 감독들은 손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동등한 입장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굴종적인 말투나 격식을 차린 말투까지도 일시적으로 사라졌다. …눈에 띄게 곤궁해 보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집시를 제외하면 거지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혁명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갑자기 평등과 자유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느낌이 있었다. 인간은 자본주의 기계의 톱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11∼13쪽).

오웰은 스페인에서 벌어진 싸움을 '내전'으로 낮춰 부르는 것이 파시스트들의 조직적인 음모라고 봤다. "스페인에서 벌어진 일은 사실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혁명의 시작이었다. 스페인 외부의 반파시스트 언론은 이 사실을 일부러 모호하게 만들었다. 쟁점은 <파시즘 대 민주주의>로 좁혀졌다. 혁명적 측면은 최대한 은폐되었다"(71쪽).

파시스트들에 동조하거나 그들과 맞서기엔 무기력했던 유럽사회는 당시 스페인에서 폭발했던 혁명의 힘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스페인에서 벌어진 싸움을 내전이라 부르며 스페인 내로 묶어두려 했다. 유럽 전역으로 혁명의 불길이 번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스페인 혁명을 내전으로 묶어두려 한 것은 파시스트만이 아니라 당시 공업화에 박차를 가했던 소련이었고 그들이 뒤를 봐줬던 스페인 공산당이었다. 소련은 자신들의 노선에 따르지 않는 자율적인 혁명을 두려워했기에 처음에는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스페인 공산당을 통해서만 조건을 단 지원을 했다.

오웰은 "이 조건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혁명을 막지 않으면 무기도 없다>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74쪽)고 적었다. 또 당시 소련은 자본주의와 파시즘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고 그 목적을 위해 스페인을 희생시켰다.

오웰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 스페인 공산당이 권력을 잡은 뒤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집산화 과정은 중단되었다. 지역 위원회는 사라졌다. 노동자 순찰대는 폐지되고, 전쟁 전의 경찰력이 복원되었다. 경찰은 규모가 확대되었고 중무장을 했다. 노동조합이 통제하던 주요 산업들은 정부가 접수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에 기반을 둔 노동자 의용군이 점차 해체되어 새로운 인민군 소속으로 재배치되었다는 점이다. 인민군은 半부르주아 노선에 따른 <비정치적> 군대로, 차별화된 봉급체계, 특권적 장교계급 등이 유지되었다"(76쪽).

이런 반혁명적인 분위기에 반발해 바르셀로나에서는 공산주의자와 아나키스트들이 일시적으로 시가전을 벌이기도 했다. 프랑코라는 강한 적을 눈 앞에 두고 있었기에 곧 휴전협약을 맺었지만 공산당 정부는 노골적인 방식과 은밀한 방식을 함께 써서 다른 정치세력을 차례차례 제거했다. 스페인 혁명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외국인 의용군들은 스페인 비밀경찰에 감금되거나 쫓기기 시작했다. 결국 오웰도 비밀경찰을 피해 스페인 밖으로 탈출해야 했다.

미셸 라공의 <패배자의 회고록>은 아나키스트의 관점에서 20세기 혁명의 역사, 러시아혁명에서 1968년의 혁명까지 격동의 역사를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도 스페인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주인공 프레드는 아들 제르미날과 함께 스페인으로 떠난다. 스페인에 도착한 그들은 오웰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모든 사람들이 친구 사이처럼 서로 격의없는 말투를 사용하였고, 서로를 동무라고 불렀다. 오랫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짓눌러 온 암울한 기운이 갑자기 걷힌 듯했다. 모든 농부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합법적인 정부를 수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섰고, 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노예생활에서 마침내 벗어난 듯한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378쪽).

적과 지루한 싸움을 벌이던 어느 날 프레드는 소련 공산당의 기관지인 <프라우다>에서 이런 기사를 읽는다. "카탈로니아에서는 트로츠키 추종자들과 무정부주의 노동운동가들에 대한 숙청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한 작업은 러시아에서 만큼이나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다"(396쪽).

그와 동시에 프레드는 오웰처럼 비밀 감옥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비밀 감옥은 수없이 많았다. 게페우(비밀경찰)는 특히 지하실 창고나 차고, 건물 꼭대기층 등 고문받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 곳이면 어디나 비밀 감옥으로 이용했다"(411쪽).

결국 프레드는 비밀경찰에 투옥되어 고문을 받던 아들 제르미날을 구출해 스페인을 탈출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을 남긴다.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자유를 명목으로 내걸고 일어난 혁명이 마침내 권력을 장악하고 나면 한결같이 자유를 억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414쪽).

결국 1939년 파시스트 프랑코는 스페인을 장악한다. 그와 함께 아나키즘과 새로운 사회를 꿈꿨던 열망은 패배한 자들의 사상, 패배의 기록으로 역사의 장을 마감했다. 오웰은 스페인에서의 경험 때문에 어느 한 편을 드는 것을 거부했을지 모른다.

자신이 추구하던 신념이 어느 순간 억압의 도구로 변하고 혁명이라는 근본적인 큰 뜻을 배신했을 때, 오웰은 심한 좌절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게 아니라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삶, 스스로 참여하는 삶을 택했을 것이다.

이제 변화의 가능성은 사라진 걸까? 희망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스페인 시민전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자신의 신념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현실은 변화의 힘을 모두 잃어버린 듯 보였다.

하지만 1968년 그 희망은 완전히 꺼지지 않고 잠시 사그라든 것일 뿐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유럽 전역에서 적색과 흑색의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며 그 희망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그 힘찬 펄럭임 역시 권력을 지향하지 않았기에 보수세력의 반격을 받고 다시 사그라들었다.

그 희망의 힘이 최근 다시 부활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 자유를 열망하는 사회, 딱딱함이 아니라 즐거움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그 희망을 드러내고 있다. 부러진 흑색깃발을 다시 세우고 새롭게 적색의 알맹이를 채우려는 노력들이 그 희망의 싹을 보여준다.

스페인에서 싸웠던 사람들,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희망을 증명하기 위해 싸웠던 사람들의 열정은 결코 패배한 것이 아니다. 불가능한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삶으로 증명했다. 그 시기를 달리할 뿐 새로운 사회를 만들 때까지 그 열정은 꺼지지 않는 힘으로 계속 부활할 것이다.

조지 오웰은 누구?

<조지 오웰>:박홍규는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 현재 영남대학교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전공뿐만 아니라 인문·예술 분야를 넘나들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내 친구 빈센트>, <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 <오노레 도미에: 만화와 아버지가 그린 근대의 풍경>, <자유인 루쉰>,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 <카뮈를 위한 변명>, <베토벤 평전: 갈등의 삶, 초월의 예술> 등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는 책들을 집필했다. 번역서로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다.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서 하급 관료의 아들로 태어났고 영국에서 이튼 학교를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미얀마에서 인도제국 경찰로 근무하면서 식민지의 폐단을 통감하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아 생활을 경험했다. 이 때를 토대로 한 소설이 처녀작 <파리와 런던의 안팎에서>(1933)와 <버마시절>(1934)이다. 이후 스페인 내전을 다룬 최고의 작품 <카탈로니아 찬가>(1938)와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우화로 그린 <동물농장>으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다. 또한 전체주의의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년>(1949)은 오웰을 20세기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만들었다.

<패배자의 회고록>: 미셸 라공(Michel Ragon)은 다양하고 풍부하며 충실한 자료 수집을 통해 주로 방대한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콜레의 붉은 손수건>같은 작품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그 밖에도 <어머니의 사투리>, <아시아의 눈을 가진 우리 누리>, <프롤레타리아 문학사>, <신예술의 탄생> 등 많은 작품이 있다.

조지 오웰 - 자유, 자연, 반권력의 정신

박홍규 지음, 이학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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