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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관 광주고검장.
이범관 광주고검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누군가가 말하겠거니 기다렸으나 말하는 사람이 없다. 나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검찰을 누구의 감독도 받지 않는 검찰로 내버려두지 않겠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도 별것 아닌 문제로 검찰조사를 받았다는 취지의 대통령의 언급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 지금의 검찰에 문제가 있어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뜻이라면 그것을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밝혀주어야 할 것이다."

지난 3일 현직 고검장이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검찰 중립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란 제목의 글을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렸다. 이 글은 인사권자의 발언에 대해 정면 비판한 내용을 담은 글로 적지 않은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을 쓴 주인공은 바로 이범관 광주고검장(사시 14회). 이 고검장은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서울지검장 등을 거친 인사다. 그가 글을 쓰게된 배경은 최근 전남 광양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 '검찰권 견제' 발언에 기인한다.

이 고검장은 글을 통해 "지금 검찰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공정한 수사는 물론 의식 혁신과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이런 시점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은 30여 년간 공직생활을 한 나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역대 정권마다 검찰 수사의 독자성과 중립성을 강조해왔으나 한번도 실현되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검찰은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아왔다"며 "정치권은 지금도 말로는 검찰의 중립과 수사의 독자성을 보장하겠다면서 또 다른 형태로 검찰의 중립을 저해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고검장은 "이제 검찰의 중립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하고, 검찰의 중립과 수사의 독립성은 우리 스스로 의연하게 지켜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이런 점에서 대통령의 이러한 시각은 '검찰걱정'이라기 보다는 '검찰간섭'이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대통령은 검찰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정권이 깨끗하면 된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다음은 이범관 광주고검장이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 전문.

검찰 중립에 대해 하고 싶은 말

누군가가 말하겠거니 기다렸으나 말하는 사람이 없다. 나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검찰을 누구의 감독도 받지 않는 검찰로 내버려두지 않겠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도 별것 아닌 문제로 검찰조사를 받았다는 취지의 대통령의 언급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

지금의 검찰에 문제가 있어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뜻이라면 그것을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밝혀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 검찰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공정한 수사는 물론, 의식 혁신과 제도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오히려 법무부와 대검이 서로 경쟁적으로 나설 정도로 의욕적이다. 이런 시점에서 나온 대통령의 그와 같은 발언은 30여 년간 공직생활을 한 나도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전국 검사 업무량의 0.1%도 안되는 정치적 쟁점사건으로 검찰은 그동안 많은 곤혹을 겪어왔다. 우리나라 어느 검사가 소신껏 수사하는 것을 마다하겠는가. 검찰인들 왜 중립을 원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검찰의 중립이 보장되지 못한 주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정권에 있다.

역대 정권마다 검찰수사의 독자성과 중립성을 강조해왔으나 한번도 실현되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검찰은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아왔다.

검사들은 국가의 검증과정을 거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일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젊은 검사들이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스스로 개혁과 혁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처럼 총장을 중심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정도를 걷는 국민의 검찰이 되기 위해 헌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이 일찍이 없었다.

정치권은 지금도 말로는 검찰의 중립과 수사의 독자성을 보장하겠다면서 또 다른 행태로 검찰의 중립을 저해하려 하고 있다. 이제 검찰의 중립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검찰의 중립과 수사의 독자성은 우리 스스로가 의연하게 지켜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의 이러한 시각은 검찰걱정이라기보다는 검찰간섭이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전국의 검사들은 사명감이 투철하며 상식과 순리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을 제일 두려워하고 국민의 편에 선 검찰이 되려고 한다.

대통령은 검찰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권이 깨끗하면 된다. 부패와 비리가 있는 곳이면 지위고하 여야를 불문하고 수사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닌 바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검찰의 당연한 책무인 것이다.


"할 말 했다"-"숨은 뜻 있다"
[검찰 내 반응] '이범관 고검장 비판글' 반응 엇갈려

(서울=연합뉴스) 정주호 기자 = 이범관 광주고검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정면 비판하고 나서자 검찰 내부에서는 "할 말을 한 것일 뿐"이라거나 "저의가 있는 것 같다"는 등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일선 검사들은 이 고검장의 글에 대해 대체로 "검찰에 대해 지나치게 강경 일변도인 노 대통령에게 검찰 선배로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한 마디 지적한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서울지검장 재직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홍걸씨를 구속했는데 노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아들이 별 것 아닌 문제로 조사를 받았다'고 평가절하한 것을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검찰에 오래 몸을 담아온 선배가 충정으로 한 말 아니겠느냐"며 "그동안 입밖으로 내지 못했던 말을 선배가 대신해줘 한편으론 부끄럽고 한편으론 통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검사들은 "말은 맞지만 비교적 `관운'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이 고검장이 그런 글을 올렸다는 게 의아하다"며 "이 고검장이 고향인 경기도 여주에서 총선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는데 그런 상황과 연계된 것 아니냐"고 저의를 의심하기도 했다.

법무부의 한 검사는 "이 고검장이 자의든 타의든 다소 정치적 성향이 있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며 "검찰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원로로 현직 고검장이 할만한 말로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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