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태풍 매미의 위력 앞에 전파된 대구마을 가옥
태풍 매미의 위력 앞에 전파된 대구마을 가옥 ⓒ 김학록
"매미가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 모랐다"며 지난 59년의 사라호 태풍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여긴 섬이라 특별히 방송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생활이다. 그래서 신수도출장소에서 오전내내 방송을 할때도 그러려니 했다"며 신수도 주민은 하루전의 악몽을 되새겼다.

"저녁 8시가 못되서 바람과 비에, 접안한 배가 걱정이 되서 집 밖을 나서는데 불어나는 물을 보고 망설이다가 안되겠다 싶어 급히 가재도구는 정리도 못하고 학교로 도망쳐 왔다"며 강 아무개 주민은 당시를 회상했다.

신수도는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태풍이 상륙한 8시경부터 다음날 해가 뜨기까지 해일과 바람소리, 어딘가가 거친 파도에 찟겨나가는 바다울음소리를 들으며 섬주민 모두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기자가 자원봉사자 일행과 섬을 찾은 때는 태풍이 지나간 이틀째 아침이다. 신수도는 삼천포항의 유인도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섬의 남쪽에 25여호가 살고 있는 대구마을이 있고, 나머지 200여호는 큰마을이라 일컫는 본동마을에 살고 있다.

뭍에서 친척을 돕기위해 속속 섬으로 들어오고...
뭍에서 친척을 돕기위해 속속 섬으로 들어오고... ⓒ 김학록
본동은 어항개발이 완료되어 현대식 방파제가 조성되어 태풍에 따른 위험이 적고 마을도 고지대에 형성되어 있어 해일에 의한 침수피해 외엔 그닥 큰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대구동과 추섬유원지, 죽방렴발장은 경우가 달랐다.

추섬유원지는 접안시설이 유실되고 민박시설 반파되는 등 해일의 직접적 피해로 상당한 피해를 입고, 뭔가 손을 써야 하는데도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허탈감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하늘만 보고 있었다. 죽방렴의 발장은 높은 파고에 의해, 한 곳은 가옥이 전파되고 다른 한 곳은 반파되어 유명 관광물이 흉물로 변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섬을 한바퀴 일주하고 대구마을에 내렸다. 대구마을은 동서로는 지대가 낮아 동쪽에서 파고가 일면 그 물이 서편으로 넘어 올수 있는 섬 중에서도 저지대에 마을을 이루고 있는 특이한 거주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금번 태풍은 이같은 대구마을의 약점을 그대로 치고 들어 왔다.

태풍에 지붕과 농경지가 유실되고 폐가가 되버린 섬집
태풍에 지붕과 농경지가 유실되고 폐가가 되버린 섬집 ⓒ 김학록
태풍이 상륙한 시간인 오후 8시경은 만조이면서도 비교적 조수위가 높아, 파랑이 인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한 지역인셈이다. 그런데다가 초속 40미터에 이르는 태풍의 바람과 해일에 의한 집체 만한 파도가 마을 전역을 강타했으니 온전하다면 그게 이상할 정도였다.

칠흑같은 어둠속에 밀어 닥치는 파도, 섬마을 지붕을 덮고 있던 힘 없는 스레이트는 그 자체가 흉기였다. 추석을 지새며 그동안의 가족의 정을 나눌 틈도없이 밀어닥친 자연재해 앞에 속수 무책으로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태풍 매미의 위력에 방파제 축양장을 올라 탄 대형바지선
태풍 매미의 위력에 방파제 축양장을 올라 탄 대형바지선 ⓒ 김학록
다음날 아침, 재산피해 규모는 집계자체가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천우신조인지 인명손실은 전혀 없었다. 심지어 집에서 기르는 가축조차도 피해가 전혀 없었다.

이유는 공무원들과 마을지도자들에게 있었다. 자원봉사 할동중에 주민이 전해 준 말이다. 강호진 소장(사천시 수산직 6급)을 포함한 마을지도자의 동분서주가 오늘만이 아니고 추석을 반납한 채 연사흘 섬을 떠나지 않고 첫날은 수해예방을 위해 그 다음날 부터는 재난복구를 위해 비지땀을 흘리며 노력한 결과라는 것이다.

검게 거을린 얼굴에 사천시청 모자를 눌러 써고 재난구호물품을 직접요청해 주민에게 보급하고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위로하는 작은 섬 공무원의 노력 앞에 숙연한 무엇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윽고 지역구 국회의원과 사천시장 이하 기관장들의 피해지 위문이 이어졌고 시청 공무원 20여명이 대민봉사를 위해 섬을 찾았다. 방파제 선착장에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마을의 한 주민은 "문디 XX들, 우리가 언제 라면 몇개 받고 악수하자고 했나"며 격앙된 어조로 그동안의 피로기가 가득한 눈에 핏발을 세우며 말했다.

그러자 그 옆의 다른 주민은 "그래도, 이 난리통에 방문한 어른들이지 않냐!"며 "할 말이 있으면 조근조근 부탁하면 될일 아이가!"하며 타일렀다.

우리 서민은 자연재해가 가져다 준 고통보다 해도해도 못 따라가는 현실 앞에 한 발 뒤로 밀려나는 상대적 허탈감에 더 고통스러워 한다. 다시 섬주민들은 일상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땀 흘려 일한다.

신수출장소에서 집계한 피해상황을 옮겨본다.

△주택피해 전파 5채, 반파 10채, 침수피해 25채
△양어장피해 1개소전파, 광어 7만5천미 폐사
△죽방렴어장 피해 반파 2개소
△산사태 피해 2개소
△도로유실 3개소
△농경지유실 9개소
△대구방면 급수관 파열
△선착장 피해 2개소

신수도 섬내의 전력은 태풍피해 24시간만에 복구가 되었고, 14일 통신선로와 급수시설도 저녁 6시에 완전복구되었다. 또한 사천시에서 마련한 긴급구호 물품도 이날 오후 2시경에 전 피해주민에게 지급이 완료되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한 자신감 회복만 남은 듯 했다.

급수관 파열로 우수를 모아 침수된 옷가지들을 헹구고 있다.
급수관 파열로 우수를 모아 침수된 옷가지들을 헹구고 있다. ⓒ 김학록
사천시에서 복구에 대한 종합적인 실태조사와 후속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 시름에 찬 주민들의 깊게 패인 주름살 위로 환한 웃음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뜻 깊은 추석명절을 반납해가며 누가 알아주기를 바래서라기보다 공무원의 주어진 책무이기에 최선을 다한다는 신수출장소 소속 시직원을 포함해서 늘 잘해야 본전인 공직의 자리에서 욕 먹기를 마다하지 않고 꿋꿋이 노력하는 모든 공무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글을 마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