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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16일(목요일) 오전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중학교 2학년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어떤 녀석인가'하는 짜증이 났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학생들의 휴대폰 소리가 수업시간에 나는 경우가 있거든요. 올해로 교직 경력 9년차인 저는 평소에 공중도덕이나 예의 등에 대해 꽤 엄격하게 지도하기로 알려져있는 교사입니다.

그런데, 아차! 가만히 들어보니 제 주머니의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아침에 출근하기 직전 분명히 진동으로 바꾸어 놓았는데. 아마도 작동을 잘못시킨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 엄격한 교사로 교단에 섰던 저는 그야말로 망신을 당했습니다.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고 제 자신에게도 화가 났습니다. 물론 얼굴도 벌겋게 되었지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했습니다. 사실 교단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그리고 학생들 앞에서 제 잘못을 솔직히 인정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교단에 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은 죄(?)가 너무 크다보니 거침없이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더군요.

학생들은 저의 그런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빙긋이 웃었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그런 학생들의 눈빛이 더없이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도대체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간신히 남은 시간 수업을 진행시켰습니다.

집에 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어찌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입장을 바꿔 제가 학생이라면 평소 학생들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은 실수하는 교사의 이중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실망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제 자식이 학교에 갔을 때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저 역시 그 선생님을 안좋게 생각할 것입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들은 제 아내도 저를 무척 나무랐습니다.

21일 마침 그 학급의 수업이 있었습니다. 저는 학생수만큼 과자를 하나씩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들어가 다시 한번 정중하게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용서해달라는 뜻으로 과자를 하나씩 돌렸습니다. 학생들은 웃으면서 "뭐 그럴 수도 있지요"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좀 놀란 것은 학생들이 "다른 선생님들 가운데 휴대폰이 울리고 나아가 그것을 받기도 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듯 말이죠. 물론 극소수의 선생님들이겠지만, 그러다 보니 학생들에게는 저의 실수가 늘상 있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지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저의 사과하는 행동이 지나친 도덕적 결벽증처럼 보이는가 봅니다.

요즈음 학생들이 버릇이 없다고들 합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예의가 없다고들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간 학생들을 교육현장에서 지켜 본 결과 그들이 그런 모습을 나타내는 원인의 대부분은 바로 어른들의 행동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스스로 잘못된, 혹은 일관성이 없고 모순된 행동을 하면서 학생들에게만 올바른 행동을 강조하니 학생들을 어른들을 존경하지 않고 기성세대를 불신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또 어른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그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유교 문화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윗사람의 권위를 지나치게 내세웁니다. 제 경험으로는 교사가 잘못을 했을 때 솔직히 사과하지 않고 자신의 권위를 오히려 내세우면 그때부터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집니다. 결국 부메랑이 되어 교사에게 돌아오는 거죠.

수업시간에 교사 자신의 핸드폰이 울리고 그 전화를 받는다면 학생들에게 올바른 학습태도나 교실에서의 예의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교사 자신이 수업시간에 껌을 씹거나 음식을 먹는다면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무엇을 먹을 경우 어떻게 제재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열심히 근무하고 계시지만 일부 교사들은 지나친 권위의식과 매너리즘에 젖어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꽤 진보적인 정치적 견해를 가지신 선생님들 가운데에도 일상생활이나 학생들에 대한 자세에서는 상당히 권위적인 분들도 있습니다. 교사이든, 어른이든 스스로 모범을 지니고 자신에게 엄격하게 행동한다면 학생들은 따라오리라고 확신합니다. 흔히 말하는 비행청소년들과 면담을 해보면 대부분의 경우 부모나 교사에 대한 실망감과 불만이 원인의 한 축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를 인정하거나 반성할 줄 모르는 어른들, 그리고 일부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 씁쓸합니다. 개혁은 바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정치제도적 민주화가 생활의 민주화로 발전해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저의 전화벨 사건은 제겐 크나큰 부끄러움이었지만 분명한 깨달음을 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교사들이 조금씩 노력한다면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의 주역을 맡는 미래에 우리 사회는 한층 진보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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