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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달리기를 하고 집으로 오는 도중 버려진 통기타를 보았습니다. 그냥 지나쳐 달려가다가 이내 옛추억에 다시 발길을 돌려 통기타를 손에 지고 기억 나는 곡을 연주해 봅니다. <라밤바>로 시작해
까지. 6번째 줄이 조율이 안 되지만, 그런대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집으로 가져오고 보니, 줄은 녹이 심하고 먼지가 자옥하게 쌓여 흠집이 많은 게 누군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집에 놓아 둔 것을 버린듯 했습니다. 그래도 정말 오랫만에 기타를 손에 들고 보니 절로 흥이 났습니다.
통기타에 대한 소중한 추억쯤은 하나씩 간직하고 계시겠죠? 저에게도 통기타와의 소중한 추억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기회가 없어졌지만, 어디서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중3 당시 고등학교를 선지원해서 저는 고입 시험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미 합격을 한 상태라 무엇을할까 고민하다 서점에서 기타 코드집을 사게 되었습니다. 악보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이리저리 따라 벌려보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우선 기타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안 가고 아버지가 원하는 상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이 속으로 미안했나 봅니다. 다른때 같으면 무슨 기타냐고 소리를 치실 텐데, 기타를 사주시며 열심히 하라며 웃음을 지으십니다.
그때부터 날마다 기타를 손에 지고 연습을 하는데, 제가 내는 소음을 견디느라 힘드셨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국 저녁 9시 이후에는 기타를 치지 말라는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래도 몰래 솜을 넣어 소리나지 않게 한 후 계속 연습을 했습니다. 그 결과 간단한 곡은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고입 공부를 할때 나도 무엇인가 집중할 게 있다는 것이 굉장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 후 통기타를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쯤 자연스럽게 통기타는 관심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많이 돌아오긴 했지만, 제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입생들이 기타를 배우며 대학 문화의 꽃을 피울때, 저는 기타를 그저 바라만 보았습니다. 이미 기타는 나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었으며, 추억 속에 좋은 친구로 간직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