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진로를 결정짓기 위한 8월 민주당 전당대회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
민주당은 14일 오전 8월에 개최하기로 했던 전당대회 의제와 안건 등을 결정짓기 위해 당무회의를 열어 핵심 쟁점사항에 대한 절충을 시도했지만, 결국 신·구주류간 이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8월 안에 전당대회를 소집하기 위해서는 당무회의에서 전대 소집 일주일 전까지 의제 등을 확정짓고 대의원들에게 공고해야 하지만,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8월 25일 잠실체육관 외에는 1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실내 대규모 공간이 없어, 늦어도 오는 17일까지 의제와 안건이 확정되고 18일 대의원에 공고되지 않는 한 8월 전대는 힘들다는 것이 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단 민주당은 18일 고위당직자회의를 열어 당무회의 대책 등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도출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또 18일 이전까지 3일 동안 양 계파가 막후접촉을 시도할 계획이지만, 여기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신주류 내부에서는 전당대회 표결이나 탈당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목소리도 공개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14일 오전 9시 민주당 당사 4층 당무회의장. 3차에 걸친 마라톤 조정회의가 끝내 신당논의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열린 탓인지 팽팽한 긴장감마저 흘렀다.
특히 이날 당무회의는 시작부터 회의의 공개 여부를 두고 정대철 대표와 이윤수 의원간에 설전이 오갔고, 끝내 당무회의장 내에 있던 당원들 사이 몸싸움으로까지 확산됐다.
정대철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국가나 정당, 어떤 모임이든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조정회의에서 상호간 신뢰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해 결국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고 드린다"고 말했다. 정 대표에 따르면 3차에 걸친 조정회의에서 끝내 합의에 성공하지 못한 사항은 △합당방식 △전당대회 안건 △전당대회 준비위 구성 등 세 가지이다.
정 대표는 "당무회의에서 신당에 대한 논의는 8월 말까지 끝마쳐야 한다"며 "한편에서는 전당대회 날짜와 안건 등을 합의해야 하고, 한쪽에서는 전당대회 이전까지 단일안을 만들기 위해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일을 병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대표는 당무회의를 비공개로 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자 이윤수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당무회의는 공개로 해야 한다"며 "회의 자료에는 의결할 안건이 있다고 했는데 무엇을 의결할 것인지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이 의원은 또 정 대표가 "양해해 주신다면 비공개로 하자"고 중간에 말을 끊자, "의사진행 발언을 중간에 끊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벌컥 화를 냈다. 순간 정 대표는 상당히 굳은 표정으로 "그럼, 공개 여부를 두고 투표를 할까요?"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지금 전당대회 논의는 결혼할 신부도 없는데 예식장 알아보고 날짜 잡는 식"이라며 "통합할 대상이 없는데 누구와 통합할 것이냐"고 말을 돌린 뒤, 조정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장영달 의원은 "회의의 효율적 운영은 의장의 책임이므로 회의의 공개 여부는 의장이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며 "전당대회는 애시당초 이윤수 의원이 소속된 선배그룹에서 전대 추진기구까지 만들어 요구했던 것 아니냐"고 이 의원을 공격했다.
한편 회의 공개 여부를 두고 한동안 신·구주류간에 설전이 오가자 당무회의장 내에 있던 강호근 직능위원회 부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민주당을 지켜온 우리 당료들은 당의 혼란을 초래한 당무위원들에게 신당 논의를 위임할 수 없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이때 지난 대선 선대위에서 일한 바 있는 한 당원이 강 부위원장의 발언을 몸으로 제지시켰고, 이 과정에서 이 당원과 부위원장들간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전 11시40분께 정 대표에 의해 산회가 선포된 직후에도 이같은 물리적 충돌은 계속됐다. 일부 부위원장단이 회의장으로 몰려들어와 민주당의 정통성을 문제삼은 이종걸 의원의 해명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이해찬 의원이 부위원장들에 의해 멱살을 잡히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날 당무회의에서 이종걸 의원이 "(DJ가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든) 이후 잔류한 통합민주당의 이기택씨와 잔류 당원은 한나라당으로 합당하여 법적·형식적으로 통합민주당의 권리 의무 등은 한나라당으로 계승되었다"며 "그래서 새정치국민회의 이전에 입당한 당원이 당원자격 증명을 떼려면 한나라당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고 말한 게 '민주당 정통성 논란'의 발단이 됐다.
이 의원의 발언 직후 구주류 의원들은 즉시 "그렇다면 민주화의 정통성이 한나라당에 있다는 이야기냐"며 강하게 반발했고, 회의장 밖에서 대기하던 부위원장들도 이종걸 의원의 발언 내용을 전해듣고 회의장으로 들어가 이 의원에게 직접 해명을 요구하는 등 감정 대립으로 치달았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부위원장들은 이해찬 의원의 멱살을 잡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다음은 이종걸 의원의 발언 요지다.
"새천년민주당이 독재하 정통 야당으로 민주화의 정통성을 가진 정당이라는 점은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 가운데 한 분도 이의가 없다. 이 정통성은 단순한 법적·형식적 계승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통합민주당으로부터 나와서 새정치국민회의('평민당'으로 착각해서 발언)를 만들었고 다수 당원이 이를 따랐다.
이후 잔류한 통합민주당의 이기택씨와 잔류 당원은 한나라당으로 합당하여 법적·형식적으로 통합민주당의 권리 의무 등은 한나라당으로 계승되었다. 그래서 새정치국민회의 이전에 입당한 당원이 당원자격 증명을 떼려면 한나라당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통합민주당 이전의 평민당 등 정통 야당을 계승한 정당을 한나라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혀 없고 새천년민주당이 정통성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당의 정통성과 이를 계승하였다는 것은 당의 정신 철학 이념이지 단순한 법적·형식적 측면이 기준이 될 수 없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열린 당무회의 발언록을 정리해 언론에 공개하면서 이례적으로 신기남 의원의 '전대에 대한 합의가 되지 않으면 탈당을 검토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과 이종걸 의원의 '민주당 정통성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한 발언을 빼는 등 자체 진화에 나섰다.
대변인실 한 관계자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해당 의원의 의사를 묻고 난 뒤 공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