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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동 화백
ⓒ 심미정
지난 13일 서울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열리던 삼성동 코엑스 행사장에서 박재동 화백을 만났다. 그는 90년대 초 <한겨레>에서 촌철살인적인 만평으로 독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며 인기를 얻었다.

그런 그가 시사만화가에서 돌연 애니메이터로 변신 선언을 한 지 벌써 7년째. 현재 장편 애니메이션 ‘오돌또기’ 작업 중에 있으며 21세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른 만화·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더욱이 최근 국가인권위와 함께 인권애니메이션 제작을 준비중인 그를 만나 인권, 교육에 관한 입장을 들어보고 우리 만화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해 물어봤다.

“어릴 적 우리집은 학교 앞에서 만화가게를 하며 떡볶이, 팥빙수, 풀빵 같은 걸 팔았어요. 근데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은 항상 만화 보지 마라, 불량식품 먹으면 불량학생 된다고 가르치셨죠. 더 비참한 것은 나보고 ‘만화 보지 말자’ 포스터를 그려오라는 것이였죠.”

우리 사회에는 겉으로 보이는 차별뿐 아니라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이 차별이라고 박재동 화백은 말한다.

최근 그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문제를 만화로 엮어 기획한 ‘십시일反’(창작과 비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십시일反’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차별을 폭로한 만화로 주로 사회문제를 다뤄온 만화가 10인을 선정해 책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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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획에 참여한 그는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노인 등의 차별문제를 다뤘다. 특히 학생이라는 이유로 ‘학생이 공부 못하면 구박받아도 된다는 식’의 학생에 대한 차별과 최근 미군장갑차에 압사 당한 두 여중생 이야기를 중심으로 미국에 의한 약소국의 차별 등을 만화로 담았다.

이외 손문상, 홍승우 화백 등은 빈부격차, 노동, 교육, 국제분쟁, 여성, 성적소수자 등 사회문제화 되지 못한 차별양태를 만화로 쉽게 지적하고 있다.

박재동 화백 인터뷰

-국내 만화·애니메이션이 위기상황이라고들 하는데 문제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 만화를 사서 보는 문화가 정착돼야 하는데 지금은 대여위주의 문화로 흐르고 있어 재생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 애니메이션하면 무조건 어린이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특히 청소년보호법과 만화산업을 죽이는 유사한 법들로 인해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에는 이미 성인만화 코너를 찾아볼 수 없다. 성인만화를 에로만화로 인식하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 만화계가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뒷받침돼야 할 부분은.
"우리 만화 생산력은 대단하다. 이제는 작품의 질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작가와 출판사가 새로운 기획으로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그리고 서점에 팔 수 있는 만화를 위해 좋은 시나리오를 써야한다. 또 문광부내에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젊은 작가와 좋은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도 절실하다."

-만화 관련 학과와 전문학교 등의 만화학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국내 만화는 장르의 폭이 좁다. 그리고 연출감각을 길러야 한다. 일본의 ‘초밥왕’처럼 한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테마를 찾고 노력한다면 좋은 작품을 만들수 있을 것이다."
인권위의 의미 있는 기획에 찬사를 보낸 박 화백은 "이번 기회를 통해 나조차도 차별에 대해 더 깊고 넓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며 "차별은 공정한 경쟁을 막고, 인간을 불행으로 몰고가는 것이므로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 외에도 세세하게 따져보면 곳곳에 차별적 시선과 행위가 존재하고 있다며 자신의 차별담을 풀어놓았다.

차별로 인해 한이 많다는 그는 “어린 시절 사람들은 만화가게 한다고 하면 조선시대 백정처럼 천대시 했다”며 “어린 마음에 가난보다도 가난하다고 무시당하고 차별 받을 때 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만화는 나쁘고, 소설은 건전하며, 떡볶이는 불량식품이고, 햄버거는 간편한 고급간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문화장르에 대한 차별이라며, 차이는 인정하되 불행의 씨앗을 만드는 차별은 사라져야 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한때 제도권 교육의 현장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했던 그에게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물었다.

“교육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먼저 학교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해야 합니다. 지금은 대학입시를 위한 곳이 아닙니까. 학교의 역할 중에는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자신의 소질, 재능, 정체성을 깨우쳐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많은 젊은이들이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해도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일이 뭔지, 뭘 잘 할 수 있는지를 몰라서 방황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고 말한다.

“돈을 많이 벌고 안벌고를 떠나서 고생을 감수하더라도 버릴 수 없는 일을 가진다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기본조건인데 우리교육은 그 기회조차 주지 않는데 문제가 있죠.”

박재동 화백은 아이들의 적성을 일찍 깨우쳐 주기 위해서는 특별활동 수업을 다양화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시험에 나오지 않는 과목이라고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그는 현재 미술 등의 교과는 아이들의 관심사가 영화, 연극,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복합미디어에 집중돼 있는데 도 이러한 흐름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 했다.

더욱이 “사회는 공조와 협동을 원하는데 교육현장은 개인 위주의 커리큘럼뿐이다. 혼자 잘하는 것 보다 여럿이 함께 성과를 얻어낼 때 누리는 더 큰 기쁨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며 “조별 공동제작을 통해 협동과 양보, 갈등 조정력 등 민주적 의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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