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이 전주에서 고등학교 다니고 있는데, 선생님이 수업 중에 '부안은 지금 지역 이기주의 때문에 폭력도 불사한다더라'고 학생들한테 말했다는 거여. 이 선생님이 뭘 가지고 판단한 거겠오. 다 당신들 신문 방송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오"
며칠 전 한 부안 주민이 집회를 촬영하러 온 지역 방송사 기자들에게 하소연한 얘기다.
부안 군민들의 '(지역)언론 불신'은 지난 8월 23일 전주에서 있었던 핵폐기장 반대 집회에서 주민들이 취재 기자를 폭행하고 카메라를 파손한 사건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핵폐기장 반대 투쟁이 두 달을 넘기고 있는 지금도 대책위에서 발급하는 프레스 카드를 휴대해야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등 그 분노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폭력성 부각, 핵폐기장 반대 투쟁의 이유 왜곡
반대 투쟁의 폭력성만을 부각시키는 피상적 기사와 군민들의 투쟁의 이유를 '보상금과 지원책이 부족한 데서 나오는 불만'으로 왜곡하는 지역 언론의 보도 태도. 급기야 지난 8일 내소사에서 김종규 군수가 주민들에게 뭇매를 맞은 사건에 대해 지역 언론,방송이 일제히 보도한 태도는 "사건 정황에 대한 정확한 보도 없이, 군수를 영웅화시키며, 주민들을 이성을 잃은 폭도로 내모는 결과"를 만들었다는 게 부안 군민들의 평이다. 군민들은 "그렇다면 두 달여 간의 투쟁 동안 부안 군민들이 핵폐기장을 반대하는 이유와 경찰 폭력으로 무수하게 다친 부상자들에 대해서는 왜 제대로 보도하지 않느냐"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와 같은 지역 언론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지역 언론이 가야 할 올바른 길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9월 17일 부안 수협 앞 53일째 촛불 집회장에서 벌어졌다. 문화연대, 부안핵대책위, 전북민언련이 공동주최하고, 김동민, 장호순, 전규찬 교수 등이 발제자로 참가해 무대에 선 이 토론회에서는 그간 핵폐기장 보도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언론 개혁을 위한 다양한 과제들이 제기됐다.
부안 군민을 대표해 발언을 한 서동진(한의사)씨는 "부안 군민들의 분노는 정부와 한수원의 입장만을 확대 보도하는 언론에 책임이 있다"며 언론 방송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서 씨는 '군수 행동, 용기 있는 결단', '작은 거인 김종규', '김 군수 사전에 많은 학습-안전성 확신' 등 7월 11일 김종규 부안 군수의 기습적인 핵폐기장 위도 유치 신청에 대한 지역 신문 기사들의 카피를 사례로 들었다.
서 씨는 "부안의 현재 상항은 한수원의 74억원 홍보비 지출과 기자 관광 등 금권과 관권에 물들은 지역 언론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며, 왜곡 보도 언론사에 대한 적극적인 항의와 구독 거부 운동을 벌일 것을 군민들에게 제안했다.
"근본적으로, 기득권 편에 선 수구 언론 개혁해야"
이어 발제자로 나선 김동민 교수(전북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공동대표, 한일장신대)는 "'바위섬'이라는 노래는 외부와 고립된 광주 항쟁을 상징하는 노래였었는데, 부안도 이 '바위섬'과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며 현재의 부안 군민들의 투쟁에 대한 심정을 밝혔다. 또 "언론은 개혁을 원하지 않는다"며 "언론이라는 것은 이미 수구 기득권 세력과 한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안 군민들도 핵폐기장 반대 투쟁을 벌이면서 언론은 개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라며 "작게는 '나쁜 신문' 구독 거부에서부터 시작해, 함께 언론 개혁 운동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장호순 교수(순천향대)는 '왜 언론이 기득권의 편에 서서 서민의 의견을 무시하는가'에 대해 중앙 언론과 지역 언론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의견을 피력했다. 장 교수는 "대다수의 중앙 언론들은 사실 지역민들의 입장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며 "부안이라는 작은 지역민 일부가 구독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구독률에는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지역 언론의 경우, 자발적인 구독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업이나 관청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특히 전남 전북 지역이 의존도가 큰 편"이라며 "결국 기업과 관으로부터 독립돼 주민들 스스로 대안적인 언론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규찬 교수(강원대)는 "언론은 기본적으로 냉담, 무식, 표피, 현상, 폭력 몰두 등의 특징을 띠고 있다"면서 "지난 8일 내소사 군수 폭행 사태도 언론이 부안 사태의 추이를 보며 폭력성에 주목하고 있을 때, 주민들이 안타깝게도 '걸려 든' 결과"라며 언론의 생리를 설명했다. 그리고 "언론은 스스로의 폭력성은 돌아보지 않는다"며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부안의 이미지는 '공포'이고, 부안 군민은 '사회적 위기의 주범'이다"라고 분석했다. 또 "이런 때 언론이 자주 이용하는 말이 '국민'이라는 단어인데, 이때 부안 주민은 '국민'에서 제외되고 바깥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앞으로도 미디어는 냉담할 것"이라며 "기성 언론에 기대는 접고, 스스로 미디어의 주인이 되는 길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민들 스스로 미디어의 주인이 되자"
박종훈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대표는 "전북 지역 언론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강현욱 도지사를 필두로 한 관치 언론"이라며 "강 도지사의 전북 지역 핵단지화 구상과 언론 통제가 중단되는 것이 중요한다"고 강조했다.
두시간여의 열띤 발언이 이어진 후, 부안 군민들은 '왜곡 편파 보도 지역 언론의 각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군내 언론사 이름을 붙여 넣은 허수아비를 불태웠다. 이날 계획돼 있던 주민들의 언론 문제에 관한 자유 발언은 시간 부족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주최 단체의 관계자는 "촛불 토론회는 언론 보도 태도의 문제점을 환기시키고 군민들의 뜻을 모으기 위해 준비된 자리였고,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언론,시민 단체들이 서울에서의 토론회 개최 등 핵폐기장 보도 태도의 문제점에 대해 본격적으로 진단하고 개혁하는 활동을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