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나는 여름을 아쉬워하면 물놀이에 여념이 없은 아이들.
지나는 여름을 아쉬워하면 물놀이에 여념이 없은 아이들. ⓒ 강우영
오랜만에 맑게 개인 하늘, 그 동안 흐린 날씨를 원망하면 미뤄왔던 관악산 산행을 위해 대문을 나섰다. 밖의 날씨는 생각보다 뜨거웠다. 불어오는 바람은 적었고, 내리쬐는 태양은 강렬했다. 그래도 좋다. 얼마남지 않은 여름 햇볕, 지금 아니면 언제 쏘여 볼텐가.

20여분 걸어서 도착한 일주문은 부모손을 잡은 아이들과 산악인들로 붐볐다. 일주문을 들어선지 5분만에 아이들은 엄마손을 뿌리치고 뛰기 시작한다. 고지가 바로 저기, 시원하고 깨끗한 물웅덩이에 벌써 아이들이 가득하다.

잠시라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아이들은 뒤도 안돌아보고 달려간다. 관악산에서 흘러내려와 만들어진 물웅덩이는 아이들이 노는데 적합하다. 물웅덩이가 깊지도 않을 뿐더러 비온 뒤 물의 양이 많아 깨끗함이 유지된다. 10여분을 물놀이하는 가족들을 구경하며 걷다보니 관악산호수공원에 당도했다.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 낙성대의 강감찬 장군의 넋이 먼저 일어나시어 소리치신다.

"너희들은 왜 쪼무래기로만 남으려하느냐? 이 세계의 최대강국이던 (키타이)를 처부수던 내 힘을 너희는 어찌해서 깡그리 다 잊어야만 하느냐?"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 신림동에 사시던 이조 최대의 서정시인 신자하님의 넋도 곰곰히 이어서 말씀하신다.

"자네들은 어째서 또 사랑마저 잊었는가? 겨레가 겨레끼리 사랑하고 살아야하는 그 근본정신까지 잊어야만 하는가?"

그러면 관악산의 철쭉꽃 뿌리들은 나직한 소리로 옹얼거린다.

"아무리 차운 겨울날에도 우리들 뿌리만은 언제나 성성하여 한봄에 꽃필 채비를 하고있오. 당신들도 그래야만 할 것 아니오?"

그러면 이에 질세라 관악산의 까치떼들이 짹짹짹짹 조아리며 세배를 한다.

"단군자손 여러분께 세배 올려요. 우리들 까치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단군할아버지의 그때부터 벌써 그곁에서 모시고 살아왔거든요."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 미당 서정주


관악산 호수공원에 설치된 서정주의 관악사랑시비의 내용이다. 시비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어려운 경제상황, 불안한 남북관계, 정치권의 비리와 각종 게이트. 서정주 시인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앞날을 걱정했던 것이다. 아마 새해가 오면 강감찬 장군과 신자하 시인이 미당 서정주의 넋과 함께 일어설지 모른다. 적어도 그들의 넋이 다시 오지 않도록 나라의 찬란한 봄꽃을 피워내야 할 것이다.

시비내용중 나오는 키타이는 거란족을 말한다. 성종 12년(993년)부터 고려를 세 번씩이나 침략했던 거란족은 1018년 12월 3차 침략 전쟁을 일으켰으나, 강감찬 장군이 이끄는 고려군의 공격으로 대패하게 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구주대첩이다.

미당 서정주의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
미당 서정주의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 ⓒ 강우영
"관악산 그대는 만만치 않았다"

역사와 민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관악사랑시비를 뒤로하고 걷다보면 본격적인 산행에 접어든다.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 코스에 발을 딛으면서 기자는 뭔가 착오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카메라 가방하나 덩그러니 메고 오르는 나는 물놀이객도 아니오, 산행인도 아니었다. 그 흔한 물한병 담아오지 않았으니 갈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때늦은 후회였다. 설상가상 좋아하는 담배마저 놓고 온 걸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그렇다고 40여분을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갈 수는 없었다. 강행군! 속전속결이다.

급한 마음에 정상을 향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악산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산 이름 가운데 '악'자가 들어 있으니 미리 준비를 했어야 했다. 미끄러지는 운동화, 걸리적거리는 카메라 가방, 울퉁불퉁 솟아오른 바위길, 밀려오는 허기와 갈증. 아침까지 부실하게 먹었으니 기운까지 없다. 이게 바로 최악의 상황이란 건가.

"할아버지 계속 주무세요"
"할아버지 계속 주무세요" ⓒ 강우영
군대시절 일주일 훈련 중 일요일과 수요일을 제외한 5일은 산에서 훈련을 받았다. 지도 한 장, 후레쉬 하나 준비하면 바로 훈련시작이다. 야간훈련이 많았던 그 시절, 길눈까지 어두웠던 나는 오랫동안 고생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제대하는 그날, 사회에 나가서는 절대 산에는 가지 않겠노라고 굳은 다짐을 했지만, 사실 바다보다는 산이 좋다. 산에 가면 계곡도 있으니 말이다.

군대시절이 버릇이 됐는지 산에 갈 때마다 항상 무언가를 잊고 간다. 재작년에 산 비싼 등산화도 발에 달고 오지 않았다. 가끔 오르는 관악산이지만 우연찮게 등산화를 이용하지 못했다. 오늘도 그랬다. 하지만 젊다는게 무엇이랴 이정도는 참을만하다.

산은 추억을 되새기게 하고

평일이라 그런지 막상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산 7부 능선쯤 오르니 주위가 조용하고 만나는 사람도 드물어졌다. 얼마전 텔레비전을 보니 혼자 산행을 하면 위험하다고 하던데 벌써 풀린 다리가 조심스러워진다.

관악산 정상을 바라보며
관악산 정상을 바라보며 ⓒ 강우영
한참을 오르다보니 급경사가 시작됐다. 어디선가 정상을 알리는 사람들의 함성소리도 들린다. 은근히 허벅지에 힘이 들어간다. 타던 갈증도 잠시 잊고 어언 3시간여 만에 푸른 하늘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탁 트인 공간에 오르니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밑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도 목의 갈증을 잠시나마 잊게 했다.

아버지와 한때 산에 오른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 정상에 서면 무조건 좌청룡, 우백호로 말문을 여신다.

"바로 이쪽이 좌청룡, 저쪽이 우백호..."
"근데요?"
"…."

그 뒤 설명은 없다. 왜 이쪽이 좌청룡이고 저쪽이 우백호인지. 부자지간에 대화가 별로 없던 시절, 아버지는 딱히 하실 말씀이 없으셨나보다. 지금도 가끔 전화통화를 하지만 안부를 묻고는 금방 끊으신다.

관악의 메아리를 긴 여운으로 간직한 채

또 한편의 추억을 되짚어보고 관악산의 좌우 정상 중 하나인 야영장으로 향했다. 산에 왔으니 정상을 밟아야 의미가 있을 거라는 고정관념 때문일까. 가장 난코스인 그곳은 밧줄을 타고 올라야 한다.

정상을 향한 발걸음은 나이도 뛰어넘는다. 정상에 선 그들의 얼굴은 도심속 찌든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저 먼 산을 바라보며 바람을 쏘일 뿐이다.

야영장 정상에 8.15기념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야영장 정상에 8.15기념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 강우영
나도 잠시 자연의 정취를 느끼며 침묵으로 일관한다. 속은 목이 타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런 침묵을 깨는 것은 아줌마들이었다. 오르긴 힘든 곳이었는데 용케 올라온 모양이었다.

"어이구∼ 힘들어 죽겠네. 여길 어떻게 올라왔지."
"어떻게 올라오긴 두 다리로 올라왔지."

여자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더니, 여자 셋이 산행을 하니 관악산이 메아리 친다.

"야호∼"
"야호∼∼"

아줌마들의 함성에 관악산은 긴 메아리로 과천과 안양, 관악으로 긴 여운을 남기며 흩어진다. 강감찬 장군도 이곳 관악산에 올라 큰 함성으로 군대를 호령했을까.

관악산은 그 북쪽 기슭 낙성대에서 출생한 고려의 강감찬 장군과 관련한 전설도 많이 지니고 있다. 그가 하늘의 벼락방망이를 없애려 산을 오르다 칡덩굴에 걸려 넘어져 벼락방망이 대신 이 산의 칡을 모두 뿌리째 뽑아 없앴다는 말도 있고, 작은 체구인 강감찬이지만 몸무게가 몹시 무거워 바위를 오르는 곳마다 발자국이 깊게 패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 전설들을 뒷받침해 주듯 관악산에서는 칡덩굴을 별로 볼 수 없고, 곳곳의 바위에는 아기 발자국같은 타원형 발자국들이 보인다.

무엇보다 관악산은 도심속 생태보고라 할 만하다. 각종 식물들과 곤충들, 계곡에서 흐르는 깨끗한 물 그리고 바람.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의 정취에 흠뻑 빠져든다.

관악산을 쉽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기자는 잠시 정상에서 숨을 고른 뒤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바람에 깍여 쌓인 모래가 여러분 심장을 오그라들게 한다. 오르는 길은 시간이 그리도 걸리는데 내려오는 길은 왜 또 그다지 허무하더란 말인가. 새삼 정몽헌 회장의 죽음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관악산 호수공원.
관악산 호수공원. ⓒ 강우영
입장료를 냈던 일주문에 당도한 기자는 마지막 힘을 내어 수퍼마켓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고 강원도 평창샘물을 500원 주고 샀다. 그리고 마셨다. 벌컥벌컥. 나의 심한 갈증을 해소해 줬으니 강원도 평창샘물 선전해도 무방하리라.

비록 '금강산도 식후경'을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관악산 밑에 사는 사람으로서 관악산이 있어 너무 감사하다. 산행을 마치고 난 나의 마지막 한 마디, 관악주민들은 얼마나 좋을까? 관악산이 있어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어를 공부하는 정치에 관심많은 사회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