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들르곤 하는 성북동의 길상사는 도심에서 보기 어려운 호젓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사찰입니다. 고지대 대저택 사이에 자리잡은 길상사는 휴식과 산책, 마음 달래기에 제격인 곳입니다. 더구나 한 바퀴 돌다 보면 살갑고 정겨운 건물, 풍경, 푯말, 나무와 꽃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나눔이란 누군가에게 끝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라는 문구를 산책로에서 한 번 찾아보세요. 그리고 단아하게 지어진 명상과 기도와 교육을 위한 처소들을 돌아보십시오.
사찰의 창호 무늬는 정말 화려합니다. 주로 살대의 무늬가 주안점이 되는데, 꽃을 새겨 놓기도 하고, 색을 입히기도 하는데, 전체를 '만(卍)' 자 모양이나 빗살 모양으로 꾸밉니다.
오대산의 월정사와 상원사에 가서도 창호 모양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올 1월에 들른 월정사는 눈에 덮인 영화 촬영장 같았습니다. 마당 한가운데 서면 사면이 건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한쪽은 설법전 보수 공사가 진행되어 있고, 한쪽은 본존인 적광전, 한쪽은 전시장과 성보 박물관, 한쪽은 요사채입니다.
적광전 창살의 모양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한국의 문과 창호>(대원사)라는 책을 찾아보니 만살빗살창호라는 형태에 가까웠습니다(이 기사에 나오는 창호 용어는 이 책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빨강, 파랑의 꽃 모양 무늬가 녹색 살대에 교차되어 붙어 있습니다. 월정사의 대부분 건물은 6.25 때 불타 버렸다가 1964년에 중건된 것이기에 고전적인 맛은 없습니다.
오대산 중턱에 있는 상원사는 아늑한 곳입니다. 북적이는 월정사보다는 발길이 조금 뜸한 상원사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ㄴ자 형의 건물 청량선원의 튀어나온 오른쪽 부분이 눈에 띕니다. 이층 형태로 되어 있는데 계단으로 올라가면 이층 법당으로 이어지고, 계단 옆 그러니까 1층은 따로 용도가 있는 사무실 같았습니다.
여기에는 무척 오래된 느낌이 드는 문과 창이 있습니다. 정면에는 변형된 용(用)자살이라고 할 만한 문 옆에 역시 변형된 완자살이라고 할 만한 창이 네 짝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70-80년대 서민들의 집에도 흔히 볼 수 있었던 그런 창과 문입니다.
오른쪽으로 돌면 같은 모양의 녹색 문이 두 짝씩 있었습니다. 아침에 한참 마당의 눈을 치웠을 비 하나가 피곤한 듯 모퉁이에 등을 기대고 있습니다.
사찰에 들르면 창들도 유심히 보십시오. 요사채의 담백한 한지 창, 본존 건물의 화려한 창. 그리고 저잣거리를 향한 범종각의 '창 없는 창'… 다양한 창의 모습들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자연스레 단청과 풍경(風磬)에도 눈이 가겠지요. 그러다 규칙적으로 쓸려진 마당의 빗질 자국에도 눈이 가겠지요. 어느 새 마음은 차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