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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의 선인장, 가시를 감추지 않는 녀석들의 열매는 사막의 더위를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 김은주
멕시코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었습니다. 사람들은 멕시코를 두고 태양과 정열의 나라, 마야와 아즈텍의 숨결이 살아 있는 나라, 열대 정글과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와 광대한 평원이 함께 하는 나라, 그리고 가난한 자와 부로 충만한 자들이 공존하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저에게 멕시코는 사파티스타 농민 해방군이 마야 원주민들과 더불어 지구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는 나라였고, 정복자 스페인의 침략 흔적까지 길거리 어디에나 남겨 놓고 포용해 버린 사람들의 나라였고, 또한 한 번 마셨다 하면 끝장을 보게 만드는, 최소한 저에게는 쥐약이 틀림없는 데낄라의 나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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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하필 멕시코냐고 묻고는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지요.
"거기 마르코스가 있거든."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또 이렇게 묻지요.
"그 사람이랑 넌 무슨 관계인데?"
대답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냥 꼭 한 번, 어쩌면 이 지구에 살아남은 마지막 게릴라 혁명가라고 일컬어질 지도 모를 그 사람의 땅에 가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무엇이 그를, 그리고 그의 친구들을 지금도 총을 들고 싸우게 하는지, 그이들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열쇠를 찾고 싶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 데낄라의 원료가 되는 용설란
ⓒ 김은주
어쨌든 그렇게 저는 멕시코로 떠났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까지 2시간, 일본에 내려 몇 시간을 머문 뒤에 멕시코행 비행기에 올라 캐나다까지 8시간, 캐나다 공항에서 몇 시간을 또 기다린 끝에 멕시코시티까지 또 5시간을 날아가야 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있는 동안 날짜 변경선을 넘었고, 한국 시각으로 밤 11시 48분에 저는 비행기 안에서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만났습니다. 경이로운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자다 깨다, 깨다 자다를 반복한 끝에 4일 오후에 떠난 비행기는 스무 시간을 넘겼는데도 여전히 4일 오후인 멕시코시티 공항에 날개를 접었습니다.

▲ 멕시코까지 우리를 실어 간 비행기
ⓒ 김은주
9월의 멕시코는 젖은 얼굴로 맞아주었습니다. 우기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저녁이나 오후에는 비가 조금씩 내린다고 했습니다. 태양의 나라에 걸맞지 않는 모습이라 잠깐 당황하기도 했지만, 멕시코에 머무는 동안 소나기처럼 땅에 순식간에 퍼붓는 비의 모습을 그 뒤로도 여러 번 목격하게 됩니다.

정훈형과 그이의 여자 친구가 공항에 마중나와 있었습니다. 멕시코에서 산 지 3년을 넘어서는 정훈형은 멕시코 사람들을 만나면서 취재한 이야기를 한국에 보내기도 하고, 좋은 책들을 번역해 한국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유쾌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거리낌없이 대해 주는 이라서 멕시코시티에 머무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들이닥친 손님들에게 잠자리와 시간을 내어 주느라 고생했을 정훈형에게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택시를 타고 정훈형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멕시코 시티의 택시는 위험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터라, 어지간하면 타지 말라는 이야기가 여행 안내 책자 곳곳에 나옵니다. 미리 행선지를 말하고 택시표를 사서 타는 것이 안전에는 확실한 길이라지요.

폭스바겐의 운전석 옆 자리를 들어내고 뒷자리만 남겨 놓은 초록색 택시들은 외국인들에게는 굉장히 낯선 탈 것임이 분명합니다. 대기 오염 정도가 세계 도시 가운데 최고라는 멕시코시티를 가로지르는 동안, 라틴아메리카의 색깔이 물씬 풍기는 살사 음악이 택시 안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정훈형의 집은 '산또 도밍고 델 꼬요아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멕시코로 여행을 가는 외국인이라면 절대로 들르지 않을 곳 가운데 한 곳입니다. 사람들 얘기로는 일주일에 한 명 꼴로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마리화나는 물론이고 마약도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곳이라고 했지요. 그 날은 별로 위험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셋째날 그 곳의 현실을 온몸으로 확인하고 나서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아, 지금도 가슴이 떨리네요. 그 얘기는 좀 두었다 하지요.

하지만, 첫날은 그럭저럭 평화롭게 보냈습니다. 아래층에 산다는 일본 친구와도 인사를 하고, 과즙이 엄청 시원한 선인장 열매를 에피타이저로 먹고 정훈형이 솜씨를 발휘한 닭도리탕도 먹으면서 편하게 첫날 밤을 보냅니다. 3층 창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낯선 거리 풍경을 보면서 '드디어 왔구나!'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 말이지요.

다음 날 아침, 수탉이 울어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깼습니다. 길 건너 2층집 옥상에 매어 기르는 수탉이 저를 깨워준 것입니다. 우리 닭들보다 기골이 장대한 편이었지요. 늦은 밤이든 새벽에든 가리지 않고 울어 댄다고 정훈 형이 투덜투덜댔습니다. 저에게는 낯선 나라에서의 낯선 아침을 친숙하게 만들어 준 고마운 녀석이었지요.

건넛집 옥상의 닭들을 구경하다가 쓰레기 수레를 몰고 다니는 아저씨를 봤습니다. 아저씨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나와서 쓰레기 봉지를 동전과 함께 내밀더군요. 쓰레기 수거를 나라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다니면서 하는 것도 의외거니와 봉지마다 값을 매긴다는 것이 낯설었습니다. 밤새 번역 마감일에 쫓기느라 잠도 못 자고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 있던 정훈형이 갑자기 "어, 나도 쓰레기 버려야 해!" 하더니 쓰레기 봉투를 집어들고 뛰어내려갔습니다. 5페소인가 10페소를 주었다고 하더군요.

▲ 이른 아침,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사람들
ⓒ 김은주
▲ 쓰레기 수거하는 아저씨
ⓒ 김은주
아침을 먹고는 멕시코시티에서 5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떼오띠우아깐으로 향합니다. 한때 신세계 최강의 도시로 인정받던 곳이지요. 16세기에 스페인이 침략해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말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이른 아침의 지하철은 지친 표정의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서울 지하철의 시끌벅적함, 생동하는 에너지는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나라 전체가 늙어 버린 노인네 같다는 느낌을 이 때부터 조금씩 받기 시작했는데, 멕시코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그 느낌이 줄어든 반면 정작 가장 활기차야 할 멕시코시티가 그 기운 없음이 가장 심한 것 같았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떼오띠우아깐으로 가는 버스표를 샀습니다. 버스 안에는 멕시코 사람들보다는 여행을 온 관광객이 훨씬 많았습니다. 가난한 멕시코 사람들이야 여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고, 잘 사는 멕시코 사람들은 자동차 여행을 택하기 때문이겠지요. 기타를 들고 버스에 올라온 악사에게 노래 몇 곡을 들고 팁으로 2페소를 주었습니다. 음악으로 먹고 사는 그이의 표정 역시 그리 밝은 것이 아니었지요. 버스가 시티 외곽으로 좀 빠졌다 싶을 즈음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 그이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습니다.

▲ '태양의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바라본 '달의 피라미드'
ⓒ 김은주
떼오띠우아깐은 '인간이 신이 되는 장소'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말입니다. 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이 도시는 한때 12만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1000년이 넘게 번성했던 곳입니다. 아즈텍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신들이 세운 도시라고 믿었다고 해요.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이 도시를 채우고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아직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으니, 언젠가는 비밀이 밝혀지겠지요.

떼오띠우아깐의 명물은 뭐니뭐니 해도 '달의 피라미드'와 '태양의 피라미드'입니다. 이 두 피라미드를 만드는 데만 꼬박 30년이 걸렸고, 사람도 1만5000명이 동원됐다고 하는 거대한 피라미드입니다. '달의 피라미드'는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 두어서 '태양의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멀리 평원과 유적지 전체를 둘러보았습니다. 그 규모의 장대함, 눈에 보이는 경관의 장쾌함에 사람들은 잠시 침묵하지 않을 수 없는 곳입니다.

피라미드 가운데서도 그 규모면에서 이집트의 것에 모자람이 없는 이 거대한 유적지는 코르테스가 멕시코를 침략해 들어올 당시만 해도 깊은 숲과 풀들에 둘러싸여 바로 옆을 지나던 침략자들에게 존재를 들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조상님네들이 돌본 덕이 아닐까 싶어요.

▲ 그늘 한 점 없는 유적지에서도 사람들은 불평 없이 과거에 빠져든다
ⓒ 김은주
▲ 떼오띠우아깐에서 기념풀을 파는 아저씨
ⓒ 김은주
신영복 선생님은 책 <더불어 숲>에다 이 곳의 이야기를 쓰면서 '필요와 용도'가 사라지고 난 후의 유적을 읽는 방법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하였습니다. 15세기 건물이나 16세기 성당을 지금껏 그대로 쓰고 있는 멕시코 사람들이기에 이 곳의 고요한 적막이 더욱 그래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나지막하게 오카리나를 불면서 손님을 끄는 마야족의 후예들에게는 그나마 이 곳이 '필요와 용도'가 남아 있는 곳이니 그것으로나마 떼오띠우아깐의 오늘을 위로해야 할까요.

1962년에 발견된 께쯔알빠빨로뜰 궁전을 둘러보고 박물관에서 유적지에서 발굴된 해골들과 유물들을 둘러보고 나니 하루가 훌쩍 지나갑니다. 규모가 넓은 곳이고, 계단을 여러 번 올라야 했던 터라 피로가 쉬 밀려오네요.

▲ 흑요석으로 장식한 차크몰 신상
ⓒ 김은주
▲ 유적지에서 발굴된 해골, 이 곳의 발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김은주
"멕시코는 코르테스 이후로는 과거가 현재를 만드는 땅이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만드는 땅이 되어 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멕시코는 과거도 현재도 아닌 차라리 미래를 기다리는 땅이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세계의 곳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제6의 태양을 기다리는 땅이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태양의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멕시코의 푸른 땅이 새삼 마음에 일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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