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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진 6>
<사진 6> ⓒ 정판수


檀紀 四二九二年 八月 十日 日新病院 件 (필자 註 : 가운데 붓글씨를 제외하고는 연필로 적혀 있음)

아! 人間이 무습다.
나는 나의 잘못을 깨닫고 그 以北女人의게 最善을 다 하엿다.
그리고 붓태님께 아침마다 참해하고 産婦人科 患者의게는 醫法規에 따라셔 하기로 결심하엿다.
그러나 사람이 살고 보니 不幸中多幸이터라
나는 돈이 없어셔 귀한 혈액을 뽀아셔 주엇다
三年 後에 白癌凡(?)이 끌잇다
(붓글씨 아래 묻혀 있는 연필 글씨는 '돈 없는 설움에 남편 없는 설움에 大腸 아픔에 배 쓰어가면서 울엇다'가 기록돼 있음 : 필자 註)
아모리 울지 않켓다고 하여도 눈물이 나오셔 죽는 것 같엇다
아 宇宙의 天地日月님은 감동하소셔 나를 도와주소셔 - 拍手


그리고 책장 윗부분에 '虛慾을 부리지 말자'고 적혀 있다 (필자 註)

1959년

여인의 직업을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다. 부산 어느 산부인과 간호사인 듯.
그런데 병원에서,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의료사고가 있었는 듯하다.
이북여인이라 지칭되는 이가 누구의 잘못인지 생명이 위독하게 됐는데, 여인이 모든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보상해야 될 입장인 것 같다. 그런데 보상금을 마련할 돈이 없으니 피를 팔아야 했고 …
돈 없는 설움과 남편 없는 설움에다 대장(大腸)마저 아프니 배 쓸어가면서 이 글을 적다가 아무리 울지 않겠다고 맹세했건만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으리라.

<사진 7>
<사진 7> ⓒ 정판수


四二九四年 十一月 十四日(十二月九日)
年末에 經濟的 支擊을 만이 받어서 죽을 지경이다
아해들이 옷이야고 울고 쪼어니 寒心할 지경이다
그러나 고맙게도 도와주시셔 大昌商會 金海岡 夫婦을 守護神 가치 어깃다
나는 죽은 死線을 넘엇다
너무나 감사하다고 늣깃다
어떠한 히생이라도 하여도 돈을 모와야겟다

四二九四年 十二月 二十四日
高복슈부터 大鮮소주 50 두루미 사주고 一金 五萬  얻엇다
徐乙澤 氏 李次善 여사의 아름다운 자비心에 간격의 눈물을 흘엇다
이것이 다 친구의 특택이다



1961년

연말이 되었는데도 집안 형편이 무척 어려워 아이들에게 옷 하나 사 줄 형편이 못 된다. 아이들이 울고 보챌 때 친구들이 경제적 지원사격을 했다. 그러니 여인에게 그들은 수호신일 수밖에.
얼마나 힘든 시기였는지 그녀는 사선(死線)을 넘어간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돈을 모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다.

<사진 8>
<사진 8> ⓒ 정판수


단기 四二九五年 一月 一日 元旦
아침 五時 頃 일어나셔 붓채님께 불공하고 아해들 수명장슈을 빌엇다
今年에은 一大 計劃을 지어셔,
一. 집을 비아셔 조케 수리할 것
二. 자식들의게 의논하여 勤勉 貯蓄하여 一日 빨니 재건하게꿈 노력할 것
三. 앞날의 쌀님사리를 잘 연구할 것
四. 虛禮 허비을 아니 할 것
五. 장사을 할 것

一月 一日
徐斗年 氏의 病이 速이 완치되게 빌엇다
저의게 둘도 업은 친구
徐斗年 氏 金甲淑 氏의 만수무강과 사업 성취을 빌엇다
우리 建宇 祖上任이 돌보아셔 父母의게 조은 인연 짓고 조은 因緣 作福 맛나게 빌엇다


1962년

새해 첫날, 아침 불공을 드리면서 아이들의 무병(無病) 장수(長壽)를 빌고, 한 해의 계획을 세운다.
집수리를 해야 할 것, 자식들에게 근면 저축 정신을 기르게 할 것, 장래의 생활을 설계하고, 허례(虛禮) 허비(虛費)를 하지 않을 것, 장사를 할 것 등 다섯 가지.
왼쪽 면에는 자기에게 늘 도움 준 친구 병의 조속 완쾌와 그 부부의 사업 성취를 빌고, 아들에게도 복이 많이 내리길 빌고 있다.

<사진 9>
<사진 9> ⓒ 정판수


55才
초여름 六月 四日 事故 司公點順

58才대
一月二十八日 새벽 李愛子 22才
  十二月 二十九日 새벽

1968年
一年을 조심하여셔 잘 지냇다고 安心하엿터니 陽 一月 二十四日 橫位
21才 處女 同情하여셔 마음 놋코 하여줌
父母가 惡質

왼쪽 면(필자 註)
一月 二十六日 四個月 處女 弱體
出血 腹膜炎을 이러커셔 (Aous) 후 數時間 앞음, 李愛子
너무 마음이 앞어고 진지리가 난다


1968년

산부인과에 찾아온 이 아무개란 여자로 인해 마음고생을 하는 장면이다.
시간 순으로 보면(왼쪽부터) 여자는 출혈이 심하고 복막염으로 수 시간 앓고 있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진저리가 처진다.
그래서 橫位(자궁 속에서 태아가 옆으로 있는 상태 : 필자 註)인 여자를 동정하여 마음놓고 받아주다가 무슨 일이 생긴 듯.
부모가 악질이라 하니 아마도 찾아와 힘들게 했으리라.
그래도 간호사(?)의 입장에서 환자를 대하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다.

<사진 10>
<사진 10> ⓒ 정판수


一九七一年 一月 三十日
신애욋과에 千培가 자동차 事故로 骨(右 종지다리)을 부셧다.   十二月 三十日 夜 十一時
나는 자식들 보고 너무나 욕을 만이 하고 악언을 하엿다
입조심, 자식들이 애를 먹이셔 다리을 뿌술나고 얼마나 욕을 하엿터니 가연 千培가 당햇다
나도 30日날 室內에셔 미거러저셔 허리을 따칫다


1971년

아들이 자동차 사고로 다리뼈가 부러졌다. 그래서 아들에게 조심하지 못함을 욕을 하면서 나무랐던가 보다. 그리고는 이내 후회한다. 평소에 '너희들이 그렇게 에미 애먹이다간 다리 부러질 거다'고 악담한 것이 현실로 드러난 것 같아 마음 아프다. 더욱이 그날 자신도 미끄러져서 허리를 다쳤으니 …

지나고 나면 과거의 아픔과 슬픔과 괴로움이 미래의 양식이 될 수 있고, 또 아침이슬처럼 영롱하게 자신의 삶에 한 가닥 빛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남편을 잃고 여러 자식들을 홀로 키우며 살아가면서 부딪혀오는 세파를 힘겹게 헤쳐간 얘기는 단순히 한 여인의 얘기가 아니라 그 시절 다들 어렵게 살아야만 했던 바로 우리 어머니들의 한(恨)으로 받아들여야만 했기에 내내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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