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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와코, 히꼬네항의 방파제
ⓒ 장영미
시가현(滋賀県)에 가보고 싶었던 이유의 99.9%는 바로 거기에 비와코가 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아름다운 호수라는 설명을 들은 적은 없었지만 매우 큰 호수이고 한 때 심하게 오염이 되어 ‘비누운동’이 벌어졌었다는 얘기를 흥미롭게 들은 적이 있었다. 내가 합성세제에서 비누로 바꾸어 쓰게 된 것도 5년 전에 들었던 비와코의 비누운동 이야기로부터 영향받은 바 크다.

시가현(滋賀県)에 위치한 비와코는 면적 670.33㎢로 시가현 전체 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 내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물론 세계적으로는 이 보다 훨씬 큰 자연호수 및 인공호수들도 많으나, 비와코는 바이칼호와 카스피해에 이어 3번째로 오래된 고대호(古代湖)로 지금부터 약 400만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비와코가 지금의 시가현에 자리잡게 된 것은 약 40만년 전으로 그동안 지각의 융기와 침강에 의해 형태, 크기, 위치가 여러 차례 바뀌었다. 비와코는 시가현과 교토, 오사카, 효고현을 포함하는 긴끼(近畿)지방의 1400만명의 식수원으로서도 중요한 호수이다. 12곳으로부터 계곡의 물이 흘러들어 2곳을 통해 빠져나간다고 한다.

비와코 내에는 지꾸부시마(竹生島), 다케시마(多景島), 오끼시마(沖島)의 세 섬이 있고, 주변에는 ‘오우미팔경(近江八景)’이라하여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에서 유래한, 경치가 빼어난 여덟 곳의 명승지가 있다. 또한 수려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호수 내에서는 온갖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 비와코에서 보트를 즐기는 사람들
ⓒ 장영미
뿐만 아니라 비와코는 매년 7월 말, 요미우리 TV가 주최하는 ‘새인간 콘테스트(Japan International Birdman Rally)’가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1977년 시작된 대회인데 모터의 힘을 빌지않고 바람을 최대한 이용해 멀리 날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어, 어느 팀이 멀리 날았는가를 가리는 대회이다.

나도 몇 번인가 본 기억이 있는데 출발과 함께 부서져 버리는 비행기가 있는가 하면 그야말로 하늘을 날으려는 인간의 원초적 소망을 담아 새처럼 유유히, 오랫동안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있었다. 어느 것이건 결국은 호수로 떨어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아이디어와 기술, 팀워크, 체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경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비와코에 1977년 5월, 적조(赤潮)가 발생했다. 적조 발생의 주원인이 세제에 섞인 인(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80년, 인이 함유된 세제의 사용을 금지하는 ‘비와코 부영양화 방지 조례’일명 ‘비누조례’가 시행되기에 이른다.

이로써 주민들을 중심으로 ‘무인(無燐) 비누운동’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전국적인 관심을 끌게 되어 일본 환경시민운동의 원년이라 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한다. 그 결과 시가현에서의 그 해 비누 사용률은 70.6%를 기록하였다.

이어 수질오염원 중의 하나인 폐식용유를 모아 무인비누를 만들어 재활용하는 시스템이 이 때 만들어졌다. 내 기억에 그 즈음 한국에서도 소비자단체, 부녀회 등이 중심이 되어 폐식용유를 모아 비누를 만들어 나누어 주는 행사들이 벌어졌던 것 같다.

▲ 다케시마(多景島)에서 내려다 본 비와코, 바람이 불어 파문이 크게 일고 있다.
ⓒ 장영미
그렇다고하여 비와코가 금새 되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1983년 9월, 남조(藍藻)라 불리는 식물 플랑크톤이 초록색 페인트를 쏟아놓은 양 수면 위에 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정수시에도 걸러지지 않고 남아 수돗물에서 이상한 맛과 냄새를 일으키며, 인체에 해로운 독소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후 시민운동 단체에 의해 하수도와 정화조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당시 시가현의 하수도 보급률은 10% 정도로 생활폐수가 그대로 비와코로 방류되고 있었다 한다. 그때부터 ‘합병정화조 보급운동’이 시작되어 1988년, ‘30년 전의 비와코로 되돌리기 위해 가정배수오염을 1/10로 줄이자’는 청원서명운동이 벌어졌고, 1996년 3월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합병정화조 의무화 조례’를 시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에 비와코 살리기 운동으로 모인 사람들이 1990년 ‘시가현 환경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 생활자 입장에서의 환경운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한다. 비누운동, 폐식용유 재활용, 합병정화조 보급운동 등이 모두 이들의 손을 거쳐 이루어진 시민운동 사례들이다.

크고 오래된 호수 하나 보러와서 별 복잡하고 심각한 생각을 한다 싶기도 했지만 생활폐수와 공업폐수로 오염된 강과 호수가 어디 비와코 뿐이겠는가? 미국의 오대호와 같이 큰 호수의 오염문제를 들지 않더라도, 가까이 한강이 그러하고, 소양호가 그러하고, 우리 동네의 작은 호수가 그럴진데 말이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비와코의 다른 절경들보다도 ‘비와코가 과연 얼마나 깨끗해졌을까, 아니면 얼마나 더러울까?’하는 것이었다. 나는 수질조사대원도 아니고 수질전문가도 아니니 그 큰 호수가 얼마나 더러운 것인지 육안으로 알 길은 없었다.

보기에는 여느 호수나 -아니 바다같이 넓어서- 여느 바다와 다르지 않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보트를 타는 사람들, 요트를 타는 사람들,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무척 여유로워 보였고 내 눈엔 적조나 남조 플랑크톤 같은 것은 띄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2003년 9월 3일자 교토신문에 난 기사를 보면 비와코가 여전히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와코에 폭 3m, 길이 12m의 남조 플랑크톤 발생. 올 해 2번째’

시가현이 베드타운화 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고, 게다가 각종 산업체들이 들어서면서 비와코의 오염이 나아지기는커녕 심해질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한다. 환경보전과 개발이 이율배반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은 유람선을 타고 비와코 내에 있는 다케시마(多景島)를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 우리가 탔던 배 (제 5 와카아유호)
ⓒ 장영미
벌써 며칠 전부터 배를 탄다는 기대감으로 들떠 있던 딸아이였건만 배가 출발하여 호수를 가르며 달리기 시작하자 ‘무서워! 무서워!’를 연발하며 아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게 아닌가! 좀 작은 유람선의 1층 앞쪽에 앉았는데 사람이 별로 없어서인지 배가 날아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아주 가까이서 물살이 갈라지며 물보라가 튀는 것을 보니 사실 나도 좀 겁이 났다.

▲ 딸아이와 내가 무서워 했던 그 물보라
ⓒ 장영미
다케시마는 작은 절이 한 채 들어서 있는 작은 섬으로 별로 둘러 볼만한 곳은 없었다. 정박시간도 15분 정도였다. 돌아올 때는 2층에 앉았는데 물결이 세게 이는지 2층까지 물살이 튀었다. 무섭다는 딸아이를 부둥켜안고 무사히 귀환. ‘휴우!’

나와 딸아이에게는 즐거웠던 3일간의 여행이었는데, 남편에겐 유익한 출장여행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히꼬네역에서 남편을 만나 다시 기차를 타고 달콤한 잠에 빠졌다. 역시 들녘을 바라 본 기억은 없다.

그 날 저녁 6시 뉴스에서는 비와코에서의 사고 소식이 흘러나왔다. 5시 55분 12명이 탄 요트가 전복해 9명이 실종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사고 나기 불과 5시간 전에 나와 딸아이가 그 호수 위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순간 섬뜩한 긴장이 등을 타고 흘렀다.

4시 50분경 부터 비와코에 강풍주의보가 내려졌으며 그 날은 하루종일 바람이 세게 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배에 탔을 때 그렇게 무서웠구나’하고 생각하니 더욱 아찔했다. 그 사고로 결국 6명의 시신이 수습되었고 1구는 찾지도 못했다 한다.

비와코 살리기 운동들과 그 날의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나누어 주고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시련을 주어 늘 경외감을 잊지말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은 자연 환경과 더불어 살아야 할 존재이지 결코 정복자의 오만함과 우월감으로 살아 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는, 지혜는 과연 무엇일까?’ 다같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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