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도착한 7월 말. 유럽은 살인적인 폭염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50년만에 찾아온 폭염은 연일 기존의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를 관광하겠다는 일념으로 관광객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로마의 더위는 삼중 더위였다. 유럽 특유의 태양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유럽의 태양 광선은 정말 강렬해서 유럽 사람들이 단순히 멋으로 선글라스를 끼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여기에 태양열로 달구어진 대리석이 땅바닥에서 열을 내뿜는다. 로마의 거리에는 대리석이 촘촘히 박혀있는데 이 대리석이 가공할 만한 지열을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다. 그야말로 로마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인 동시에 거대한 찜질방이었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내뿜는 열기까지 합쳐져 로마는 불구덩이였다. 기온은 35도를 유지했지만, 삼중 더위의 요소를 합치면 거의 40도를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폭염도 로마를 감상하려는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숙소를 정하고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일렬로 줄지어 늘어선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엠마누엘 빅또리아 기념관, 카라칼라 앞에서 나는 로마 제국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위대한 문명이 만들어낸 예술품들 앞에서 나는 할말을 잃었다.
콜로세움 앞을 지나는데 로마 병정 복장을 한 남자들이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으며 푼돈을 벌고 있는 게 보였다. 걸음을 멈추고 나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복장은 내게 옛 로마의 풍경을 떠올리게끔 해주었다. 옛 로마에 대한 상상은, '콜로세움은 어떻게 세워졌을까, 포로 로마노와 카라칼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로마의 유적들이 위대한 예술품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거대한 유적들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의 구현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건축물들은 로마에게 패하고, 전쟁 포로가 되어 잡혀온 노예들의 노동력으로 로마 귀족의 오락을 위해 건축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노예들이 잡혀왔을까. 그들은 얼마나 간절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그들은 얼마나 두고 온 아내와 아이들이 그리웠을까.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 채찍에 맞고 신음하는 노예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로마의 유적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무도 그들의 노동력을 기억해 주지 않는다. 그들은 패자이며 약자였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에겐 그저 로마가 간직하고 있는 예술품을 감상하는 것으로 모든 게 충분하다. 현실은 늘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역사는 강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말이 있는 걸까. 로마의 유적들이 아름답지만은 않게 보이는 이유들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