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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코엑스 '영 스퀘어' 야외무대에서 열린 'Save School Play Again' 공연. 공연 이름의 약칭은 SPPA. 서울공연예술학교의 영문약칭(SPPA: Seoul School of Performing Arts)과 일치한다.
15일 코엑스 '영 스퀘어' 야외무대에서 열린 'Save School Play Again' 공연. 공연 이름의 약칭은 SPPA. 서울공연예술학교의 영문약칭(SPPA: Seoul School of Performing Arts)과 일치한다. ⓒ 석희열
재단측의 부실경영으로 지난 1년간 교실을 빼앗긴 채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무너진 학교를 세우기 위해 몸부림치던 아이들이 있었다. 서울공연예술전문학교 학생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여름의 양광이 은빛으로 춤추는 15일 오후 5시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영스퀘어 야외 공연장. 비길 데 없이 눈부신 8월의 태양이 푸른 숲에 반짝였다. 서울공연예술전문학교 정상화 기념공연 'Save School, Play Again'. 그들이 무대에 올랐다.

신나는 펑키음악으로 문을 연 이날 공연은 시종일관 흥겨움과 힙합댄스가 한데 어우러진 감동의 무대였다. 실용음악과 학생들의 댄스와 퍼포먼스가 잇따라 이어지자 공연장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달아올랐다. 빛나는 젊음과 청춘의 반짝임에 눈이 부셨다.

공연에 참가한 팀이 차례차례 무대에 오를 때마다 500여 관객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했고 여기저기에서 내지르는 함성소리는 터질 듯 뜨거웠다. 특히 마지막 무대에서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Billie Jean)'을 함께 합창하며 열광한 집단 율동은 장관이었다. 푸른 청춘이 사람들의 입에서 왜 그토록 찬미되는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었다.

지난 겨울 서울지하철 사당역에서 만난 그들은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그들의 염원은 간절했다. 돌아갈 학교를 되찾은 지금 그들은 또 다시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들의 눈빛은 쏟아지는 햇볕만큼이나 영롱했으며 희망의 노래는 계속되었다.

무대 앞을 가득 메운 관객들. 휴일에 맞춰 코엑스몰을 찾았다가 음악소리에 발을 멈춘 관객들도 많다.
무대 앞을 가득 메운 관객들. 휴일에 맞춰 코엑스몰을 찾았다가 음악소리에 발을 멈춘 관객들도 많다. ⓒ 석희열
실용음악과 등 학생 10여명과 함께 나와 오정석씨가 열창한 샘 브라운의 '스톱(Stop)'은 한여름밤의 '아리아'였다. 그 고운 음색과 가창력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서울공연예술전문학교 학교살리기 공연에 두 번 참가한 적이 있는 인기가수 이적은 이날도 학교정상화 기념 무대를 축하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는 직접 피아노를 치며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을 부르며 후배들을 격려했다.

공연을 하는 중간에 만난 이 학교 총학생회 총무 김정근씨는 "58주년 8.15광복절인 오늘이 우리에겐 제2의 생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며 감격해 했다. 고단하고 길었던 지난 1년을 떠올리며 자신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내준 시민사회단체와 학교정상화운동 서명에 기꺼이 동참해준 수많은 서울시민들에게 한 말이다.

지난달 취임한 정지영(영화감독) 학장은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에서 학생들과 등록절차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다소의 오해가 있었지만 다 풀어냈다"며 "그 동안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힘든 투쟁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이날 공연을 자축했다.

서울공연예술전문학교 살리기 공대위 김영규 대표는 코엑스 영스퀘어 공연장이 공연예술의 메카로 자리잡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정상화되면 기념공연하자"...1년만에 지켜진 거리의 약속

서울공연예술전문학교의 거리공연은 처음이 아니다.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지하철역과 공원 등에서 '무너진 학교 세우는 아이들'이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공연을 벌였다. 지난 3월에는 학내 퍼포먼스홀에서 타 학교 밴드와 댄스 동아리, 빅마마, 윤종신, 이적 등 연예인들이 함께 모여 7시간 가까이 '마라톤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방배동에 있던 구 교사. 벽에 학교파행운영을 규탄하는 자보가 빼곡히 붙어있다.
방배동에 있던 구 교사. 벽에 학교파행운영을 규탄하는 자보가 빼곡히 붙어있다. ⓒ 권박효원
18번째가 되는 이날 공연은 '거리공연의 결정판'인 셈. "학교가 정상화되면 반드시 기념공연을 가지자"고 서로 다짐했던 학생들은 결국 그 약속을 지켰다. 지난 5월부터 기획에 들어갔고, 한 달동안 밤을 새워가며 연습을 했다. 이미 총학생회 간부를 비롯한 몇몇 학생들은 학교에서 숙식을 해결한지 오래다.

지난 1년 동안 학생들은 학교와 밀고 밀리는 싸움을 계속해왔다. 길지 않은 기간동안 학장이 바뀌었고 학교가 폐교 위기에 몰렸다. 학생들의 수업거부와 학교측의 100명 무더기 제적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학교살리기 운동'을 벌였지만 학교측은 재단 해산 신청을 냈다.

지난해 2학기부터 서울공연예술전문학교의 수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없으니 거리에서라도 수업을 계속하자"며 공연을 열었다.

시설 낙후, 실습지원 부족에 학생 불만...구 재단 "직업전문학교 현실은 학원"

처음 사건이 시작된 것은 실용음악과 교수와 강사 전원이 '시간강사 처우개선을 위한 요구문'을 학장에게 제출한 지난해 5월. 학장이 이에 대한 답변을 거부하자 실용음악과 교수학생연대는 그 달 27일 무기한 수업거부에 돌입했다.

당시 교수와 학생들이 행동에 나선 것은 시간강사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시설 낙후와 실습지원 부족에 대해서 불만을 가져왔다. 악기나 음향기계도 노후됐고, 방음 및 냉방시설이 없어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 학교측은 시설이나 임금 문제에 대해 "예산이 적자상태"라고 강조해왔지만 학생들은 "건물임대료와 인건비 빼고는 들어가는 돈이 거의 없다. 등록금이 최고 279만원이고 실습비도 따로 내는데 적자라니 믿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직업전문학교는 교육부가 아닌 노동부 소속 시설이다. 재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직업전문학교의 현실은 '학원'이며 이를 인정하지 않는 학생과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냐"는 입장을 강조했다. 학생 징계원칙와 관련해서도 "직업전문학교는 대학교와 다르다. 학칙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수업거부가 일어난 다음날, 하성호 당시 학장은 학생들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퇴진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학교에는 새 학장이 나타났다. 학생들은 '학교살리기 대책위원회'를 발족해 '학교발전과 제도개선을 위한 제안서'를 작성하고 장보고 학장과 합의문을 채택했다. "하성호 학장의 대리인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일단 믿어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학생 수업거부하자 용역업체 불러...100명 무더기제적, 법인해산 등 파행

그러나 학생들의 기대와는 달리 문제는 오히려 심각해졌다.

9월 개강과 함께 장 학장은 '학과 존속을 보장한다'고 애초 약속한 것과 달리 뮤지컬과, 애니메이션과와 영화연출과를 일방적으로 폐과 처리하고, 대신 비서과, 스튜디어스과, 요리과 등 공연예술과는 무관한 과의 설립을 추진했다. 학장에게 이의를 제기하던 학생 김정근씨는 "등록금을 분할납부했다"는 이유로 제적됐다. 결국 학생들은 9월 26일부터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지난해 9월, 학장이 학교예산으로 고용한 경호원들이 학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학장이 학교예산으로 고용한 경호원들이 학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SPPA열린총학생회
학교 측은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장보고 학장은 학교예산으로 경호원과 용역업체 직원들을 투입해 학생들의 등교를 저지했다. 또한 학내 공고를 통해 "학내소요 불참 및 수업참여에 관한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는 학생들은 학교에 다닐 의사가 없다고 판단, 직권 제적한다"고 밝혔다. 징계위원회 개최는커녕, 근거학칙도 제시하지 않은 '직권 제적'이었다. 결국 동의서를 내지 않은 학생 100명이 무더기로 제적 처리됐다.

학생들은 전국교수노조, 교육학생연대, 문화개혁시민연대, 민주노총 등과 연대해 '학교살리기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켜 운동의 폭을 넓혔다. 학교측이 '학교 폐쇄'를 통보했고, 학생들은 학교를 지키기 위해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학생들은 노동부 앞에서 삭발식을 갖고 피아노 화형식까지 가졌다.

지난해 12월,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한 김미성씨가 노동부에 자진 법인해산을 신청하면서 학교는 정말 문을 닫는가 싶었다. 공동대책위원회가 재단 인수협상을 시작하면서 서울공연예술학교는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다. 지난 4월 서울종합예술학교 재단은 부채청산과 등록금 환불 등을 전제로 서울공연예술전문학교를 인수한 것이다.

새로 만드는 학교, 공연은 계속된다

현재 학교는 서울 방배동에서 삼성동으로 교사를 이전했다. 7월에는 영화감독 정지영씨가 새 학장으로 취임했고 8월부터 교수들의 고용승계가 이루어진 상태. 2학기 수강을 위한 등록절차도 진행 중이다. 이날 기념공연으로 학교정상화를 기뻐하는 축제도 끝나고 이제 곧 9월이 오면 학생들은 1년만에 교실에서 수업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정작 학생과 교수들은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앞으로도 남은 숙제가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학교가 정상화된 이 시점에도 공동대책위원회는 남아있다. 재단파행을 미연에 방지하고 학교의 발전방향을 함께 고민할 협의기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연예계 진출하기 위한 학교'가 아니라 '공연예술을 위해 학문을 닦는 학교'. 이것이 현재 공동대책위원회가 갖고 있는 학교 발전목표이다.

지난해 학교측으로부터 해직통보까지 받았던 이나영 실용음악과 조교는 "일단 좋은데, 단순하게 '좋다'는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다"며 "학교를 새로 만드는 일이니까 해야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설레는 마음도 든다"고 덧붙였다.

전문적 대중예술에 대한 꿈 하나로 직업전문학교를 선택한 학생들은 지난해 수업이 없는 학교를 지키며 "학교살리기운동, 직업전문학교에서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믿음이 실현된 지금, 학생들은 "Play Again"을 외치며 새로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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