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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이 국정운영 제1의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원칙은 민주정치의 보편적인 규칙이며 민주사회의 근본적인 진리다. 그것은 정부의 푯대가 어디를 향해 세워져 있고 또한 어떻게 그곳에 도달하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원칙은 정부가 어떤 상황에서나 최선의 방안을 선택할 수 있는 기준과 근거를 제시해 준다. 그것은 정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해 준다. 원칙은 신뢰의 바탕이 된다. 원칙이 살아 있으면 신뢰는 두터워지기 마련이다.

노무현 정부는 원칙을 국정운영 제1의 원리로 꼽고 있다. 과거 어느 정권보다도 원칙을 중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범 6개월에 즈음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 아니다.

(8월 22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국회의원 138명이 응답한 노무현 정부의 국정수행능력 점수는 100점 만점에 44.8점, 현재 네티즌을 대상으로 조사 중에 있는 <오마이뉴스>에 의하면 8월 26일 08:30경 현재 6784명이 응답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 점수는 100점 만점에 71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정부출범 6개월에 대한 평가는 단기적인 평가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현재의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은 개혁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외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로 인하여 지난 대선을 통해서 표출되었던 시대적 변화에 대한 국민적 여망의 풀이 꺾이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니 노무현 정부는 그런 분위기의 싹을 제거하고 시대적 변화에 대한 국민적 여망을 실현시켜야 할 절대적 책임이 있다. 노무현 정부는 새로운 시대의 힘과 국민의 힘에 의해 태어난 정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민이 부여한 절대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 노무현 정부는 출범 6개월에 대한 평가결과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정운영의 틀을 재점검하고 다듬을 필요가 있다. 특히 낮은 평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진단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가 낮은 평가를 받는 원인

노무현 정부의 경우 총선을 1년여 앞두고 출범했다는 것은 타고난 악조건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사회에서는 통상 지지의 목소리보다는 비판이나 반대의 목소리가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적·경제적 환경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시대적 변화의 거대한 파도로 말미암아 좌초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생존을 위해 묵시적 합의하에 공동으로 펴왔던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전술적 딴지와 전략적 도전에 대한 적절한 대응전략의 부재는 낮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국내외의 불리한 정치적·경제적 조건들과 이를 교묘하게 활용한 보수세력의 무차별적 폄박 등은 출범 당초부터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국정운영능력에 회의를 갖도록 작용했던 외적 요인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출범 6개월에 대한 낮은 평가는 외적 요인의 탓이라기보다는 내적 요인의 탓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부에 대한 외적 환경의 도전은 있기 마련이고 또한 이를 극복해야 할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국정상황에 대한 내적 차원의 인과관계 역시 여러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다. 리더십 행태, 국정운영시스템, 개혁추진동력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국정운영 원칙의 갈등도 중요한 관점 중의 하나라고 본다.

이 관점의 가설은 국정운영 원칙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미흡하면 국정운영상황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고, 이 가설은 노무현 정부 6개월의 경험을 통해서 검증되었다고 본다. 앞으로는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국정운영 원칙의 갈등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국정운영 원칙의 충돌문제 해결방안

정책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국정운영 원칙의 갈등 중에는 여러 정부기관과 관련단체들이 서로 대립되는 원칙의 적용을 주장하는 경우 어떤 원칙을 적용할 것인가라는 원칙충돌의 갈등이 있다.

예컨대 담배 값 인상과 관련하여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장의 원칙을, 재경부는 소비자권익보호의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스크린쿼터와 관련하여 문광부는 문화산업보호의 원칙을, 경제부처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핵폐기물처리장과 관련해서는 살신성인의 원칙과 생존권의 원칙 등 다양한 찬반의 원칙이 대립하고 있다. 언론개혁과 관련하여 정부기관은 언론정책 당사자의 원칙을, 언론기관은 언론자유 우월의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정운영 원칙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국정운영 원칙의 해석론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즉 일단은 원칙의 규범영역을 명확하게 분석하고 전형적인 원칙을 탐색하는 작업을 통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물론 해석론을 통해서 해결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초(超)원칙을 적용하여 접근해야 한다. 원칙의 충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초(超)원칙의 예로서는 ‘원칙효과 계량화의 원칙’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원칙적용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원칙의 효과를 계량화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충돌하는 원칙들의 효과가 비슷비슷하여 그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경우에는 ‘형평성의 원칙’을 적용한다. 이것은 충돌하는 원칙의 영역 중 일부를 공평하게 제약하거나 또는 그 핵심적 영역을 공평하게 반영한 제3의 원칙을 탐색하여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초(超)원칙으로써도 원칙충돌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입법에 의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정운영 원칙의 경합문제 해결방안

정책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국정운영 원칙의 갈등 중에는 하나의 정부기관이나 관련단체가 여러 원칙을 동시에 적용할 것을 주장하는 경우 어떤 원칙을 우선적으로 적용할 것인가라는 원칙경합의 문제도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정책과제를 추진하는 경우 남북당사자 해결원칙, 국제사회의 협력, 한미동맹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 등을 동시에 주장한다거나, 정치개혁을 위한 정책과제를 추진하는 경우 국민참여, 국민통합, 투명성 등을 동시에 주장하는 것 등이 그 예다.

이와 같이 국정운영 원칙이 경합하는 경우에는 정책사안과 원칙간의 관련성을 면밀히 분석한 다음, 여러 원칙 중에서 정책사안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원칙을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사안의 관련성이 동일한 경우에는 그 예측효과가 가장 큰 원칙을 적용한다. 정책사안과 관련이 있는 모든 원칙의 예측효과가 동일한 경우에는 당해 원칙들을 모두 적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정운영 원칙의 제한문제 해결방안

정책과제를 추진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국정운영 원칙의 적용범위를 축소하거나 한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노사간에 극한적인 대립으로 인하여 더 이상 노사자치주의의 원칙을 적용하지 못하고 공권력을 투입한다거나, 핵폐기물처리장 설치와 관련하여 주민간에 찬반의 극한적인 대립으로 인하여 대화와 타협의 원칙을 적용하지 못하고 공권력을 투입하는 경우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국정운영 원칙의 적용을 불가피하게 제한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그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흔히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이 그 제한의 사유로 제시되고 있으나 그러한 사유가 반드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민주사회에서는 원칙제한의 사유보다는 원칙존중의 필요성이 더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파심이기는 하지만 특히 국가안전보장이란 미명아래 원칙이 제한되는 일은 극히 최소한에 국한되어야 할 것이다. 즉 아무리 국가안전보장을 위하여 원칙을 제한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 제한은 최소한에 그쳐야 할 것이다.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한 원칙의 제한 역시 마찬가지다. 즉 아무리 질서유지를 위한 경우라 할지라도 자유민주주의의 절대적 질서유지와 민주사회의 절대적 안녕 보지를 위한 최소한의 제한에 그쳐야 할 것이다.

결단에 의한 과감한 추진, 기대 그리고 인내

시대적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여망을 실현하기 위한 국정운영의 원칙과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 대책은 마련해 놓은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힘과 국민의 힘에 바탕을 둔 결단에 의해 과감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그 효과는 당장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대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과정 중에 수구세력의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국민을 설득하면서 인내해야 한다. 흔들림이 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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