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의 마지막 봉사
11: 00, 도와다하치만헤이(十和田八幡平) 국립공원에 있는 오이라세(奧入瀨) 계류(溪流)로 갔다. 이 계곡은 도와다 호수에서 흐르는 단 하나의 계류로 길이가 14킬로미터에 이르고 있다.
계류 중간쯤인 이시게도(石ク戶) 휴게소에서 개울물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오르자 까마귀란 놈이 용케도 이방인을 알아보고 “까아악” “까악” 저희들끼리 비상경계의 신호를 하고 있다.
저 놈들이 보기에는 시꺼먼 게 섬뜩함을 주지만, 제 늙은 아비어미를 지극히 봉양한다는 효성이 지극한 효조(孝鳥)다. 보기에 검다고 흉조(凶鳥)라고 비웃는 사람들이 잘못이다. 저 놈보다 못한 사람이 숱하게 많은 세상이 아닌가?
계곡 물줄기의 흐름이 변화가 많고, 중간 중간 크고 작은 폭포가 비단에 꽃수를 놓은 듯 빙폭(氷瀑)을 이루고 있었다.
눈사태로, 노화(老化)로 쓰러진 고목(古木)들이 많았다. 어떤 고목은 개울 위를 가로질러 쓰러져 개울 이편과 저편을 잇는 외나무다리가 되기도 했다.
고목은 쓰러져서도 뭇 짐승이나 벌레들이 개울을 건널 수 있는 다리로 마지막 봉사를 하고 있었다. ‘고목의 마지막 봉사’, 순간 앞으로 나도 이제는 저 고목처럼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들은 자연 보호가 철저해서 고목이 쓰러져도 일체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둔다고 했다. 심지어 여름 철 장마로 도로가 개울이 되면 그대로 두고, 그 옆 다른 곳으로 새 도로를 낼 만큼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면서 자연을 즐긴다고 한다.
나는 쓰러진 고목들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면서 저 고목이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아 대들보나 기둥이 되지 못했지만, 스스로 개울 이편저편의 다람쥐나 벌레 등이 옮겨 다닐 수 있도록 다리가 되었다. 하기는 대들보나 기둥이 되는 것만이 우주 대자연을 위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대부분 사람들은 대들보나 기둥이 되려고 안달복달한다.
정작 대들보나 기둥감은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데, 야산에 저자에 있는 땔감들이 대들보나 기둥이 되다가 집채로 기울어지는 일도 적잖다. 여기저기 흩어져 쓰러진 고목처럼 나도 그렇게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
그것은 신구 세대의 다리가 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시대인들 신구 세대의 갈등이 없으련만, 지금도 신구 세대간 가치관이나 생각이 차이 등 그 골이 매우 깊다.
또, 한국과 일본 사이도 여태 ‘가깝고도 먼 나라’로 불신과 반목이 매우 깊다. 내 힘이 자랄지는 모르겠지만, 한일 양국의 불신과 반목의 다리를 놓는 그런 작품도 한번 써야겠다는 생각이 불연듯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