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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한 날도 비가 많이 내렸다. 그 비가 마지막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후도 비는 이틀이 멀다 하고 내렸다. 9월 초 이튿날인 오늘도 내린다. 내일도 내린다는 소식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여름 기억은 비밖에 없다. 나는 고사리마을 찾아 백운산 그 긴 계곡을 오르며 내내 짜증을 뱉어냈다. “왜 이리 비가 잦지? 여름내내….”
전남 광양시 진상면 어치리 고사리마을. 이른 봄이면 고로쇠 물로 유명하고 여름이면 어치계곡으로 유명하다. 또 가을은 어떤가? 백운산 단풍. 그야말로 봄이 오기 전부터 가을 늦도록 어치리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맑은 물에 백운산 운치가 대한민국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박 특수가 일기도 한다. 특히 여름 어치계곡은 내내 휴가철 손님과 밀리는 차량으로 발 디딜 틈도 없다고 한다.
고사리 마을 이야기다. 1990년, 그러니까 13년 전이다. 그 당시만해도 백운산에 고사리는 지천이었다. 하지만 소득작물로 꿈꾸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봄에는 고로쇠가 돈을 좀 만들어주고 가을에는 밤이 돈을 만들던 때였다. 하지만 밤나무 소득은 자꾸 내려갔다.
동네에 구회영(57세) 이라는 분이 있었다. 그도 봄에는 고로쇠와 민박을 하며 닭도 잡아주고 염소도 잡았다. 논농사가 조금 있고 가을 밤 수확이 전부였다. 그는 밤나무 주변에 고사리를 눈여겨봤다.
“배고플 때 배를 채워주었던 고사리가 돈이 될 수는 없을까?”
그 당시 고사리를 간간이 꺾으면 5일장에서 용돈을 조금 벌었다. 그는 고사리를 소득원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늘 부인과 의견 충돌을 겪어야 했다.
“마누라는 밤을 키우자는 거예요. 저는 고사리를 키우겠다고 우기고. 많이 싸웠지요. 결국 고사리가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 줄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 이후 고사리 재배 농가가 한집두집 늘기 시작했다.
“고사리는 어디서 키울까?” “번식은?”
나는 고사리를 취재하기 전부터 이 게 가장 궁금했다.
“멋진 비닐하우스에서 자랄 거야”라는 식으로 고사리 밭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계곡 사이 작은 산등성이에 듬성 듬성 있는 게 아닌가?
“어~ 산등성이가 고사리 밭이네!”
토요일 오후 늦게 광양농업기술센터 김영관 지도사의 안내를 받았다.
“저 고사리 밭이 대부분 밤나무 밭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고사리 밭으로 변하여 이 동네 주 소득원으로 버텨 줍니다.”
정말 고사리는 돈이 될까? 초창기 고사리 한 근(600g)은 2만 원. 지금은 3만 원 한다. 고사리 한 근을 만드려면 생고사리 6kg은 삶아서 말려야 한다. 4월부터 6월 말까지 수확하는 데 3일에 한 번씩 수확이 가능해 수확 횟수도 30번은 된다. 더 끊을 수 있으나 내년 수확을 대비해 중단한다. 1평에서 5천 원 수입은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 쌀농사 1평 수입이 2500원이니까 논소득의 2배인 틈새소득이다.
고사리는 그늘을 좋아할 것 같지만 양지를 좋아한다. 또 질 좋은 유기질 토양이라야 줄기가 굵고 질 좋은 고사리를 얻는다. 이런 점에서 백운산은 적지다. 지구가 생기면서 퇴적한 양질의 유기토양이 고품질 고사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지런해야 한다. 낫으로 늘 산초를 깎아 순환농업을 이뤄야 하고 부족한 석회질 넣어야 고사리가 굵어진다. 이와 별도 퇴비를 만들어 넣어주기도 한다. 농약이 필요 없어 다행이지만 늘 비탈산을 오르기에 힘이 부친다.
고사리에도 여러 유사종이 있다. 우리 집 화분에서는 키가 작은 고사리가 자란다. 산에 이끼가 붙어 있는 바위에서 많이 본 듯한 고사리다. 지난해 과천에 있는 한 농원에서 얻은 것인데 처음에는 물도 주고 해서 그런 대로 잘 키웠다.
문제가 겨울을 넘기면서 발생했다. 아파트가 건조해 말라 죽은 것이다. 고사리는 가위에 잘려 베란다에 방치됐다. 그런데 봄이 오면서 이변이 있었다. 분명 화분 구멍(지름2.5센티미터)에서 자란 원 줄기는 잘라 죽었는데 화분을 감싸고 있던 이끼 속에서 적갈색의 아기 고사리가 돋아나는 게 아닌가?
참 신기하게도 7개나 순이 솟았다. 여기서 배운 게 하나 있다. 고사리는 생명력이 강하다. 건조에 더 강하다. 씨앗 맺힘도 없었고 뿌리 연결도 없었는데 이끼에서 7순이나 뿌리를 내린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포자번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현재 이 마을은 마을 전체 30ha 면적에 고사리농사를 한다. 구 회장이 가꾸는 고사리 밭은 6천 평. 평당 5천 원 소득을 쳐서 연 3천만 원의 소득이다.
“마을 전체적으로 살만 합니다. 봄에는 고로쇠로 1천만 원, 여름에는 민박으로 1천만 원, 가을에는 표고버섯, 밤, 꿀, 곶감 등으로 1천만 원하면 산골짜기에서 정말 잘 사는 거지요. 저희는 일년 중에서 정월 한 달만 쉬고 일년내내 돈을 법니다.”
돈 되는 고사리 덕분에 요즘 자녀들 도시 유학도 무리는 없다.
이 마을에는 백운산 고사리 연구회가 있다. 고사리 재배 농가를 중심으로 생겨난 모임이다. 회장은 구회영씨.
“고사리를 키우자”, “고사리가 돈 된다”며 동네 사람들을 설득하기 13년만에 일이다. 취재 중에 고사리 대접을 받았다.
아, 이게 고사리 맛이로구나 생각했다. 양념을 잘 했을까? 고사리만 먹어도 오동통한 그 맛과 부드러운 감촉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고유의 향도 느껴졌다. 이 맛 때문이었다. 올해도 제자리에서 모두 팔았다고 한다.
“늘 딸리지요. 서울에 올라갈 것도 없이 이곳을 찾는 분들이 시식만 하면 모두 사 갑니다. 없어서 못 팔았어요. 집집마다….”
백운산 고사리가 맛있는 이유를 물었다. 이종윤 총무의 답은 너무 간단했다.
“명산 백운산에 1등급 토질과 물과 공기 때문이지요.”
고사리 1번지 하면 어디일까? 글쎄, 내 생각엔 중국 수양산이 아닐까 한다. 수양산은 백이와 숙제가 평생 고사리를 뜯으며 절개를 지켰다고 해서 초등학생 정도이면 안다. 고사리가 구황식품으로 알려는 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오죽했을까?
그 중국산 수양산 고사리가 요즘은 우리 식탁에 넘쳐난다. 농민들도 피해가 크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진짜 수양산 고사리는 아닐텐데 말이다. 올 추석 차례상에 백운산 고사리를 체험해 보면 어떨까? 분명 흐뭇한 추억이 될 것 같다.
“백운산 고사리연구회 농민여러분, 내년에도 ‘고사리 손’ 같은 고사리를 기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