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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심어 놓고 떠난 배추밭. 배추도 주인이 없는 줄 아는지 통이 잘 앉지 않았다
동생이 심어 놓고 떠난 배추밭. 배추도 주인이 없는 줄 아는지 통이 잘 앉지 않았다 ⓒ 최성수
오늘은 고구마를 캐야겠다는 마음으로 달려간 보리소골은 가을이 한창입니다. 붉나무는 제 이름처럼 붉게 물든 지 한참이 지났고, 집 앞 느티나무도 황금빛 눈부신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건너 산에 가득한 낙엽송들도 나무 끝에서부터 조금씩 노란 빛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손바닥만한 텃밭 한 귀퉁이를 무성하게 덮은 고구마 덩굴을 걷어내고, 호미를 대자 고구마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봄부터 지금까지 땅 속에서 제 몸을 키워 온 고구마들은 우리 늦둥이 진형이 녀석 얼굴을 다 가릴만큼 크고 실했습니다.

“우와, 이 고구마 좀 봐라.”

내가 엄청나게 큰 고구마를 땅 속 깊이에서 캐내 들어 보이자, 아내와 진형이 녀석이 놀란 눈으로 입을 딱 벌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고구마가 조금 과장을 하면 웬만한 호박만큼 컸으니까요.

한참 고구마를 캐고 있는데 갑자기 골짜기로 큰 트럭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운전이 서툰지 느릿느릿하게 다가온 트럭에는 뜻밖에도 사촌 동생이 타고 있었습니다.

사촌 동생은 아랫마을에 살면서 이 골짜기에 배추와 고추, 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작은 농사용 트럭을 몰고 다녔는데, 이번에 몰고 온 차는 짐을 싣는 큰 트럭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사촌 동생 뒤로 고종사촌 동생도 뛰어내렸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차는 고종사촌이 농협에 지입하고 농산물을 싣고 다니는 차였습니다.

“고구마 캐세요?”

고개를 숙이며 묻는 사촌 동생의 표정이 영 밝지 않았습니다. 고구마를 다 캐고 나자 사촌 동생이 그제야 속을 털어놓았습니다.

“저 내일 창원으로 가요. 농사 지어선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그런 말을 하는 동생은 맥이 다 풀려 힘이 하나도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창원에 가서 트럭 운전을 하겠다며, 그래서 연습 삼아 고종사촌의 차를 몰고 온 것이랍니다. 지난 봄 보리소골 밭에 감자 심은 것이 자기 식구들 품값 빼고 마이너스 70만 원이었답니다. 그때 같이 심은 배추는 씨앗 불량으로 '쫑'이 생겨 다 버렸고, 후작으로 심은 배추도 잦은 비 때문에 통이 앉지 않았습니다.

농협 빚에 아이들 교육에 도저히 농사 지어서는 더 살 수 없다고, 마침 창원 쪽에 물류 수송하는 자리가 났다고 해서 간다는 말을 하는 동생의 얼굴에는 착잡함이 가득했습니다.

송별회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모시고 동네 횟집에 동생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술을 한 잔 드신 아버지는 불편한 심기를 털어 놓으셨습니다. 빚이 얼마냐, 도대체 어떻게 농사를 지어 빚이 그렇게 많으냐, 자기 수입 한도에서 일을 벌려도 벌려야 하는 것 아니냐…. 아버지는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저와 동생들은 그 속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습니다. 제 땅에서 농사 지어 먹고 살 수도 없게 된 우리의 농촌 현실을, 그래서 결국은 떠날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을 아버지는 마음 아파하시는 것입니다.

“다들 떠나고 아무도 없는 고향에 그래도 조카 하나 있어 마음 든든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말씀을 하시며 연신 술을 들이키셨습니다.

“가도 못살겠거든 그냥 얼른 돌아오너라. 사람은 제 고향을 잊고는 못 사는 법이란다.”

아버지는 그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한동안 술잔만 들여다보던 사촌 동생이 아버지의 그런 말씀에 눈물을 글썽이며 입을 열었습니다.

“예, 큰아버지. 그래서 농사 짓던 땅 하나도 안 팔고 갑니다. 꼭 돌아올게요.”

농사 짓는 사이 틈을 내 잠시 찍은 지난 봄의 사진. 이제 동생은 이런 틈조차 없는 도시의 삶에 지쳐갈 것이다.
농사 짓는 사이 틈을 내 잠시 찍은 지난 봄의 사진. 이제 동생은 이런 틈조차 없는 도시의 삶에 지쳐갈 것이다. ⓒ 최성수
나는 그 술자리 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마음 가득 피어오르는 울분과 답답함 때문이었습니다. 동생은 누구보다도 농사를 좋아했습니다. 제가 주말이나마 고향에 내려와 얼치기 농사를 짓게 되자, 다른 누구보다도 앞장서 좋아하며, “형님, 언젠가는 아예 내려오시는 거지요?” 하고 기대도 컸습니다.

90년대의 어느 해, 동생은 농사를 작파하고 서울로 삶터를 옮긴 적이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시집을 오려 하지 않아 할 수 없이 서울로 삶의 근거를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장가도 가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가끔 대학로쯤에서 만나면, 동생은 고향과 농토를 못 잊어 눈물을 글썽이곤 했습니다. 다행히 제수씨가 착하고 순한 분이라, 어떻게 이야기가 통했는지, 동생은 몇 해 뒤 가족들을 이끌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동생은 '전농' 일에 앞장서기도 하고, 마을 젊은이들과 어울려 작목반 일이다, 계약 재배다 온갖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그때 저는 그 동생 이야기를 이렇게 시로 쓰기도 했습니다.

농촌 노총각 내 사촌 동생
나이 서른 후닥 넘겨도 장가 못 가
경운기고 낫이고 팽개쳐 버리고
서울로 올라왔지
눈 앞에 삼삼이는 논배미랑
보리소골 비탈밭에 심은 고추 모종
뒷덜미 잡을세라 직행 버스 잡아타고
서울 온 지 두 달 만에 장가 가게 됐지
이래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법
보름달 같은 색시 만나 손가락 걸고
싱글벙글 결혼식날 입 찢어지는데
허리 휘며 농사 짓던 고향 친구들
주렁주렁 자식 낳고 오래 살라고
트럭 짐칸에 지푸라기 새끼줄 가득 싣고
신혼 여행 따라가 배 터지게 술 마셨지
범민족 대회다 전농 집회다
뻔질나게 올라오던 서울에 심지 박고 사니
내 사촌 어느새 그럴듯한 서울 시민 다 되었지
정말 겉으론 번듯한 서울 시민 되었지
그러니 사람은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 법
시골에서 땅 파 먹고 살아봐야
제 앞가림도 못할 게 뻔해
사람들 쑤근쑤근 뒷공론 해댔지만
아무도 몰랐지 내 사촌
그리운 고향 생각에 밤마다 베갯잇 적시는 줄
뻐꾸기 우는 봄철엔 쟁기질 하고파
공사판에서도 어깨 근육 벌떡벌떡 일어서는 줄

-졸시 <농촌 노총각 내 사촌 동생>



그렇게 어렵게 고향에 뿌리 내리고 살게 된 동생이 갑자기 떠난다고 하니 제 마음이 더 답답해 졌습니다. 제 땅에서 뿌리 내리고 살 수도 없게 된 우리의 농촌 현실에 분통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모두들 술에 취해 헤어지는 자리, 동생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나와 악수를 했습니다.

“내일 새벽에 가요. 형님, 돈 많이 벌어서 꼭 돌아올게요.”

나는 그런 동생에게 그저 몸 성하게 살라고, 의례적인 말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풍이 붉게 타는 고향 마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도 저리 붉을까?
단풍이 붉게 타는 고향 마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도 저리 붉을까? ⓒ 최성수
다음 날 아침, 동생이 떠나는 시각에 나는 동생네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 나는 보리소골, 동생이 심어놓고 가버린 배추밭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내 얼치기 주말 농사에 누구보다도 큰 스승이었던 내 사촌 동생, 봄이면 씨감자를 함께 심으며 농사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던 내 사촌 동생, 제가 애써 가꾼 고추 모종을 나누어주며 고추를 어떻게 키워야 잘 달리는지 알려주고, 언제 무엇을 심고, 언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 세세히 가르쳐주던 농사꾼 내 사촌 동생, 이제 어디 가서 그 순하고 여린 마음으로 세상에서 상처나 받지 않을까, 나는 배추밭을 돌아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은 떠나고 남은 배추들은 속이 차지 않은 채 찬 아침 이슬에 젖고 있었습니다. 골짜기 새들이 오늘은 유난히 지저귀고 있습니다. 새들도 한 사람이 이 땅에서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요?

동양화의 풍경 한 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한둘쯤 있는 법이지요. 그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사람 때문에 그림이 생활을 그려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제 보리소골은 사람이 없는 땅입니다. 동생이 떠난 보리소골은 인물이 없어진 동향화의 풍경처럼 비현실적입니다.

정말 이제 농촌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일까요? 십 년 후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땅, 사람 온기조차 없는 농촌이 우리의 현실이 될 것 같아, 그 아침 내내 내 마음은 쓸쓸하고 답답하고, 무겁기 그지 없었습니다.

농사꾼 내 사촌 동생이 떠난 골짜기는 벌써 한 겨울같이 맵고 추운 바람이 부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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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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