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이런 모양의 방패를 쓴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방패는 서양식이다. 우리 나라의 표지판인데도 우리 냄새가 너무 나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깝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오면 뭔가 우리의 고유한 모습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교통의 대동맥인 고속도로의 노선 번호 표지판을 보면 별로 재미있어 할 것 같지 않다. 캐나다의 '캐나다 횡단 고속도로(Trans-Canada Highway)' 노선 번호 표지판에는 캐나다 국기에 그려진 단풍잎이 들어가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태극기가 연상되고 모양도 예쁜 태극 무늬가 서양식 방패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한다.
테두리부터 색까지 거의 흡사
1982년에 만들어진 고속도로 노선 번호 표지판(바탕 전체가 파란 색)은 그 뒤 1997년 1월 20일 도로 표지 규칙(건교부령 제 89호) 개정에 따라 현재와 같은 고속도로 노선 번호 표지판(1997년식)으로 바뀌었다. 테두리 모양은 그대로지만 위쪽 일부를 빨간 색으로 바꾸었다. 아래 그림의 가운데에 있는 표지판이 1997년식인데, 이것이 현재 우리가 쓰는 표지판이다. 일반 국도 등과 색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게 빨간 색을 넣었으며, 색 자체에 특별한 뜻은 없다고 한다.
1997년식 우리 나라 고속도로 노선 번호 표지판의 테두리가 미국 고속도로 표지판의 테두리와 거의 꼭 같다는 점은 이어진 앞의 기사에서 보았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고속도로 노선 번호 표지판은 다음과 같이 미국 인터스테이트 노선 번호 표지판(아래의 그림에서 오른쪽 표지판: 1957년부터 써오고 있음)과도 닮은 점이 몇 가지 더 있다.
(왼쪽) 미국 고속도로 (U.S. Highway) 노선 번호 표지판, (가운데) 우리 나라 고속도로 노선 번호 표지판 (1997년식), (오른쪽) 미국 인터스테이트(Interstate) 도로 노선 번호 표지판
[풀이] 가운데 표지판의 테두리는 왼쪽 표지판과 비슷하고, 가운데 표지판의 빨간-파란 색깔, 흰 가로줄과 흰 테두리는 오른쪽 표지판과 비슷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우리 나라 고속도로 노선 번호 표지판이 위는 빨간 색, 아래는 파란 색 도안이라는 점이다. 이는 미국 인터스테이트 도로 노선 표지판의 빨간 색(위), 파란 색(아래) 느낌과 꽤 비슷하다. 물론 색깔이 꼭 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꽤 비슷한 색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 나라 고속도로 노선 번호 표지판에서 빨간 색과 파란 색 사이의 흰 가로줄, 그리고 표지판 테두리를 굵은 흰 색 처리한 것도 미국 인터스테이트 표지판과 비슷하다.
사실 방패 테두리 모양 문제만 없다면, 빨간-파란 색 도안과 흰 가로줄과 흰 테두리 도안은 우연의 일치 또는 참고했다고 봐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테두리 모양이 거의 꼭 같은데다가 이런 사항까지 겹쳐 있기 때문에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미국 고속도로는 자동차 전용이 아니다
그런데 사소한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미국의 인터스테이트 도로는 자동차 전용 도로이기 때문에 인도나 횡단 보도가 없지만, 미국 고속도로는 자동차 전용 도로가 아니라 그보다 한 급 낮은 도로이기 때문에 군데군데 인도와 횡단 보도가 있다. 한편 우리 나라의 고속도로는 인도나 횡단 보도가 없는 자동차 전용 도로이므로, 굳이 격을 맞추자면 미국 고속도로가 아니라 미국 인터스테이트와 같은 급이다.
그런데 1982년식 표지판을 도안할 때 기왕 미국 표지판을 참조하려면 같은 자동차 전용 도로급인 인터스테이트 표지판을 참고하는 것이 그나마 나았을(?) 것을, 왜 한 급 아래인 미국 고속도로 표지판을 참조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1997년식 표지판에서 인터스테이트 도안과 꽤 비슷하게 바뀌면서 그런 점이 보완됐다면(?) 보완됐지만.
국제 표준 노선번호 표지판은 없다
취재 과정에서도 들은 말이고, 또한 독자 가운데도 혹시 이런 표지판 모양이 국제 표준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국제 표준은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말고 다른 나라에서 미국 표지판 테두리를 그대로 나라 전체의 고속 도로 표지판으로 쓰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또한 이것은 교통 신호등의 빨강-파랑-노랑 색을 국제적으로 통일시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문제이다.
고속도로 노선 번호 표지판, 통일을 대비하여 새롭게 추진하자
일반인들의 상식선에서 종합해 보면, 우리 나라 고속도로 노선 번호 표지판은, 테두리 모양은 미국 고속도로 표지판과 너무 닮았고, 빨간-파란 색깔, 흰 가로줄과 흰 테두리 처리 등은 미국 인터스테이트 도로 노선 번호 표지판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특히 통일을 대비하여, 남북 공용 고속도로 노선 번호 표지판을 남북이 공동으로 새로 도안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