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주당 분당을 통한 신당 창당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제 속도를 붙여 추석 직후에 신당파가 탈당을 하고 곧바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같은 신당창당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 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태이다. 워낙 시간을 끌어 지켜보던 국민들의 진을 빼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막판에 터져나온 '민주당판 야인시대' 장면은 신주류·구주류 할 것 없이 싸잡아 욕을 먹게 만들었다.

그래서 특별한 흐름을 타지못한채 신당호는 일단 발진하게 되었다. 여기서 신당의 출발이 능동적인 결단이 아니라, 진흙탕 싸움 끝에 떠밀려 이루어지는 모습으로 비쳐진 점은 큰 부담으로 남는다. 민주당의 멱살잡이 싸움은 신당논의를 고작 추한 집안싸움으로 전락시키고 말았고,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에게 양비론적 시선을 갖게 만들었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새로운 정치의 틀을 짜는 일이 어떻게 추한 집안싸움으로 전락하게 되어버린 것일까.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신주류 온건파, 신주류 강경파, 그리고 중도파의 책임이 공히 존재한다. 김원기 창당주비위원장, 천정배 의원, 김근태 의원, 이 세 사람은 각 세력을 대표하던 인물이었다.

@ADTOP@
'지둘러'로 시기 놓친 김원기 위원장

▲ 김원기 신당창당 주비원원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먼저 김원기 창당주비위원장. '지둘러(기다려)'라는 그의 별명은 그냥 붙여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신당논의 8개월 내내 '지둘러'를 반복했다. 신주류 소장파들이 결단을 모색할 때마다 그는 만류하고 제동을 거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보니 신당추진이 시기를 상실하고 동력도 잃어, 그 이후의 신당논의가 결국 구주류에 질질 끌려다니게 되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민주당의 난장판 당무회의는 '지둘러'식 신당추진의 실패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민주당의 분당은 공멸이라는 것이 그의 기본인식이었고, 김 위원장은 위험부담 없는 안전제일주의 신당을 고집했다. 그러나 우리 정치판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일에 어떻게 안전이 보장될 수 있겠는가. 호남표도 고스란히 지키고 개혁표도 얻는,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것이 신당의 논리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제 좌고우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신당행보가 빠르게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는 신당논의 내내 민주당 중심의 신당을 강조해 왔다. 지금도 외부세력과의 연대보다는 민주당 출신만의 교섭단체 구성을 우선하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신당을 해도 '개혁'보다는 '안정'을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개혁신당이라는 정체성에도 반대했고, 개혁성보다는 안정감과 경륜을 가진 인사들이 참여해야 함을 밝혀왔다. 국민에게 안정감있게 인식되는 신당이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일 것이다.

김 위원장의 풍부한 현실경험에서 나오는 그같은 생각들은 일면 타당하다. 소수의 자족적인 실험에 그칠 신당이 아니라면,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김 위원장의 지나친 현실주의적 접근이 신당의 동력을 상실케하는 결과를 낳았음을 생각할 때, 역시 여러 걱정이 든다.

왜 굳이 신당인가. 그 키워드(key word)는 '변화'에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신당은 과거 질서의 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의미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민주당+α'의 틀에 자신의 생각을 가둘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새로 짜는 정당을 만들기를 바란다. 단지 민주당의 자구책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신당이라면 국민의 인정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도적 역할 포기해버린 천정배 의원

▲ 천정배 민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 5월 16일 민주당 신당추진모임이 결성되던 날. 천정배 의원은 행사장에 들어설 때 가장 많은 카메라 플래시를 받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 무렵까지만 해도 그의 입은 신당관련 뉴스를 만들어내는 창구였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천 의원은 지난 해 남들은 승산이 없다고 하는 경선에 노무현 후보가 외롭게 나섰을 시점에, 가장 먼저 그의 옆에 서주었던 현역 의원이었다. 그는 신주류 소장파의 핵심으로 인식될만 했고, 신당추진의 핵심역할을 할 것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개혁신당을 위한 결단을 강조하던 천 의원의 말은 듣기 어려워졌고, 그대신 김원기 위원장의 말이 곧 신주류의 입장이 되곤 했다.

결국 분당을 통한 신당추진이 굳어졌지만, 특별히 신주류 소장파가 이 과정을 선도하거나 주도하는 모습은 아니게 되었다. 누가 하면 어떻겠냐만서도, 앞으로 만들어질 신당의 성격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대목이다.

신당이 단지 민주당 출신 후보들의 총선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의 틀 자체를 바꾸는 의미를 갖는 것이 되려면 어떤 사람들이 그 신당을 이끄느냐, 신당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신당의 얼굴부터가 변화지향적인 성격을 분명히 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민주당의 신당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더욱이 엉뚱한 담합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 때 누군가는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사고를 치며 기폭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그 역할은 천 의원 등이 맡아야 했던 것 아닐까.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천 의원은 대세에 순응하며 굳이 모나지 않는 행보를 해온 것으로 비쳐진다.

과거 양김이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일, 80년대 노무현-김정길-이해찬 의원의 의원직 사퇴가 사퇴정국을 불러온 일, 그리고 가깝게는 지난해 노무현 후보의 도전과 성공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읽은 젊은 정치인들의 도전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경우를 적지않게 보아왔다.

천정배 의원을 포함한 신주류 소장파들은 이번 신당논의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스스로 접어두었던 것은 아닐까. 신주류가 구주류에게 끌려다니게 되었던 것 이상으로, 신주류 소장파들은 중진들에게 끌려 다니는 모습으로 남았다.

앞으로 신당 창당 과정에서 방향과 내용을 둘러싸고 많은 쟁점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소장파들은 그 과정에서 젊고 역동적인 변화의 목소리를 내는데 앞장서야 한다. 그동안 신당논의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못했던 소장파들의 분발과 새로운 다짐을 촉구한다.

만년 중간파 김근태 의원

▲ 김근태 민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리고 김근태 의원. 그는 사흘간의 단식농성을 풀고 신당참여를 선언했다. '속 생각'을 알기어려운 김 의원의 행보는 이번에도 반복되었다. 그의 '석고대죄' 단식농성을 향해 "하려면 진작했어야지, 판이 다 끝났는데 무슨…" 하는 냉소적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1995년 통합민주당이 분당되고 국민회의가 창당될 때, 그는 통합민주당 사수와 국민회의 창당 사이의 중간에 섰다가 막판에 국민회의를 택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때는 후보단일화를 외치며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중간에 섰다. 그리고 올해 신당논의 과정에서 김 의원은 다시 신주류와 구주류의 중간에 섰다가 뒤늦게 신당행에 몸을 싣게 되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 재야 지도자 김근태는 행동으로 상황을 이끌어가는 예지능력을 가진 선각자였다. 그러나 정치인 김근태에게서는 행동으로 방향을 선도하고, 행동으로 상황을 돌파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신당이냐 민주당이냐를 묻는 사람들에게 '평화개혁세력의 단결'이라는 그의 말은 차라리 선문답에 가깝게 들린다.

그가 이렇게 정치적 진의를 의심받는 상황을 반복하는 것은, '도 아니면 모'가 분명한 상황에서도 굳이 자신의 독자적 위치를 설정하고자 하는 자기 집착에 뿌리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가 설정했던 독자적 위치는 언제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지점으로 판명나곤 했다는데 그의 불운이 있다.

지난해 대선, 그리고 올해 신당논의에서 김근태 의원이 분명한 태도를 취해줬더라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 신당을 해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흑과 백이 분명한 상황에서는 분명한 태도를 취할 줄 아는 모습, 그것이 정치인 김근태가 국민속에 남고 신당이 순항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세 사람이 변해야 신당이 산다

김원기, 천정배, 김근태. 민주당의 신주류 온건파, 신주류 강경파, 그리고 중도파를 대표했던 세 사람이다. 민주당의 신당논의가 정치권의 새판짜기가 아니라 추한 집안싸움으로 비쳐지게 된 데에는 이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우여곡절끝에 결국 세 사람은, 아니 이들이 속해있던 세 집단은 이제 같은 신당호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세 세람의 신당행보를 돌아보는 것은 새삼스럽게 지나간 일을 들추는 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이다.

민주당내에서 이 세 세력은 윈-윈의 관계가 되지 못하고, 각자가 서로의 힘을 죽이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제 그래가지고는 신당이 성공할 수 없다. 천정배 의원은 제대로 변화의 목소리를 내며 쟁점을 선도하고, 김원기 위원장은 이를 최대한 수용하며 변화의 병풍역할을 해주고, 김근태 의원은 더 이상 중간지대를 고집하지 않고 화끈하게 밀어줄 때 신당은 성공할 수 있다. 세 사람의 분발과 변화된 모습을 기대한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