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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일각에서 '신3당연합'을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신당이 노무현 정부의 여당처럼 창당되니까, 그러면 나머지 정당들이 야당으로 뭉치자는 생각으로 얼핏 들으면 그럴 듯 해 보인다.

그러니까 한나라당과 잔류 민주당, 자민련이 합쳐서 '큰 야당'을 해 보자는 얘기다. 그렇게만 된다면 헌법상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는 무소불위의 거대 정당이 돼서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을 새로 창출할 수 있다는 발상일 것이다.

헌법과 국회법 상 국회가 의결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 개헌과 대통령 탄핵이다.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통령 탄핵의 경우 국회에서 재적 3분의 2가 동의해서 의결됐다 해도 그대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실정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했다는 근거가 있는지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가려서 판결해야 최종 결정된다.

패권정당 넘어 '전지전능' 독재정당 원하는가

지금 한나라당은 재적 과반의석을 넘겨서 그것만으로도 모든 법안과 예산안 처리, 장관 해임건의까지 의결할 수 있는 지배적 패권정당이돼 있다. 그런데도 재적 3분의 2선을 확보해야 '전지전능'의 정당이 될 수 있다는 '수의 마력'에 빠져 든 모양이다.

국회의 의석수를 늘리는 3당연합을 하기만 하면 내각제 개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현실적으로 그것이 터무니 없는 일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몇가지 근거만 대면 정치인으로서 양식을 의심케 하는 발언임이 금방 드러나기 때문이다.

첫째, 내각제와 대통령제의 장단점 자체를 논의하면서 개헌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3당연합을 하면 의석수가 대폭 늘어나니까 하자는 식이다. 이런 정도로 유치하고 감정적인 발상을 하는 사람을 책임있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개탄스럽다.

둘째, 개헌은 국회의 의석수만 확보했다 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더 중요하게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지금 일반국민 여론조사는 어느 기관이 수행해도 내각제 반대가 다수로 나타나고 있다.

개헌론자들은 우리 역사상 국민투표가 부결된 예는 아직 없다며 통과를 낙관할지 모르나 과거 국민투표는 모두 군사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치러진 결과였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국민참여시대, 인터넷 문화를 감안하면 여론조사 결과가 거의 정밀하게 투표로 연결된다고 보아야 한다.

광주민심 '민주당-한나라당 연합' 용인할까

셋째, 신당이 분리돼 나간 뒤 잔류 민주당이 홧김에 뭐 한다는 식으로 한나라당과 통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문제다. 이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몰상식할 뿐더러 역사관의 퇴행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뿌리는 1980년 전두환 노태우 씨 등 정치군벌 하나회가 조직한 민정당이다. 1990년 민정당과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3당통합'을 해서 민자당으로 됐다.

바로 그 민자당을 김영삼 대통령은 신한국당으로, 이회창 총재가 다시 한나라당으로 당명 개칭이나 재창당해서 이미지 쇄신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민정당 출신이 가장 응집력이 큰 계파를 이루고 있다.

잔류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은 확실하게 광주 전남이다. 이들이 광주민중항쟁을 살상진압한 세력이 조직한 민정당 출신이 좌지우지하는 한나라당과 손잡는 것을 광주가 과연 용인할 수 있을까. 역사와 민심을 가볍게 보아선 안된다.

넷째, 신3당연합으로 개헌을 추진한다고 해도 지금의 국회가 정치일정상 내년 총선거 이전에 마무리하기란 불가능하다. 내년 총선에서도 그 3당이 의석을 그대로 얻으리란 보장은 없다.

'식물 대통령' 만들기 누구 위한 정략인가

다섯째, 설사 개헌이 된다 해도 현행 헌법 아래서 선출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법이론상 임기는 물론이려니와 권한도 변경할 수 없다. 소급입법이나 소급적용이 안되기 때문에 개정된 헌법은 새로 뽑히는 대통령부터 적용하게 된다.

그래서 대통령 임기 초반인 지금의 내각제 개헌론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오로지 대통령제를 흔들고 그럼으로써 현직 대통령을 식물상태로 만들겠다는 극단적인 정략이 아니고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이자 주장이다.

그런 '신3당연합'과 내각제 개헌론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상식적으로 보아도 실천 불가능한 얘기를 꺼내는 것은 말 그대로 혹세무민이 아니고 무엇인가. '식물 대통령' 만들기에 언론까지 나서서 부채질하고 있으니 혼란상은 점입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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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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