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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묘사된 '빅브라더'의 시대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현재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질과 양, 모든 면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감시기술은 감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종류를 무제한으로 증가시키는 한편 더욱 은밀하고 값싼 감시 및 정보수집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또한 대량으로 수집된 정보는 수요자의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가공·축적될 수도 있다.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된 인터넷에서도 비밀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인터넷상에 익명으로 글을 남겨도 IP 주소가 남고 그것은 개인을 감시하는 통로가 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주고받는 전자우편과 개인이 방문한 인터넷 사이트들, 메신저를 언제라도 감시할 수 있는 전자감시 프로그램도 이제 흔한 것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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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도 비밀은 없다

현재의 감시기술 수준에서도 개인의 인터넷 로그기록, 네트워크 상에서의 행위, 신용카드 사용행태, 위치정보 등에 과한 정보수집이 가능하고, 그 정보를 분석하면 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사고방식, 생활습관, 심지어 사상과 성향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의 거의 모든 일상생활 공간에 고성능 CCTV가 설치되어 실시간으로 불특정 다수를 감시하는 것은 이제 애교(?)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수집된 개인정보의 유출이다. 인터넷 회원사이트에 가입하기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던 주민등록번호, 직업, 관심사, 소득 수준과 같은 민감한 개인정보들은 기업의 도산 통폐합 속에서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정보주체들 조차 알지 못한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A씨의 사례는 개인정보가 유통된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얼마 전 자신이 신청하지도 않은 신용카드 한 장을 배달 받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A씨는 카드회사에 어떻게 된 일인지 문의를 했고 자신이 가입한 모 케이블 방송과 카드회사의 제휴기념 차원에서 카드가 발급되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자신의 카드 발급에 필요한 개인정보는 케이블 방송국에서 카드회사에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시기술의 발전으로 개인정보 지키기는 더욱 힘들어 질 듯"

이 밖에도 정보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는 '함께하는시민행동'에 지난 2년간 접수된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 상담 건수는 3천여 건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개인정보의 수집이 크게 늘어나고 수집된 정보의 불법적인 유출 위험이 높아지게 된 것은 정보화 사회에서 핵심적인 정보의 가치 때문이다. 또 기술적인 측면에서 정보통신기술이나 생체인식기술, 원격감시기술 등의 눈부신 발전은 정보의 수집과 감시의 물적 기반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보화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보호하고 통제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8월 12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들이 '프라이버시 보허법제 개선의 쟁점들'에 관한 워크숍을 열었다.
8월 12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들이 '프라이버시 보허법제 개선의 쟁점들'에 관한 워크숍을 열었다. ⓒ 이승훈
함께하는시민행동, 참여연대, 민주노동당 등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활동해왔던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8월 12일 개최한 '프라이버시 보호 법제 개선을 위한 연속 워크숍'을 열고 이러한 감시체제의 발달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의 이은우 변호사는 '개인정보 보호법제의 발전 방향’이라는 제목의 발제문을 통해 “과도한 정보의 수집은 상대방의 프라이버시와 인격권은 물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까지도 침해함으로써 개인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감시체제의 발달은 인권과 민주주의 심각하게 왜곡할 것"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감시기술을 통해 불특정 개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그 사람의 행동과 사상까지도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고 이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의 왜곡을 가져올 것이라는 게 워크숍에 참석한 각계 정보인권 전문가들이 가진 공통적인 우려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이들은 "정보화 사회에서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은 인권을 보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화 수준이 세계 1, 2위를 다툰다는 우리 나라에서 정보인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수준은 이들의 주장이 무색하리만큼 미미하다.

더구나 정보인권의 중요성은 효율성과 경제적 가치에 밀려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고 있고 정보화 사회에서 국민의 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제도의 마련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보인권전문가들은 경제개발논리로 인권을 희생시켰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국민의 정보인권을 보호할 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교조 주최로 열린 전국교사결의대회 참가자들이 네이스 시행에 반대하며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전교조 주최로 열린 전국교사결의대회 참가자들이 네이스 시행에 반대하며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통합 개인정보보호법 제정해야

가장 시급한 것은 통합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개인정보 보호 규정들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 <전자거래기본법> 등에 산재해 있어 법의 적용과 집행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중앙대 법학연구소 김연수 전임연구원은 "현재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마련된 각종 법률들은 적용대상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함께 아우르지 못하는 등 일정한 한계가 있고, 여러 영역에 걸친 복합적인 침해가 발행했을 경우 법률적용과 피해 구제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다양한 법률에 산재되어 있는 개인정보보호 관련 규정을 일정하게 통합하여 통합 개인정보보호 법을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독일의 경우에도 2001년 발표된 <독일 정보보호법 현대화에 관한 보고서>에서 "연방정보보호법 이외의 여러 특별법들로 인해 법 체계의 구성상 모순, 각 법들의 가치충돌, 법 집행의 어려움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별법들을 연방보호법으로 통합하여 정보보호에 관한 일반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12일 열린 워크숍에서 '독일 정보보호법의 현대화 추진방안에 대한 검토'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독일의 사례를 소개한 한양대 이형규(법학과) 교수는 “다수의 법률에 산재해 있는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규정도 독일의 경우와 같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며 “우리도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포괄하고 각 법을 아우를 수 있는 개인 정보보호에 관한 일반법을 제정하고 예외적인 것만 특별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연합 회원국들 '프라이버시 보호위원회'는 이미 상식

한편 정보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통합프라이버시법의 제정과 더불어 정보의 수집과 유통의 통제권을 보장하기 위한 독립적인 감독기구 설립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민변 이은우 변호사는 “정보의 수집과 이용에 관련된 시스템은 국민과 국회의 입법을 통한 통제가 필요한 사항"이라며 "과도한 정보의 수집이나 유통은 독립적인 감독기구에 의하여 통제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연합은 1995년 개인정보의 처리와 보호에 관한 지침을 채택하여 모든 회원 국가들로 하여금 이에 따른 입법조치를 취하도록 하였는데 이 지침의 28조에는 개인정보보호 감독기관에 대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회원국은 유럽연합의 지침의 준수여부를 조사하고 개인정보 처리와 보호를 감독할 독립적인 감독기관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지침에 따라 대부분의 유럽 연합 회원국들은 국가로부터 독립성을 가지는 것은 물론 업무수행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사권, 문제가 되는 정보의 삭제를 명령하거나 그 처리를 중단시킬 권한, 법령위반을 사법기관에 제소할 권한 등을 가지는 감독기관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는 연방데이터보호위원회가, 프랑스는 국가정보처리자유위원회, 영국은 데이터보호감독관 제도와 데이터보호 재판소가 설치되어 개인정보보호법과 개인정보의 수집과 처리의 모든 과정을 감독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공공영역이나 민간영역에서 벌어지는 감시행위를 감독하고 통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며 “우리나라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협하는 모든 감시행위를 통제할 수 있도록 유럽연합과 같은 수준의 감독기구가 하루빨리 설치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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