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신당이 안기부 예산 불법전용 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소집을 거듭 요구하며 민주당과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동참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정치 쟁점화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쪽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이라는 점이 인정되면 오히려 피의자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판단, 공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통합신당의 국조 소집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근태 통합신당 원내대표와 안영근 의원, 이종걸 의원 등은 8일 오전 국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안기부 예산 불법 전용 사건의 진실을 철저히 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검찰 수사와 재판부 판결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금액만 1000억원대에 이른다며 1900억원에 이르는 안기부 예산 전체에 대해 국정조사를 추진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김근태 원내대표는 "불법 사용한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한나라당이 엉뚱하게 문제를 제기해 기만하고 있다"며 "이는 검찰 수사와 법원판결조차 무시하겠다는 초법적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 통합신당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사용 경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며 불법자금 환수를 위한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대표는 또 국정조사에 미온적인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향해 "국회 제1당으로서의 책임을 과연 다하고 있는가에 대해 국민들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다수의 횡포에 맞서 진실을 규명하는 일에 민주당이 함께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며 동참을 촉구했다.
이종걸 의원은 법원이 밝혀내지 못한 잔여 금액에 대한 부분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검찰수사를 통해 공소제기된 금액은 1197억원에 불과하고 이 금액 중에서도 재판상 유죄가 선고된 금액은 856억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이미 수사가 종료되고 1심재판이 선고된 시점에서 밝혀진 사실보다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더 큰 것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예산이 남는 경우라도 불용처리 되지않고 별도 계좌에서 관리되는 안기부 예산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안기부 예산의 1/5이 빠져나갔다면 안기부가 제대로 운영됐겠느냐는 일부 의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한편, 민주당은 통합신당이 추진하는 안기부 예산 국정조사에 응할 뜻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박상천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수사 또는 재판중인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은 국정조사를 할 수 없게 돼있고, 안풍 사건은 수사가 끝나고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항소중인 사건인데, 문제의 돈이 YS 대선자금으로 인정된다면 횡령죄를 적용할 수 없게 되기때문에 '안풍 국조'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그는 또 자칫 문제의 돈이 안기부 예산이 아니라 YS 대선자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면 피고인들의 무죄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된다며 정치적으로 유리할 것이 없다는 뜻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근태 통합신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에서 '오히려 한나라당을 돕는 것 아니냐, 한나라당 제2중대냐' 이런 막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고 "중요한 것은 국민에 진실을 밝히는 것이지 한나라당에 유리하니 진실을 밝히면 안 된다는 그런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진실을 규명하는게 어디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은 정략적 의도가 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근태 원내대표의 기자회견문 전문과 일문일답.
"한나라당이 엉뚱한 시도를 하고 있다. 검찰 수사와 법원판결을 통해 불법 사용한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럼에도 엉뚱하게 문제를 제기해 기만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와 법원판결조차 무시하겠다는 초법적 판단이라고 본다. 세풍과 안풍이라는 국기문란 행위에 대한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모면하기 위한 정략적 행동이다.
우리 통합신당은 한나라당의 이러한 시도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기강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한나라당의 안기부 자금, 불법 유용에 대한 전모를 한 점 남김없이 밝혀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다시는 권력에 의한 국기문란 행위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통합신당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사용 경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불법자금을 환수하기 위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민주당에게 촉구하고자 한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국기문란 행위에 대해 진실을 묻고 있다.
민주당 의원 여러분, 지도부 여러분. 우리와 함께 국조 소집에 나서줄 것을 요청한다. 부탁한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고삐 풀린 일방독주를 막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국회 제1당으로서의 책임을 과연 다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다수의 횡포에 맞서 진실을 규명하는 일에 민주당이 함께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 여러분의 동참을 요청한다. 요구한다.
한나라당에서 정치개혁을 강하게 요구하는 양심적인 개혁파 의원 여러분에게도 국조 운동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한다. 한나라당 지도부 또한 과거 구태정치의 한 전형적인 형태였던 이런 부분에 대해 마음을 열고 국민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할 것을 요청한다."
- 앞으로 진행상황과 국조 대상은?
"우선 수사와 재판이 대상이 됐던 김기섭 전 안기부 기조실장,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었던 강삼재 의원,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대상이 될 것이다. 권영해 안기부장도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
- 민주당과 미리 얘기한 적이 있는지. 원내대표단 회동에서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 얘기가 오갔나.
"민주당의 책임있는 간부와 전화 통화해 참여와 공동으로 할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적극적이지 않다. 또다른 분에게 전화를 했는데…."
- 민주당은 안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재판에 관여할 목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을 빗대서 얘기할 가능성이 있는데, 조금 후 이종걸 의원이 말해 주실 것이다. 범위가 어디냐에 대해 설명을 했다. 국민의 여론을 대신하기 때문에 민주당 지도부, 지지자들은 응당 이 국정조사에 대해 동의할 것이라고 본다. 다만 공개적으로 제안하기 전에 가능하면 공동으로 협력해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싶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답변은 듣지 못했다. 그렇다고 거절한 것까지는 아니다."
- 민주당에서 나온 얘기는 한나라당을 도와주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나라당 2중대를 하려고 하는 것이냐고도 하는데.
"어려운 문법이다. 나도 IQ가 세자리인데 잘 모르겠다. 민주당에서 '오히려 한나라당을 돕는 것 아니냐, 한나라당 제2중대냐' 이런 막말을 해서는 안 된다.
우선 국민들은 진실이 뭐냐를 알고 싶어한다. 법원 판결이 있었음에도 과반수가 넘는 1당 대표와 책임있는 간부가 '그렇지 않다, 국정원 보고를 받아보니 안 그렇다'고 한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 진실을 요구할 권리가 국민의 대표에 있다. 한나라당에 유리하니 진실을 밝히면 안 된다는 그런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진실을 규명하는게 어디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은 정략적 의도가 되기 때문에 국민이 이해하지 않는다."
- '엉뚱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정략적 시도다'라고 한 부분을 구체적을 말해 달라. 그리고 서명 작업은?
"서명작업은 못했다. 공식 견해는 아니지만 한나라당의 대표와 홍준표 의원이 주장하는 것은 결국 내년 총선을 생각해서 물타기하는 것 아니냐, 그런 의구심을 표명하는 분도 있다. 꼭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입법부의 책임있는 간부들이 법원 판단에 대해 교란시키는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걸맞지 않고 민주주의 근간을 동요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