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정재 일당의 깡패행진 (해방20년편찬회, <해방20년>, 세문사. 1975)
이정재 일당의 깡패행진 (해방20년편찬회, <해방20년>, 세문사. 1975) ⓒ 세문사
드라마에서 흥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에 대해 내내 찬반 양론이 존재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KBS드라마 <태조 왕건>이다. 보리를 훔쳐먹다가 분노한 농민들에게 맞아 죽는 것으로 사기에 기록돼있는 궁예가, 멋들어지게 유언까지 남기며 장렬한 자결의 순간을 맞이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해석은 있을 수 있어도, 역사적 사실 자체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야인시대>에 와서는 문제가 그 수준을 넘어선 느낌이다. 이것은 재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조금 비틀어 놓는 수준이 아니라, 정치 깡패들을 우국지사로 둔갑시키기 위해 줄거리를 통째로 비틀고, 그래도 부족한 공백은 더덕더덕 허구의 시멘트로 발라 메우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에 담겨 있는 위험한 허구들은 김두한의 항일 행적에 관한 것보다도, 이정재, 유지광, 시라소니 등 주변 인물들의 ‘멋’과 ‘사내다움’에 관한 장면들이다.

인간이 판단하는 선악의 보편적인 기준에서, 폭력이란 어쨌거나 악의 범주에 들게 된다. 따라서 폭력을 주인공 삼는 창작물들은 대개 선악의 가치판단을 떠나곤 한다. 식민지 말기 숱하게 굶어죽던 시절에 하는 일 없이 상인들에게 ‘세금’이나 걷어다가 쌀 몇 말 값이라던 ‘비루(맥주)’나 마시던 건달들이 일반인들에게는 분명 악한 존재지만, 그 건달들 간의 관계에서는 ‘선악’을 떠난 ‘투쟁’만으로 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 어쨌거나 방송국(혹은 영화사)도 먹고 살아야 하겠기에 깡패들을 계속 등장시킬 수밖에 없다면, 이제는 그저 깡패들끼리의 전쟁만을 리얼하게 그려주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어린 애들 다 보는 초저녁에 사시미 칼이 난무하고 유혈이 낭자하더라도, 정치깡패들이 턱없이 민족과 정의를 고뇌하며 주먹을 휘두르는 억지를 부리는 것보다는 훨씬 교육적일 테니 말이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