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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 때문에요... 허허" 이장희 교수가 <월간조선>에 의해 마녀사냥을 받았던 '문제의 책' <나는야 통일 1세대>를 가리키며 웃고있다.
"내가 이 책 때문에요... 허허" 이장희 교수가 <월간조선>에 의해 마녀사냥을 받았던 '문제의 책' <나는야 통일 1세대>를 가리키며 웃고있다. ⓒ 유영민

어린이 전문 출판사 천재교육 편집부가 기획하고, 국제법 전문가인 이장희 교수가 저술하고, <조선일보>와 '민주평통'이 좋은 책으로 선정한 바 있는 초등학생용 통일교육 참고서 <나는야, 통일 1세대>.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표지에 '어린이를 위한 통일 이야기'라는 부제가 적혀 있는 이 책은 '이 책을 펼친 어른들에게' '이 책을 읽을 어린이에게' 등 2개의 머리말과 의문형으로 된 27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소제목들은 다시 어린이들이 쓴 글 2편, 그 글에 대한 전문가 답변의 글(이장희 교수가 직접 집필한 부분), 북한 이야기(출판사 편집부에서 내외통신, 조선일보 등에 실렸던 북한상식 등을 이용해 흥미있게 작성한 부분) 등 세 부분으로 짜여져 있다. 목차에 소개된 소제목 중 몇 가지만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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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선수 우지원이 ' 용공분자 ' 라고?

○. 나라 이름은 무엇으로 바꿀까?
○. 민주주의가 될까, 공산주의가 될까?
○. 수도는 어디에?
○. 금강산에 수학여행을 갈 수 있을까?
○. 통일되면 북한에도 미니스커트가 유행할까?


월간조선이 제일 먼저 의혹을 제기한 것은 통일원 캠페인 광고에서도 부분적으로 차용한 바 있는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나는야, 통일 1세대> 속에서 통일 이후의 수도 선정이나 공휴일 지정과 관련해 이미 다음과 같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놓은 상태였다.

"최선의 방법은 서울을 수도로 그냥 두는 것이고, 옮기더라도 지역상 한반도의 중심이자 한강을 끼고 있는 용수량이 풍부한 한반도의 허리 부분이 될 것이다."

"통일이 되면 김일성 생일과 김정일 생일은 명절에서 빠질 것이다."

애초 월간조선이 이 부분을 표적으로 삼은 것 자체가 난센스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월간조선이 이장희 교수가 직접 쓴 글 중에서 '용공 혐의'가 있다고 지적한 대표적인 대목은 2가지였다. 다음은 첫번째 부분이다.

(1) "우리는 남북한이 어떠한 통일과정을 밟아 나가느냐에 따라 통일 뒤의 사회가 크게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식이냐 북한식이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나요? 어떤 체제가 되든 자유, 인권, 사회복지를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이에요."

월간조선은 이 대목 중에서도 특히 "남한식이냐 북한식이냐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부분에 주목했다. 그들은 이것을 제멋대로 "남한식도 아니고 북한식도 아닌 통일"로 확대 해석해 버리고 난 뒤 '연방제'를 주장한 것이 아니냐는 투로 추궁했다.

그러나 한 번 따져 보자. '남한식도 아니고 북한식도 아닌 통일'이 왜 꼭 '연방제'로만 해석돼야 하는가? '북한식 통일'이야말로 바로 '연방제'가 아닌가. 더욱이 이 책 어디에도 연방제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도리어 이장희 교수는 자유, 인권, 사회복지를 귀중히 여기는 체제로의 통일을 강조했다. 월간조선은 아무래도 "자유, 인권, 사회복지를 귀중히 여기는 체제"가 '북한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거꾸로 월간조선의 사상이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인데, 매카시 상원의원이 환생했다면 월간조선은 벌써 골로 갔을 것이다.

더욱이 통일국가의 미래상을 "자유, 인권, 사회복지를 귀중히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체제"(1994년 광복절 경축사)라고 먼저 밝힌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이다. 그리고 월간조선의 소유주였던 조선일보는 당시 사설(8월 16일자)까지 동원해 김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칭송을 아끼지 않은 바 있다.

"남북관계를 타결하려는 김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통일에 접근하려는 여러가지 정책을 내놓은 것도 종래와는 다른 시대적 소산이다."

결과적으로 월간조선은 김영삼 대통령과 조선일보도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셈이다. 김대중 정권의 포용정책을 비판하며 북한의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쳤던 조선일보가 당시에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통일에 접근하려는 정책"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 대목도 시선을 끈다.

다음은 월간조선이 이장희 교수가 직접 쓴 글 중에서 '용공 혐의'가 있다고 지적한 두번째 대목이다.

(2) "공산주의는 평등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본주의는 자유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 자본주의는 누구든지 노력한 만큼 잘 살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자는 거예요. 하지만 이 사회체제는 지난 역사에서 보면 큰 단점이 드러났어요.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졌거든요.…"

물론 이 대목에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구절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월간조선이 공산주의가 소멸하고 자본주의가 승리하는 현실을 서술하는 이 교수의 논리에서 도입부만을 의도적으로 발췌하여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 사실 이장희 교수의 이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노력하면 그만큼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공산주의 체제는 결국 이길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공산주의의 소멸은 세계사의 추세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골고루 잘 사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본다면 북한도 통일 이후에 자본주의 체제로 되는 것은 처음엔 어려움이 좀 있을지 몰라도 역사의 추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간조선은 시치미를 뚝 뗀 채 문맥을 거두절미한 뒤 이 교수의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러나 '팩트'를 억지로 왜곡해서까지 상대방을 이념적으로 매장시키려는 이러한 악의적 태도는 결코 언론의 사명이 아닐 것이다. 하기는 구미 선진국이 이미 추진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골고루 잘 사는 방법"조차 '사회주의적'이라면서 색깔론 시비를 걸어왔던 조선일보가 아닌가.

한편 월간조선은 천재교육 편집부가 따로 묶어 각 항목 뒤에 배치한 '북한 이야기'의 일부 내용까지 비판했다.

<나는야, 통일 1세대>에 '김일성 장군의 노래' 가사 전문이 비판 없이 그대로 소개돼 있으며, 북한의 어린이들이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원수님 어린 시절'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 어린 시절'을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배운다고 소개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상식을 소개한 것조차 용공으로 모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관인 것은 이 책이 발간될 무렵에 조선일보에서도 비슷한 기획을 연재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조선일보 1995년 5월 23일자 '얼마나 아십니까-북한상식' 62편에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는 물론이고 천재교육 편집부도 미처 싣지 못한 북한의 '애국가' 전문까지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북한에 대한 이야기나 상식을 다른 책에서 소개하면 '찬양·고무 등 이적행위'이고, 조선일보가 소개하면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도 된단 말인가.

월간조선의 트집잡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월간조선은 <나는야, 통일 1세대>가 북한의 나쁜 점은 감추고 좋은 점만 부각시켰다고 비판했다. 북한을 공짜로 병도 고쳐주고 생필품과 집도 공짜로 나눠주는 나라로 묘사하는 등 객관성이란 미명 아래 북한이 살만한 나라인 것처럼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입맛에 맞는 일부분만을 의도적으로 발췌하여 보도한 것에 불과하다. 사실 이장희 교수는 이 책의 곳곳에서 북한의 문제점과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거나 비판했다.

"북한에서는 기차가 상습적으로 연착하고 기차 안에서 소매치기가 활개를 치며… 양력설에는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 동상을 참배하고 김정일의 새해 연설을 강제로 들어야 하며… 청바지가 한 달 월급의 5배나 될 정도로 북한 경제의 어려움이 심각하고… 북한은 여행의 자유가 없는 나라이며… 텔레비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의료시설과 약의 부족으로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밖에도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이장희 교수가 북한을 일방적으로 미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들이다.

이장희 교수 무죄 확정 관련 <한겨레> 10월 13일자 보도.
이장희 교수 무죄 확정 관련 <한겨레> 10월 13일자 보도.
지금까지 살펴본 것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월간조선과 조선일보가 우익세력과 공조하여 일으켰던 마녀사냥 소동에서 우리는 "언론사와 언론인의 편견과 오만이 공안검찰마저 세계적 웃음거리로 만든 비약과 궤변의 뿌리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묘한 상황에서 김영삼 정부의 공안검찰은 월간조선의 색깔론 선동에 장단을 맞추려고 그랬는지 마침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오던 이장희 교수를 공항에서 전격 연행하여 구속하려고 했다.

부화뇌동(附和雷同)과 경거망동(輕擧妄動)의 전형에 해당하는 이 구속 시도는 정치검찰의 가장 치욕적 전력 중 하나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신문 보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편 이장희 교수를 기소했던 당시의 '주역'들은 아직 검사로 재직하고 있다. 이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김재기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장과 이 교수 책의 이적성을 감정했던 고영주 당시 대검 공안기획관은 각각 부산지검장과 청주지검장으로 있고, 공소 유지를 맡았던 박민표 검사는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파견 근무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10월 13일자 '이장희 교수 무죄 확정')

중심을 잡고 사회의 균형을 유지해야 할 정부기관마저 마녀사냥에 동조했던 이 소동이 상식을 갖춘 정상인의 두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거니와, 불과 6년 전에 바로 우리 옆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그렇다면 당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될 뻔했던 이장희 교수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와 관련 시사주간지 <한겨레21> 1999년 9월 2일자 표지이야기는 시사적이다.

당시 <한겨레21>은 「영혼까지 좀먹는 검열의 상처」라는 제목으로 표지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이 기획 중에는 이장희 교수를 비롯해 '사상검열'을 경험한 4인의 고백 글이 실려 있었다. 이 교수는 '우편함 여는 것도 겁난다'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초등학생용 통일교과서로 95년에 쓴 <나는야, 통일 1세대>는 당시 권오기 통일원장관으로부터 공익광고용으로 추천까지 된 책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97년 7월 <월간조선>에 의해 용공책으로 둔갑했다.

검찰은 두 차례나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적성이 없어 영장을 기각하는 쇼를 두 번이나 연출했다. 이런 촌극에도 검찰은 국가보안법 제7조 5항인 이적표현물 제작, 유포 혐의로 불구속 기소해 1년8개월이나 지난 지금도 나는 한 달에 한 차례씩 법원을 들락거린다.

법원 출석으로 대학 강의나 학술행사,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할 수 없을 때, 나는 심한 분노를 느낀다. 색깔론 시비를 일으켜 피해를 가한 언론이나 국가기관은 자신의 가해행위를 까맣게 잊어버려 관심조차 없지만, 피해자는 유무형의 고통을 장기간 겪고 있다.

직장에서 잘못을 비판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매우 망설인다. 구조조정에서 1순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족 외에는 타인한테 답답함을 얘기하기도 쑥스럽다. 혹시 이런 사실을 알면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배려 때문이다.

매번 신년, 3·1절, 8·15광복절과 같은 사면 복권 시즌이면 잊어버렸던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다시 거론된다. 그때마다 또다시 직장 동료나 아는 사람들이 이에 대해 묻곤 한다. "이 교수 그 사건 아직 끝나지 않았소?" 하면서 이상한 시선을 보내곤 한다. 매우 외롭다는 것을 느낀다.

원고를 쓸 때나 강연을 할 때도 실제로 매우 조심스럽다. 똑같은 내용의 원고나 강의라도 타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어떤 때는 내가 진짜 무슨 대역죄나 되는 큰 잘못을 했는가? 과연 이 나라에 사상의 자유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밖에서 집이나 사무실로 전화했을 때 법원이나 검찰에서 온 우편물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 그 내용물을 확인할 때까지 종일 기분이 언짢다. 소환장이나 구인장이 아닌가 등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 때문이다.

나처럼 신분이 확실한 사람도 이렇게 고통을 겪고 있는데, 나보다 힘없고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 색깔론으로 불구속됐을 경우에는 어떻겠는가.


마녀사냥을 당했던 한 지식인이 6년 동안 겪었을 분노, 고통, 부담, 두려움, 외로움, 조심스러움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특히 이장희 교수의 고백 중에서 "색깔론 시비를 일으켜 피해를 가한 언론이나 국가기관은 자신의 가해행위를 까맣게 잊어버려 관심조차 없지만 피해자는 유무형의 고통을 장기간 겪고 있다"는 대목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러한 '적반하장'의 현상은 이번에 '이장희 교수 무죄 확정'을 전하는 언론의 보도 태도에서도 다시 한번 그대로 확인됐다. 이번 판결의 과정과 의미를 비교적 상세히 전한 타 언론과 달리 조선일보는 단신으로 매우 짧게 보도했다. 별도의 독립기사가 아니라 '뉴스브리핑'이라는 코너에서 '남대문·동대문시장 연쇄강도 용의자 검거 나서' 등의 소식과 뒤섞어 처리한 것이다.

자사에게 '유리한 것은 매우 크게', '불리한 것은 매우 작게' 보도하는 속 좁은 옹졸함에서 조선일보의 뒤틀린 심경이 적나라하게 읽혀진다.

대법원이 지난 9월 26일 월간조선과 한국논단을 상대로 이장희 교수가 제기했던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을 때도 조선일보는 '조선일보스러운' 보도로 대응했다.

우선 「"월간조선 이장희 교수 보도 친북으로 몰지 않았다" 대법원 원심판결 확정」이라는 기사의 제목부터가 압권이었다. 제목만 본 독자라면 십중팔구 조선일보가 승소한 것으로 오해할 만한 제목 달기였다.

기사 내용도 가관이긴 마찬가지였다. 재판부가 명예훼손 소송에서 양시·양비론적 차원에서 의례적으로 열거하는 대목 중에서 자사에게 조금이라도 우호적인 대목은 '매우 상세하게' 소개하고,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대목은 외면해버리거나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간 것이다.

필자가 '이장희 교수 무죄 확정' 뉴스를 법정의 방망이 소리와 함께 세인의 뇌리에서 덧없이 잊혀져 가게 하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하편 「남북간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걸자고?」가 곧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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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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