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크로포트킨이 직접 쓴 자서전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지루하게 나열하거나 자신이 한 일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가 흔히 접해 온 자서전들과 다르다. 책의 서문에서 게오르그 브란데스가 얘기하듯이, 이 자서전에서 크로포트킨은
"자신의 심리보다는 자신을 포함한 동시대인의 심리를 묘사"(39쪽)하려 했다. 러시아인이자 세계 시민, 아나키스트였던 크로포트킨은 그 시대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자신의 삶을 불태운다.
크로포트킨을 불타게 한 것은 학문에 대한 열정과 혁명을 일으키려는 노력이었다. 상페테스부르크에서 보낸 유년 시절부터 시베리아에서 보낸 청년 시절까지, 아니 그의 일생 동안 크로포트킨은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연구자이자 지리학자였다. 그런데 그는 혼자서 만족하는 학문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학문이 자기 혼자만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나누는 '공유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그 학문을 실제로 민중들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 | | 크로포트킨 소개 | | | |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1842~1921)
19세기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혁명가이자 이론가, 지리학자이다. 모스크바 명문 귀족 출신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근위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알렉산드르 2세의 시종무관으로 근무했다.
장교를 퇴임한 그는 지리학자로 유럽 여러 곳을 탐사하며 연구했다. 그는 지리학에서 저명한 독일의 지리학자 훔볼트의 오류를 교정하고 북극해 군도의 존재를 예측하는 등 많은 연구 성과를 거두었다.
스위스에서 아나키즘 노동조합인 쥐라 연합을 목격하면서 아나키즘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러시아로 돌아와 혁명 운동에 투신했다. 32세에 러시아 당국에 체포된 그는 병이 악화되어 병원 감옥에 수감되었고 그곳에서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이후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지에서 주옥같은 아나키즘 문헌들을 집필하며 사회주의 아나키즘 운동을 주도했다. 프랑스에서 다시 체포된 그는 3년 후 석방되었다. 국제노동자협회(인터내셔널)에서 활동하면서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한 권위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비판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크로포트킨은 러시아로 전격 귀국했으나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의 독재 체제에 불만을 품고 레닌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함께 혁명 투쟁을 벌였던 볼셰비키 정권에 의해 아나키스트 조직들이 궤멸되자 지병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저서로 <빵의 정복>, <상호부조론>, <근대과학과 아나키즘>, <윤리학> 등이 있다. | | | | |
그래서 그에게 학문은 혁명과 분리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운동가들이 자신의 삶을 과거와 '단절'시켜 현재를 정당화하고 미래를 장악하려 했다면, 크로포트킨은 자신의 삶을 훌륭하게 이어갔다.
"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생산과 발명 등 사회적 창고 행위가 속도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하지 않을까? 민중은 알고 싶어한다. 그들은 배우고 싶어하며 배울 수 있다.…그들은 기회와 방법과 시간만 주어진다면 자신의 지식을 확장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해 나가야 할 방향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해 나가야 할 방향은 바로 이것이었다. 말로만 인류의 진보를 역설하는 진보주의자들, 농민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체 하면서 실은 농민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은 단지 자신의 모순을 감추는 데 급급하여 궤변만 늘어놓고 있었다."(318쪽)
그는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중들과 정확한 지식을 나누기 위해 연구했다. 학문은 특정한 소수의 계급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중을 위한 것이다.
사실 크로포트킨이 단절하려 한 것은 학문이나 삶이 아니었다. 대신에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누려온 '기득권'과 단절한다. 그는 자신이 누렸던 귀족적인 삶을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 귀족의 아들, 근위 학교의 장교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그는 가장 험난한 길을 선택한다. 그는 당시 권력의 중심지인 황궁에서 일할 수 있는 특권을 버리고 미지의 땅 시베리아로 향한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시베리아에서도 식지 않는다. 그곳에서 크로포트킨은 책으로만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다. 이제 그는 세계를 책으로 삼고 자신의 몸을 붓 삼아 직접 보고 체험하며 생각하기 시작한다.
"5년 동안 시베리아는 나에게 인생과 인간의 본질에 관한 참된 가르침을 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다. 가장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최상류 계층과 밑바닥 생활을 하는 최하류 계층, 부랑자들과 계도가 불가능한 상습범들 등 실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었다. 나는 농민들의 풍속과 관습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다."(237쪽)
그는 책상머리에 앉아 고민하는 것보다 직접 돌아보며 얘기를 나눴다. 그는 이런 만남을 통해 한 사람의 민중이 아니라 '그 시대의 민중들'이 가슴 속에 담고 있던 '깊은 영혼'을 느끼게 된다.
"시베리아에서 몇 년간 지내면서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행정 기구는 절대로 민중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나는 그 같은 환상에서 영원히 벗어났다. 나는 인간과 인간성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내적인 원천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문서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이름 없는 민중의 건설적인 노동이 사회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눈앞에 또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례로 나는 아무리 지방에 이주된 두호보르파 공동체의 생활 방식을 보면서 형제애를 기반으로 한 반(半)공산주의적 조직에서 얻어지는 막대한 이득을 보았다. 러시아 개척민의 정착이 거의 실패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의 이민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원주민들과 생활하면서 문명의 영향력이 없이도 복잡한 사회조직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책에서 얻은 깨달음 못지 않은 각성을 가져다주었다. 이름 없는 민중이 모든 중요한 역사적 사건-전쟁까지를 포함해-을 완성하는 것을 목격한 나는 이들의 역할을 실감하게 되었다."(289쪽)
그리고 이런 영혼의 떨림이 그를 아나키스트로 변화시켰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민중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절망적일 때, 감옥에 갇혔을 때도 그는 사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영혼에 충실했다.
어떤 사람들은 등 따시고 배부르니까 혁명을 생각한다고 한다. 사실 그런 시선은 우리 사회에 아주 깊이 뿌리내려 있다. 하지만 등 따시고 배부른 사람들이 등 따시지 않고 배부르지 않은 삶을 추구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등 따시지 않고 배부르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는 건 쉽다. 그렇게 쭉 살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사람들은 자신이 누려보지 못한 삶을 동경할 수 있고 그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하지만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끊임없이 자기 삶을 반성하고 그 유혹을 극복하려 한다(물론 그런 것이 관념적인 급진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올라가지 못한 사람이 위를 쳐다보며 욕하는 건 쉽지만 위에 있던 사람이 내려와서 그 속에 뿌리내리기란 어렵다. 바로 그 점에 크로포트킨의 위대함이 있다.
왜 우리는 자서전을 읽을까? 아마도 혼란스럽고 힘든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간 인물들의 삶을 통해 지금의 내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어서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교훈을 충분히 줄 뿐 아니라 시대와 교감하려면 합리적인 지성만이 아니라 민중과 함께 하는 깊은 영혼을 품는 것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자신의 내면 세계로 도피하는 영혼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고 때론 그 시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영혼.
아쉽게도 이 책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끝난다. 어찌 보면 그것은 다행일지 모른다. 혁명이 변질되면서 크로포트킨이 느꼈을 그 아픔을 이 책을 통해 예상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확신했기 때문이다.
"혁명은 성공한 뒤의 정치적 보상이 아니라, 그 시작부터가 짓밟히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향한 정의의 행동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혁명은 반드시 실패한다. 불행하게도 지도자들은 그 주요한 문제를 망각하고 혁명을 군사적 전술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혁명가가 진정으로 민중을 위한 새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데 실패한다면 어떠한 시도도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249쪽)
영혼의 무게를 담지 못했기에 사회주의는 제도의 변화와 함께 무너졌다. 사회주의가 바탕을 뒀던 바로 그 대중들이 망치로 사회주의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해 왔던 사람들의 정신은, 항상 대중과 함께 하고자 했던 그들의 영혼은 아직 현실에 뿌리내려 있다. 600페이지를 조금 못 채우는 이 두터운 한 권의 책 속에 그 소중한 영혼의 싹이 숨어 있다.
P. A. 크로포트킨/김유곤 옮김, <크로포트킨 자서전>(우물이 있는 집,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