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어디야?"
"민주당이 분당을 하면 대체 어느 당과 당정회의를 해야 하는지…"
민주당의 분당 사태를 지켜보는 정부부처 고위 관계자들은 요즘 곤혹스럽다. 사사건건 정부 정책에 발목을 잡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일도 벅찬데, 여당의 분당 사태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거의 매주,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민주당과 당정회의를 통해 정부 정책의 효율적 입법화를 꾀해 왔던 정부 당국으로서는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정감사와 정기국회라는 정부와 국회의 '전면전'을 앞두고 여당의 분당이 급진전된 시기적 부담도 고민 중의 하나다. '방패'는 줄어들고 '창'만 늘어나는 형국으로 전환된 때문이다.
당정회의 파트너로서의 여당의 개념은 총리 훈령이 정의하고 있다. '여당'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당정회의 주도권 논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총리 훈령에 따르면 '대통령이 당적(黨籍)을 가진 정당을 여당이라고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신당이 만들어진다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하지 않는 이상, '여당'이라는 명패 주인은 법률적으로 현 민주당의 차지다.
당정회의 주도권 논쟁의 한 가운데 정세균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서 있다. 그의 고민은 앞으로 대통령의 공약 사업을 어느 당이 주도할 것인지, 정부와의 민생현안 조율은 어느 당이 도맡아 추진할 것인지 등으로 모아지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국가비전21위원회 본부장을 역임하며 노무현 후보의 정책공약개발을 주도했던 '전력' 탓에 신당행을 택한 그의 행보는 '실질적 여당' 논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노 대통령 탈당, 당정회의 무용론 제기될 수도
정 의장은 신당 참여를 민주당을 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을 이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민주당의 법통성이 신당에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당정회의 주도권이 신당으로 옮겨오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 그는 "민주당에서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주당의 대세가 그런 것"이라며 "어떻게 보면 민주당의 대세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탈당'이라는 표현을 썩 내켜하지는 않아 했다.
사실 정 의장은 신당행으로 마음을 굳힌 지 오래였다. 구주류쪽이 최근 정 의장이 신당호로 몸을 옮기자 "정 의장이 그럴 수가 있느냐"며 섭섭함을 토로했지만, 이미 자신의 지역구인 전북 무주 지구당 당원들을 대상으로 통합신당 대세론을 역설해 온 터였다.
지역구 분위기도 그리 비우호적이지는 않다. 그는 "당원들과 논의해 왔고 통합신당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태"라며 당원들의 지지 덕택에 선택이 분명해 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제 추석 연휴가 끝난 뒤 지구당 상무위원회를 열어 탈당을 승인받은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문제는 법률적으로 신당이 여당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느냐 여부이다. 신당이 현 여당인 민주당의 법통 계승을 주장하고는 있지만 법률적으로는 탈당을 해야 하고, 그럼에도 대통령이 당적을 두고 있는 민주당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탈당을 결행하지 않는 한 당정회의 주도권은 민주당 몫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또 '형식적 여당'과 '실질적 여당'이 병존하는 기묘한 정치구도가 형성돼 정부로서는 양당 모두에 정책협의를 해야 하는 비효율적 당정관계가 만들어지게 될 수도 있다. 당연히 '당정회의 무용론'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2001년 11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탈당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화하면서 당정간 협의 채널이 와해된 전례도 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대안을 뭘까. 정 의장은 대통령의 당적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당정회의 자체는 가져오지 못하더라도 정책협의 수준의 정책조율 대상으로서 위상은 확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사실 당정협의가 없어지면 큰 난리가 나는 것이 아니"라면서도 "당과 의논해 하자는 것이고 다른 형태로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변형된 당정회의를 고민 중임을 시사했다.
비견한 예로 국민의 정부 당시 DJP 연합을 들었다. 그는 "DJP 때도 민주당과 자민련 모두에게 하지 않았나"며 "별 문제가 없다, 잘 지혜를 모으면 이 사태에 관계없이 잘 운영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변형된 당정회의 채널 구축... 법률적 여당 위상 확보가 관건
정 의장의 이러한 발언 배경에는 변형된 당정협의를 통해 민주당과 신당과의 공동 정책조율 시스템을 구축하되, 민주당보다는 신당과 정책조율의 심도와 강도를 높여가는 실질적 당정회의를 추진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듯 보인다. 총선 전까지는 당정회의를 민주당·신당과 병행하되 실질적 주도권을 신당이 갖는 형태다.
총선 이후 제1당으로 부상하면 결국 당정회의 주도권 문제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라는 게 신당파쪽의 구상이다. 정 의장이 당정회의 주도권 논쟁에 크게 개의치 않으며 낙관론을 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런 때문인지 정 의장은 청와대 쪽이 검토 중인 여야 3당 모두에게 정책협의를 하는 방식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는 "어차피 우리와 협의를 해야 할 것"이라며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차피 국정이라는 것은 국민 모두의 것이지 일부에 의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 않느냐", "당정협의라는 것이 왜 있겠는가, 효과가 있으니까 하는 것 아닌가"라며 차기 총선에서 민심을 얻는 여당이 당정회의의 파트너가 될 것임을 암시했다.
그는 대통령의 당적 이탈 문제에 대해 내심 대통령이 민주당 당적을 버릴 것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는 "대통령이 신당에 관여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판단할 것이라고 본다"며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면서도 대통령의 탈당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둔 듯 "(대통령이 무소속이 되면) 정국을 협의하는 정도의 당정협의는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당적이탈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당정회의 주도권을 요구하면 당정회의라는 총선에서의 '빅 프리미엄'을 신당이 얻어올 명분이 그만큼 빈약해지기 때문이다.
대통령 공약사업의 추진과 정부 정책의 입법화 협조를 담당하는 당정회의 총괄역을 정기국회를 앞두고 내던지는 것은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있는 것도 정 의장은 알고 있었다. 그는 "이 문제를 종결시키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 그쪽으로 빨리 정리가 돼야 안정을 찾는다"는 말로 그같은 비판을 반박했다. 빨리 신당 논의를 정리하고 민생 현안을 챙기는 문제에 진력해야 이같은 혼선을 막을 수 있다는 말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