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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좋기는 좋은가 봅니다. 한가위 사천만 한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됐습니다. 고속도로는 끝을 알 수 없는 차량 행렬의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앞서 가겠다고 울어대는 차의 경적 소리가 목청을 높이는 시간. 단 한 명의 시민이라도 좀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고향에 이르는 길을 돕기 위해 자신의 한가위를 헌납한 채 타인의 귀성길을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충남 지방 경찰청 고속도로 순찰대 제 2지구대 소속 이훈규(36) 경장은 10년간의 경찰 생활을 하는 동안 명절을 챙겨 본 지가 언제인지 그저 아련할 따름입니다.
눈에 보이는 거라곤 먼 산과 밤 안개, 삭막한 아스팔트, 매연을 내뿜는 차량들이 전부입니다. 간혹 사고라도 나면 그 날은 죄책감에 차마 퇴근하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단속에 걸린 차량 주인들은 '재수 없어 나만 걸렸구나 싶어'라는 생각에 정당히 법을 집행하는 고속도로 순찰대 분들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또 음주, 졸음, 과속 운전 등 안전 운전을 하지 않는 차량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경찰청 내에서도 고속도로 순찰대(이하 고순대)는 위험하고 고된 부서로 낙인찍혀 기피 부서 영순위가 되었습니다.
1년 365일 중 100일을 오후 2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꼬박 17시간 동안 근무해야 하는 고순대는 배치된 몇 안된 인원들마저도 채 1년을 넘기지 못해 인력난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고순대에게 개인 여과 활동 및 가족과의 단란한 생활은 그저 꿈에서나 가능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통 법규 위반 차량에 신호를 보내는 이 경장의 왼손엔 하얀 장갑이 껴 있습니다. 새하얗던 장갑이 검게 그을려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9일 12시부터 12일 24시까지 1차선 도로에서 버스 전용 차선제가 시행됨을 곳곳의 교통 전광판이 알려주고 있는데도 버스를 따르는 승용차들이 줄을 이룹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갓길을 달리는 차량들, 갓길에 차를 정차 후 세상 모르고 잠에 빠진 사람, 차량 고장으로 고순대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 길을 묻는 사람, 중앙선을 침범하며 과속 운전을 하는 사람 등 천태만상입니다.
"가능하다면 교통 법규에 관한 칼럼을 한번 기고해 보고 싶어요. 사람들이 의외로 교통 법규에 관한 기본적인 규칙들을 많이들 모르세요. 단속을 하려 하면 '몰랐기 때문에 위법이 아님'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특히 갓길에서 주무시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처럼 위험 천만한 행동도 없습니다! 사망 사고의 20%는 갓길에서 일어나요. 자신이 잠든 사이 위법 운전을 하는 차와 충돌을 하게 되면 거의 사망에 이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일반분들은 잘 모르시는데 갓길 사고 현장의 참혹함을 목격하신 분들이라면 갓길에서 잠을 잔다는 건 도저히 상상도 못할 위험한 행동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갓길은 생명길이에요. 소방 도로처럼 항상 확보가 되있어야 해요. 갓길이 막혀 버리면 정말 응급 사태가 발생할 때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큰 인명 피해를 볼 수도 있어요. 운전자 분들의 고단함이나 피곤함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면 휴게소를 이용해 잠을 청하고 휴식을 취하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 경장과 동고 동락하는 제 2지구대 막내 조동연(28) 순경은 경찰 경력 5년차로 고순대 활동 한 달에 접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이들이 고순대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위법 운전을 하는 차량 속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생명을 담보로 일해야 하는 위험한 근무 환경을 뽑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조 순경은 좀더 젊을 때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 남들이 피해가려는 고순대를 지원했습니다.
"일이 힘들고 어려운 만큼 고순대는 경찰 경력 3년 이상이 돼야 지원 할 수 있어요. 가끔 끔찍한 사고 현장에 나가면 저도 무서울 때가 있어요. 그러나 고순대에선 교통에 관한 모든 사건 및 법률에 관해 배울 수 있죠.
경찰 업무가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폭 넓게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해요. 아직 젊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 지원 했고 할 수 있다면 2년 근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조 순경은 경찰이 된 이례로 한 번도 차례를 지낸 적이 없습니다. 번번이 비상근무를 하느라 논산에 있는 부모님을 찾아 뵌 지가 언제인지도 까마득합니다. 올해도 조순경은 한없이 이어지는 귀성길 행렬을 바라보며 그저 소리 없는 쓴웃음을 흘립니다.
"저뿐 아니라 모든 경찰들 대부분이 비상일 거예요. 우리에게 '명절' 은 곧 가장 바쁜 '비상근무' 시즌이죠. 항상 고향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아도 막상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쏟아지는 잠을 자느라 부모님은 물론 만삭인 제 아내도 잘 챙기지 못해요.
마음은 안 그런데 게을러서 행동이 잘 따르질 않네요. 이번 추석에도 못 찾아봬 죄송하고 항상 건강하게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시라고 부모님께 전해 드리고 싶어요."
커피 한잔에 잠을 쫓고 고단함을 달래는 막간. 세대가 다른 후배 조 순경과 선배 이 경장을 하나로 묶어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가족 얘기를 나누자 그들 얼굴에 고인 피곤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며 웃음꽃이 기다렸다는 듯 피어납니다.
"신혼에 만삭인 아내가 절 이해해줘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연애 할 때부터 속을 많이 썩였는데 결혼해서까지도 계속 아내 속을 태우네요. 정말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많은데 피곤해서 잘 안 돼요.
솔직히 우리보다도 우리 직업을 이해해주는 가족들이 더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아내와 곧 태어날 우리 아이에게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고 감사한다고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막 자랑스런 아빠가 될 날을 준비하고 있는 조 순경이 그의 2세와 아내에게 기사를 보여줄 것이라며 가족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간곡히 기자에게 당부합니다.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이 경장은 고순대 근무 후 책 읽을 시간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잃어버린 점이 가장 안타깝노라 하소연합니다. 이 경장은 언젠가 시집을 낼 것이라고 합니다.
"막내 아들이 절 보고 경찰관이 되겠다고 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제가 비록 경장으로 말단 직원에 불과해도 우리 애들이 절 자랑스럽게 생각해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의(義)를 따르고 실천하자는 게 제 삶의 좌우명이고 의를 실천하고 싶어 경찰이 됐어요. 비록 지금 제가 하는 일이 작은 의에 불과할지 몰라도 이런 것들이 쌓여 언젠가 큰 의가 될 거라 생각해요.
또 80년대 인기 시리즈 중 하나였던 '기동순찰대'에 등장하는 고속도로 순찰대를 보며 막연히 그들의 삶을 꿈꿨죠. 근데 경찰 생활 9년만인 35세에 드디어 제가 고순대를 하며 꿈을 이룬 거예요! 고순대를 한지 1년이 넘어서는데 정말 저에겐 이렇게 적성에 맞는 일이 없어요.
내가 사랑하는 고속도로 즉, 한국의 대동맥에서 푸른 제복을 입고 생을 마칠 수 있다면 정말 여한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웃음)."
꿈을 이뤘다고 말하는 이 경장 목소리의 떨림이 기자의 귓가에 생생합니다. 그런 그에게도 일의 서글픔이 있고 고민이 있습니다.
"경찰에 관한 과거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이 계세요. 아무리 설득을 하고 이해를 시켜도 막무가내인 경우가 종종 있어요. 가끔 언어뿐 아니라 주먹을 휘두르며 폭력을 행사하기도 해요.
한번은 단속을 하다가 차에 매달린 채 50m를 간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운전자분이 절 고속도로로 밀어내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죠.
모든 경찰들이 과거와 달리 전부 변했다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경찰들 중에는 과거와 달리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근무하는 청렴 결백한 좋은 경찰이 더 많다는 걸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어 고속도로를 한국의 경제로 정의하는 이 경장은 경제 상황을 대변하는 고속도로 상황에 가슴 시려 합니다.
"제가 일 년 전 처음 고순대를 할 때만 해도 주말이면 여행이나 레저를 즐기시러 다니는 차량 때문에 명절 못지 않게 정신이 없었어요. 근데 지금은 차량이 현저히 줄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리고 의외로 승용차를 운전하시는 분들 가운데 사업 부도를 호소하며 선처를 부탁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또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라며 딱지를 떼면 죽어버리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분들도 있구요.
교통 법규를 어기시는 분들 가운데는 운전이 생업과 직결되는 분들이 많아요. 그 분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달려 한 건이라도 더 운반해야 살림이 나아지기에 교통 법규를 종종 무시하곤 하죠. 가끔 걸리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어렵게 사시는 화물 운전자 분들이 종종 있어요.
우리는 그래도 삼 일에 한 번씩 애들 얼굴을 볼 수 있지만 화물 운전을 하시는 분들은 차 안에서 몇 주를 보내며 새우잠을 자고 아내가 싸준 도시락 한끼로 하루를 전전하며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죠. 그런 분들에게 딱지를 뗄 때면 정말 가슴도 아프고 갈등이 많이 생기죠."
혹 몇몇의 어떤 이들이 그에게 상처를 준다 할지언정 고순대를 사랑하는 그의 확고한 의지를 꺽지는 못합니다.
"전 누가 뭐래도 평생을 받칠 수 있는 값어치 있고 보람된 제 직업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리 고순대의 노력으로 인해 작년 대비 사망률이 30%가 감소했어요.
새벽 귀성길에 오르는 수많은 차량이 우리의 순찰을 보고 마음 편히 고향에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단속하는 걸 보여줌으로써 그 분들에게 안전 운행에 대한 경각심과 안도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푸른 제복을 입고 있는 한 전 단순한 이 경장이 아니에요. 고순대의 얼굴이자 더 나아가 대한민국 경찰을 대표할 수 있는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로 인해 행여 다른 경찰분들의 이미지가 안 좋게 비춰질까봐 말이나 행동을 제 임의대로 함부로 할 수가 없어요."
최근 그를 힘빠지게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국도의 음주 단속을 피해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대책 없는 음주 운전자들이 늘어나 여간 고민이 아니라고 합니다.
"일하면서 틈틈이 톨게이트에서 음주 단속을 하면 하루에 10여명 이상이 거뜬히 걸려요. 으레 사람들이 고속도로에서는 음주 단속을 안 할 거라 짐작하며 안전지대로 생각하죠. 자신의 목숨은 물론 타인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음주 운전자들이 차량이 줄지 않아 앞으로 어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한때 우리가 함정단속에 비난을 받았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이젠 많이 변해서 속도는 무인 카메라가 측정을 하고 기타 교통 법규 위반들을 우리가 단속해요. 운전자의 가시 거리에 우리가 안 보이면 이제 우리 또한 그들을 단속할 방법이 없어요. 함정 수사 또한 옛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가 운전자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경찰이 보이건 안 보이건 교통 법규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찰이 눈앞에 보인다고 교통 법규를 지키고 안 보인다고 어기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운전자라면 누구나가 반드시 안전 운행을 지키고 실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고향의 그리움을 일의 보람으로 달래겠다는 이 경장은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는 오늘의 불효를 용서해 달라고 부모님께 전합니다.
새벽 2시부터 5시 사이가 가장 빈번히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시간이라 긴장이 돼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 경장은 '졸음 운전' 또한 엄연한 '위법 운전'이라며 안전 운전을 입이 닳도록 강조합니다.
"어차피 길과 고향은 멀리 도망가지 않아요. 남보다 조금 빨리 가려다 사고가 나거나 혹 단속에 걸리면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지체되잖아요. 고향에 내려갈 때나 서울에 올라갈 때도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운전을 하셨으면 해요. 모두가 안전 운행하며 가족과 함께 즐거운 귀성길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행이 오늘은 큰 사고 없이 새벽을 맞이합니다. 새하얀 장갑이 시커멓게 변한 모습에 일의 뿌듯함을 느낀다는 이 경장은 큰 사고가 없었던 새벽에 이슬 맺힌 공기를 마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합니다.
귀성길에 오른 운전자 및 대한민국 운전자들에게 이 경장이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전합니다.
"아직도 경찰을 어렵고 부담스럽게 보는 분들이 간혹 계시는 것 같아요. 가끔 우리가 도와주려 해도 부담스럽다며 우리의 도움을 거부하려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하지만 결국 우리는 운전하는 시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경찰입니다. 결국 우리를 많이 찾아주셔야 우리의 효용가치가 생기는 거죠. 항상 저희들이 운전자분들 옆에 있음을 잊지 말고 망설임 없이 찾아주세요. 언제든 항상 부르면 달려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