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인천공항에서 탑승한 비행기는 나의 두려움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활주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스튜어디스는 비상상태 시 필요한 구명조끼와 인공호흡기 사용법, 비행기 탈출법을 설명하여 공포를 더욱 배가시켰다. 비행기의 엔진이 하나, 둘 가동되었고, 비행기가 45도 각도로 창공을 날아올랐다. 나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나의 공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입으로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막으며 좌석의 손 받침대를 꽈악 움켜쥐었다.
비행기가 궤도에 올라 안정감을 되찾자 사람들은 잡담을 하거나 싸온 음식을 먹으며 여행의 설레임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재빨리 잠을 청했다. 잠을 자야만 추락의 공포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 뇌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내 의식은 점점 말똥말똥해졌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책을 꺼내 들고 내 예민한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감행했다.
비행기가 가장 큰 동력을 필요로 할 때는 활주로를 내달려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그 순간이다. 그 도움닫기의 순간에 가장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날아 오르냐, 추락하느냐의 문제가 그 순간에 결정된다. 일단 비행기가 본 궤도에 오르면 도움닫기의 순간에 필요했던 동력의 일부만 있어도 비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기회가 찾아온 어떤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낼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창공을 날 수 있다.
예전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는 제목의 소설이 있었다. 만약 비행기가 창공을 날아오르지 않는다면 추락의 위험은 전혀 없다. 하지만 비행을 시도하지 않는 비행기란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그저 커다란 고철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새로운 도전에는 늘 추락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동력을 한 곳에 모으고 도움닫기를 힘차게 하면서 추락의 위험과 맞서야 한다.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지루한 11시간이 흐르고 비행기는 프랑크푸르트에 무사히 도착했다. 나의 불길한 상상이 그저 상상으로만 그친 게 너무 다행이었다. 이상기류를 만나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기도 했고, 롤러코스터가 하강하는 것처럼 비행기의 기체가 내려앉는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다. 나는 그 순간마다 비행기 추락사고가 일어나는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고, 수시로 산소호흡기가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하지만 무사착륙이었다.
벌써부터 돌아갈 비행기를 탈 걱정에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두려움은 늘 도전의 친구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