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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여야 의원들이 합심해서 좋은 일 한가지를 하려나 보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의 제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 트인다.

민주당 96명, 한나라당 49명, 무소속 9명 등 여야 154명이 서명한 친일행위진상규명법안은 이미 국회에 제출됐다. 현재 국회 재적의원이 272명이니 법안에 서명한 의원이 과반수를 훨씬 넘는다.

민주당의 김희선, 이호웅 의원이 대표제안자로 알려졌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정의와 역사정신이 살아 있음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법안의 국회 통과와 실천을 낙관하기엔 아직 이르다.


일제 후예 경찰이 국회 반민특위 습격도

국회에서 그대로만 진행되면 법안이 의결될 수 있다. 그러나 법안의 운명은 지금부터 막후에서 본격화될 방해공작을 어떻게 막아내느냐에 달렸음을 양식있는 언론과 시민운동단체들이 알아야 한다.

많은 여야 의원들은 대의명분이 좋아서 서명했지만 정곡을 파고드는 친일파 후예들의 공작이 집요함을 알아야 한다. 해방된 지 5년만인 1949년 봄 국회에 법정 기구로 설치된 '반민족행위자 처벌을 위한 특별위원회'도 그래서 좌절했다.

국회의 반민특위를 국가 경찰이 집단적으로 습격했고 극우단체들이 '빨갱이 의원 처단'을 외치며 테러위협을 가했다. 그 배후에서 해방후 검찰과 경찰의 수사 정보 간부 자리에 그대로 눌러앉은 일제 식민통치의 주구들이 연출했다.

검경 뿐 아니라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정부 아래서 군대를 지배한 최고의 정치군인으로 특무부대장이던 김창룡은 일제 관동군 소속 헌병보조원 출신이다.

5·16쿠데타 핵심그룹은 일본군 장교출신

어디 그뿐인가. 박정희 소장을 비롯해서 5·16쿠데타의 주모자 다수가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오랜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했다.

친일 세력의 방해공작은 최근에도 있다. 지난 14대 국회에서 '민족정통성 회복 특별법'이 김원웅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됐다가 폐기된 것이 그것이다.

그때도 과반의석을 훨씬 넘는 의원들이 법안 제출 전에 서명했지만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채 회기가 끝나 폐기되고 말았다. 입법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길목 격인 법사위와 관련 상임위가 법안 상정이나 토론절차를 사보타지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의 후예들이 국회의원들을 억누르는 압력수단을 어떻게 갖고 있단 말인가. 그게 과연 무엇인가.

정치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언론임을 우리는 잘 안다. 일제 때의 행적으로 친일시비를 받으면서도 정치적 사회적 지배세력으로 굳건히 뿌리내린 거대 보수신문들이 이번에는 또 어떻게 작용하는지 똑똑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제로부터 탄압받았다고 내세워 왔다. 그러나 알고 보면 탄압받은 것은 기자였지 신문사나 사주가 아니었다. 일제가 압력을 가하면 기자를 강제해직시킨 뒤 신문사와 사주는 권력측과 타협했고 더 나아가 유착했다.

그러면서 친일 논설을 썼으며 청년학도들을 전쟁터로 나가라고 권유하는 반민족 행위까지 감행했다. 그것은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살기 위한 일시적 굴신이라고 변명할 여지도 없다.

백번 양보해서 불가항력적 상황이라 치자. 그렇다면 해방 후 머리 들고 민족언론이라며 행세하는 태도가 용납될 수 있는가.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하고 반성하기는 커녕 사회적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면서 오히려 정의와 양심을 억압해 오지 않았는가.

보수신문 군사정권 유착은 친일 행태 닮은 꼴

보수신문들의 그런 행태는 1970년대 박정희 유신체제와 80년 전두환 반란정권 아래서도 똑같이 반복됐다. 권력측이 찍은 이른바 '반정부 기자'들을 강제 해직시킨 뒤 신문사와 사주는 권언유착으로 살아 왔으며 특혜까지 받았다.

신문사의 사주가 반란과 정권찬탈을 주도한 국보위에 위원으로 활동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특혜 성장했던 그 신문이 지금의 사세에 대해 언필칭 독자들의 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말하는 게 옳은 일인가.

보수신문들은 자유언론 운동을 주도한 것처럼 자랑할 때는 자기들이 해직시킨 기자들의 고통을 자사의 역사로 가로채는 '양심불량'도 일삼았다. 그것이야말로 일제기의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탓에 되풀이해서 당하는 업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갖는 부조리의 핵심이다. 일제 식민통치의 앞잡이나 군사독재 정권의 부역자들이 권력과 정보력과 자금력을 장악한 지배세력, 곧 '주류 집단'으로 구조화한 것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모순이다.

이제 비행의 처벌과 대의에 대한 보상은 차치하고 역사기록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아무리 양순하고 화합을 중히 여기는 국민이라 해도 도둑에게 안방까지 내 주어서야 될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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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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