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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일간지의 메인화면. 붉은 원으로 표시된 것이 그 제목입니다(2004. 10. 20. 14:50)
해당 일간지의 메인화면. 붉은 원으로 표시된 것이 그 제목입니다(2004. 10. 20. 14:50) ⓒ 우동윤
출근하자마자 늘 하던 대로 조간을 읽었습니다. 이라크 파병, 부동산, 불안한 경기…. 여전히 온 나라를 한숨 짓게 만드는 우울한 소식뿐이더군요. 그런 굵직굵직한 뉴스 속에서 또 하나의 가슴 아픈 사연을 읽게 됐습니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딸의 치료비를 6년 동안이나 대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된 어느 아버지가 딸이 쓰고 있던 산소 마스크를 떼어 내 딸을 죽게 만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정법 위반이라 어쩔 수 없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아버지의 비통함과 그를 처벌해야 하는 법집행자들의 안타까움이 기사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너무 우울한 소식을 접했기에 제 마음까지도 어두워졌습니다.

하지만 어두운 마음도 잠시뿐,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이라 바쁜 오전 시간을 보냈죠. 저 역시 아무리 비통하고 가슴 아픈 사연이더라도 저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그런 사람이었나 봅니다.

오후가 돼 조금 한가해져 다시 각 신문사의 웹사이트를 둘러보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모 일간지 웹 사이트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제목을 발견했습니다.

"2억원 빚에 딸 죽인 아버지"

순간 저는 도덕이고 인륜이고 다 팽개쳐 버리고 막 나가는 사회의 어두운 면이 또 부각되는구나 싶어 약간의 분노마저 느껴졌습니다. 정말 몹쓸 짓을 저지른 사람들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이었지요. 그러나 제목을 클릭한 후 읽은 기사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몇 시간 전, 잠깐 동안이나마 저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가슴 아픈 사연이더군요. 병으로 괴로워 하는 딸을 두고 경제적인 무능함에 가슴 치는 아버지의 그 사연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그 따위 제목을 뽑아 자사의 웹 사이트 메인 화면에 버젓이 띄워 놓은 그 일간지가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2억원 빚에 딸 죽인 아버지. 여러분들은 이 제목만을 두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 제목에서 지긋지긋한 가난으로 고통 받는 우리네 이웃의 가슴 아픈 사연이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차마 입에 담기 조차 어려운 패륜의 뉘앙스가 느껴지십니까?

혹시나 싶어 아침에 보던 그 일간지를 찾아 봤습니다. 박스 처리된 기사의 제목은 '안타까운 父情'이었습니다. '수술비를 마련 못해 산소 호흡기를 떼냈다'는 요지의 부제도 달려 있더군요. 이 정도면 '기사의 내용을 정확히 반영하면서도 간결한 문장'으로 된 신문 기사의 제목 뽑기 원칙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웹 사이트에 올라온 말도 되지 않는 제목은 도대체 누가 뽑은 걸까요.

'안타까운 父情'과 '2억원 빚에 딸죽인 아버지'. 같은 기사를 두고 한 신문사 온-오프라인에서 이렇게 다른 제목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것도 같은 일간지에서 말입니다. '아침마다 전국 방방곡곡에 배달되는 종이 신문과 웹 사이트에 실시간 게재되는 신문이 이렇게 다르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 인터넷 신문의 속성때문이라고 이해해야 하는 걸까요? 그건 아닐테죠. 인터넷 신문이 이제 엄연한 언론의 한 형태로 자리잡았고, 오히려 더 큰 목소리를 담아내는 충실한 우리 사회의 공기(公器)임을 감안한다면 말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그 어이없는 제목을 기사의 당사자나 가족들이 제발 보시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무책임한 어느 언론사에 의해 두 번씩이나 가슴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으실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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