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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4회 전국체전 개막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이 A4 용지로 4장 분량의 연설문을 준비해 놓고도 불과 3분이 채 안되는 짤막한 즉흥 연설로 치사를 마쳤다. 연설 도중에 터진 박수와 환호로 연설이 잠깐씩 중단된 시간을 제하면 아주 짧은 연설이었다. 취재 기자들에게 미리 배포된 연설문의 길이는 7분. 그러나 연설문과 실제 노 대통령이 한 말을 비교해 본 결과 형식적인 말은 빼고 하려고 했던 말은 모두 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전 개막날 오전에 메가톤급 선언을 날려 정가를 강타한 노 대통령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개막식장에 섰다. 오전에 가진 긴급 기자 회견에서 폭탄 선언으로 정가는 물론 온 나라가 온통 벌집 쑤신 듯 됐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 대통령은 약간 흥분된 모습에 당당하기까지 했다.

노 대통령은 체전 개막식 치사에서, 연설문에 적혀 있었던 '전국체전은 84년을 이어온 한국 체육의 산실…우리가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전국체전이 밑거름…' 이런 형식적인 말들은 모두 생략했다.

노 대통령이 오전에 한 말에 대해 '고독한 결단'과 '무책임한 언동'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연설 말미에 노 대통령이 힘주어 강조한 말을 들어 보면 그 심경을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기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 정정당당하게 싸워 달라. 모두 다 경기의 결과에서 이길 수는 없겠지만, 다함께 정정당당한 경기로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하다."

재신임 받겠다는 대통령이 한 말을 두고 말이 참 많다. 이제껏 대통령 임기 동안에 그런 말을 했던 대통령이 없었기 때문에 큰 충격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책임하게 발언했다는 것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이 형국을 돌파하기 위한 고독한 결단이라는 쪽에 더 힘이 실린다.

지금, 대통령의 최측근이 이런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어떤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조사 결과가 관심이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대통령의 입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든 대통령이 책임지고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무책임한 발언이 되고 벌써부터 국정의 혼란이 온다고 수선을 떠는 것인지,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걱정이 된다.

대통령의 최측근에 대한 조사 결과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 역시, 그 책임을 모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가 있어도 대통령이기 때문에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면 그것도 공정한 게임은 절대 아니다. 대통령의 말대로 결과가 나오면 그 내용에 따라, 모든 책임을 물으면 된다. 벌써부터 국정 혼란이네, 무책임한 발언이네 하면서 국민들만 더 혼란에 빠지게 하지 말고, 신중하게 결과를 지켜보다가 대통령의 말대로 '정정당당'한 모습으로 모두가 승리하는 경기를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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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1988~2014)와 프레시안(2018~2021) 두군데 언론사에서 30여년 기자생활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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