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마지막날인 11일 문희상 비서실장 등을 포함한 청와대 비서진들이 국회 운영위원들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이른바 '재신임 정국'을 초래한 1차적 책임 추궁이었다.
이날 오전-오후에 걸쳐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위원장 정균환)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마치 죄인을 추궁하듯 청와대 비서진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재신임론 후속대책을 추궁하는 등 마치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
특히 한나라당 의원들은 재신임 방식과 시기를 조속히 결정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을 다양한 경우에 빗대가며 '막말공세'를 펼쳤다. 일부 의원은 "하야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노 대통령의 자진사퇴를 주장하기도 했다.
김황식 한나라당 의원은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에 대해 "마치 민초로 태어나서 대통령까지 해봤으니 힘들어서 관두겠다, 너네가 해 먹으라고 튀어나온 말 아니냐"고 거칠게 비난했다. 그는 또 "대통령이 국민에 빚을 지고있기 때문에 대통령은 빚을 탕감하고자 하는 것 아니냐"면서 재신임 방식과 시기를 공론조사에 맡기는 것은 "빚쟁이가 빚 안갚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손희정 한나라당 의원은 노 대통령의 재신임 제안을 '벼랑끝 전술'로 규정하고 "우리가 자식을 키우다 보면 더 잘하라고 매질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잘하겠다고 하기는 커녕 가출하겠다고 협박하는 꼴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공세적인 한나라당 "민초로 태어나서 대통령까지 해봤으니..."
서병수 한나라당 의원은 "재신임 방법이나 시기를 애매하게 한다"면서 "대통령이 자기에게 유리한 집단에다가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문희상 비서실장에게 따졌다. 이어 그는 "누구도 공개적으로 재신임 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다"면서 재신임 발언과 관련 "우리 국민들이 5년 동안 주권행사를 통해서 대통령직을 잘 해 주십사했는데 이는 무책임한 언사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전례를 만들 수 있다"고 비판했다.
윤경식 한나라당 의원은 "국정을 볼모로 한 대국민 협박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으로서 아주 무모하고 무책임한 처사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이 재신임을 물어야 할 일인지 근본적이 의문이 든다"면서도 "책임을 지겠다면 재신임을 물을게 아니라 하야를 선언해야 한다"고 노 대통령의 자진사퇴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또 재신임 시기와 방법에 대해 "앞으로 어떠한 정치일정을 통해 추진해 나갈 것인지 분명한 입장을 알려줘야 한다"며 아울러 이 문제를 정치권이 어떤 식으로 협의해 나갈 것인지 청와대의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윤 의원은 11일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서도 "실망과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며 "국정공백을 메우기 위해 총리 이하 내각에 맡기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동안 대통령 뭐하겠다는 건가, 대통령이 하야하는 것도 아닌데"라고 은근히 대통령 하야론을 부추겼다.
정범구 "노 후보 당선 위해 뛰었던 분께 사죄드리고 싶은 심정"
민주당은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에 대해 "매우 부적절했다"고 비판하는 한편, 기자회견을 통해 야당이 정쟁을 일삼는 것처럼 몰아세우고 있는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다.
정범구 민주당 의원은 "오늘 발언을 보면 이를 정쟁으로 끌고가는 세력에 대해 경고하는 말이 있다"며 "우리는 지금 야당이 됐다, 우리가 먼저 재신임하자고 했나 우리가 정쟁하고 있느냐"고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지난 겨울, 서울 경기도 뿐 아니라 산간 지방 돌면서 노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었던 사람으로 침통한 심경"이라며 "그 열악한 조건에서도 노 후보 당선을 위해 뛰어줬던 분들에 사죄를 드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노 대통령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나타냈다.
이희규 민주당 의원은 "내가 대통령하고 친하다 동지다라는 이유로 대통령의 모든 생각과 결정에 대해 무조건 적으로 따라오지 않았는지, 대통령에 대한 보좌진의 온정주의적 시각이 있지 않았는지, 대통령도 보좌진에 대한 온정주의적 시각이 있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 봐야 할 때"라며 일부 보좌진을 비판했다.
그는 "혁명은 소리가 나지만 개혁은 소리가 나서는 안 된다는게 평소 내 지론"이라며 "개혁을 추진하면서 얼마나 많은 잡음과 소리가 있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더 이상 일방주의적인 것은 어디에도 통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통합신당, 청와대 참모진 인적쇄신론 제기
반면 통합신당 의원들은 일련의 국정혼란이 청와대 참모진의 잇단 비리의혹 연루와 보좌 실책에 있다고 보고 대통령 참모진 인적쇄신론을 주장했다.
이종걸 통합신당 의원은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 "법무장관은 9월에 (대통령께) 보고 드렸다고 했는데 총무비서관이 사직할 당시에 이미 SK 비자금 연루 사건을 알고 그에 대한 조치를 한 것이냐"고 따지며 "그렇다면 도덕성을 정권의 기치로 내세운 정부에서 스스로라도 고발해서 명명백백히 밝혀야 했던 것 아니냐"고 문희상 실장을 질타했다. 그는 "국정혼란을 불러온 데는 대통령의 보좌진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며 비서실장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특히 한나라당을 겨냥 "대선 전에 100억 원이라는 돈을 현금으로 받았다는 의혹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음에도 그 집단에 소속한 분들은 한 마디 사과하지 않고 있다"며 "10억 가까운 돈을 CD로 받았다는 분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고, 대통령은 재신임을 묻게됐다. 그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한나라당의 부도덕성을 우회적으로 부각시켰다.
김영춘 통합신당 의원도 "문희상 실장은 사의를 표명했고 언제라도 그만둘 각오가 돼 있다고도 한 만큼 조만간 정리할 수순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라며 청와대 보좌진 개편 문제를 강조했다.
문희상 실장 "가시방석... 최선 다해 거취문제 고심"
한편,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은 운영위원들의 잇단 사퇴 요구에 대해 "(용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최선을 다해 거취문제를 고심하겠다"는 등으로 답해 그의 거취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최도술 전 비서관의 SK 비자금 수수건 청와대 사전 인지 주장과 관련해서는 "내가 아닌 다른 분들이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히 말하면 몰랐다"고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