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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자주 가곤 하는 보타닉 가든. 사진틀로 잡아놓은 풍경 속에서 자연과 사람은 하나가 된다.
가족들과 자주 가곤 하는 보타닉 가든. 사진틀로 잡아놓은 풍경 속에서 자연과 사람은 하나가 된다. ⓒ 정철용
이처럼 한국과 뉴질랜드의 가든과 파크의 풍경은 너무나 다르기에 그 안에서 자연을 벗하며 한때를 즐기는 피크닉(picnic) 문화도 다를 수밖에 없다.

피크닉은 점점 멀어져만 가는 인간과 자연과의 거리를 잠시나마 줄이고 그를 통해 삶의 본원적 생명력을 회복하려는 시도일 터이다. 뉴질랜드에서는 그 거리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심리적으로도 자연은 인간의 삶 아주 가까이에 있다. 자연과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우니 피크닉도 일상적 삶의 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뉴질랜드에서는 피크닉을 갈 때 일상의 소도구들이 함께 따라다닌다. 넓은 타월을 깔아 카펫으로 삼고 간이의자와 간이식탁으로 거실을 만들고 햇빛을 가려주는 파라솔이나 간이천막으로 지붕을 삼는 것이 낯설지 않다. 그리고 준비해온 음식을 공원의 야외식탁에 펼쳐놓고 공원에 붙박이로 설치되어 있는 바비큐 시설에서 고기를 구울 때, 자연은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인간의 삶과 연결된다.

뉴질랜드의 바닷가나 공원마다 놓여있는 야외식탁. 주변에 음식점이 없어도 피크닉이 즐거운 이유다.
뉴질랜드의 바닷가나 공원마다 놓여있는 야외식탁. 주변에 음식점이 없어도 피크닉이 즐거운 이유다. ⓒ 정철용
이와는 달리 한국의 자연은 인간의 삶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동차로 한참을 달려야만 닿을 수 있다. 이 물리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감을 만들어내고 자연을 비싼 소비의 대상으로 변화시킨다.

따라서 자연 속으로 피크닉을 떠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하고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야 한다. 그리고 도착해서는 적당한 ‘가든’을 골라 일단 배를 채우고 입장료를 내고 공원으로 들어가서는 여기저기 재빨리 둘러보는 것이 피크닉의 순서가 된다.

시간이 조금 남으면 돗자리를 깔고 잠시 자연을 즐기겠지만 그럴만한 시간적, 공간적 여유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피크닉을 다녀온 날은 더욱 피곤할 뿐, 자연의 생명력은 이미 몸과 마음에서 사라지고 없다.

이민 온 지 얼마 안 되어 가족들과 함께 제인 켐피언 감독의 영화 <피아노>의 촬영지로 유명한 오클랜드 서쪽 해안의 케리케리(Karekare) 해변을 찾았을 때 겪었던 난처함은 바로 나도 모르게 길들여진 이러한 한국식 피크닉 문화에서 비롯된 실수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의 촬영지이니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로 유명한 정동진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음식점이나 카페 등이 있으려니 생각하고 우리는 마실 것도 먹을 것도 전혀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웬걸,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운전해서 막상 도착해보니 넓은 모래사장과 거친 바닷바람 그리고 해안가의 거대한 사구들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음식점과 카페는커녕 이곳이 영화 <피아노>의 촬영 현장이었다는 안내판 하나 서 있지 않았다.

천둥치는 소리를 내며 밀려오는 큰 파도들과 거칠 것 없는 넓은 바닷가는 장관이었으나 우리는 거기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목이 마르다고 졸라대는 딸아이의 칭얼거림과 쪼르륵 쪼르륵 하고 뱃속에서 빨리 점심 먹으러 가자고 재촉하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뉴질랜드의 해변에는 철조망도 횟집도 없다. 오직 넓은 모래사장과 거친 바람 속에 달려오는 파도만 있을 뿐.
뉴질랜드의 해변에는 철조망도 횟집도 없다. 오직 넓은 모래사장과 거친 바람 속에 달려오는 파도만 있을 뿐. ⓒ 정철용
이후로 우리는 나들이를 나설 때는 꼭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챙기고 차 트렁크 안에는 항상 돗자리를 싣고 다니게 되었다. 경치가 좋은 곳일수록 주변에서 음식점이나 카페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운 곳이 바로 이곳 뉴질랜드이니 그렇게 하지 않고는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나무 밑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가스버너에 고기를 구우면서 찬합에 준비해간 음식들과 함께 먹는 자연 속의 피크닉 풍경이 결코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좀처럼 이런 풍경을 대하기 어렵다. 특히 서울과 같은 대도시 주변의 이름난 곳은 계곡이든 강가든 바닷가든 가릴 것 없이, 구석구석 음식점이 들어차 있어서 손수 준비해온 음식을 먹는 풍경은 거의 보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언제부터 한국의 피크닉 풍경이 이렇게 편리만을 추구하는 피곤한 나들이로 변해버렸을까? 아마도 그 수많은 ‘가든’과 ‘파크’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일 것이다. 인공의 ‘가든’과 ‘파크’가 자리 잡은 곳에서는 자연은 멀리 달아나며 피크닉으로도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것이다.

그 많은 ‘가든’과 ‘파크’ 대신에, 자연과 함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야외식탁과 한밤에 밤하늘의 별들을 감상할 수 있는 캠핑장을 갖춘 진짜 가든과 파크를 만들어 놓을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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