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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 858기 폭파 사건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광주, 대전에 이어 20일 청주 순회설명회를 갖는 등 진실 찾기에 적극 나섰다. <오마이뉴스>는 유가족 회장을 만나 유가족들이 직접 경험하며 느낀 또 다른 의문을 들어보았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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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회장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남편에 대한 마지막 도리라고 말한다.
차 회장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남편에 대한 마지막 도리라고 말한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그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면 숨이 멎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살아있는 가족들이 진실을 밝히는 것 뿐입니다."

'KAL 858기사건 진상규명가족회' 차옥정(68) 회장은 17년 전 그 날 자신의 삶이 멈췄다고 말한다. 차 회장은 사건 이후 줄곧 진상규명을 위해 정신없이 달려왔다.

1987년 11월 29일 115명의 탑승객과 함께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된 KAL 858기는 여전히 의혹 사건으로 남아있다. 차 회장의 남편(고 박명규. 공사 6기)은 당시 운항을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KAL 858기에 탑승했다.

의문 1: 사고 두시간에 만에 '테러' 판명

"남편이 타고있던 비행기가 실종됐다는 뉴스를 보고 황망해하고 있는데 2시간 만에 테러라는 보도가 나오더군요. 대형 비행기 사고가 어떻게 2시간 만에 사고 판명이 나는지. 수 백개의 인공위성도 떠있다는데 왜 실종된 비행기 하나 찾을 수 없는 것인지. 수사가 열흘만에 종료되면서 사건의 진실이 묻혔습니다. 분명 누군가의 의도대로 사건이 은폐되고 있다고 봅니다."

차 회장은 KAL 858기 실종 보도 2시간 후 '테러'라는 보도를 접했다. 비행기 사고가 나면 블랙박스부터 찾고봐야하는 것이 상식인 줄 알았던 차 회장은, 가족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관계자들이 시큰둥한 반응만 보여 더 깊은 의혹을 갖게 됐다.

"블랙박스를 찾으려면 제조사인 보잉사에 탐색장비를 요청해야 하지만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의 아우성과 절규에도 시큰둥한 반응만 보였습니다. 또 어디서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정작 가족에게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뉴스와 신문기사만을 보고 알 뿐이었죠. 신문 지상에는 보도되면서 왜 가족에게는 알려주지도 보여주지도 않았을까요?"

의문 2: 보상금 누가, 왜 줬나?

사고 한 달여 만에 가족들은 79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받았다. 하지만 그 보상금을 누가 지급한 것인지, 액수는 어떻게 산정된 것인지 조차 가족 중 누구 하나 아는 이가 없었다.

"아직까지도 보상금이 정부의 위로금이었는지, 보험회사의 보험금인지, 대한항공의 돈인지도 모릅니다. 보험회사에 연락을 해봤는데 그 쪽에서는 모르는 일이며 대답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대한항공 이사는 오히려 자기가 피해자라고 하구요."

차 회장은 또 "보상금이 지급된다면 대한항공의 담당 보험사인 영국 로이드사에서 지급되는 것이 맞겠지만, 실제로는 국내 D보험사에서 지급했다"며 "그러나 보상금을 지급한 D보험사 역시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라며 잡아뗐다"고 말했다.

의문 3: 사고 3개월 만에 전원 사망처리

더 어이가 없었던 것은 유품 하나 발견되지 않은 탑승객들을 정부는 사고 3개월 만에 전원 사망신고를 했던 것. 차 회장은 아들의 취직관계로 호적 초본을 뗐다가 가족들도 모르게 남편의 사망신고가 돼 있던 걸 보고 아연실색했다.

"항공, 선박사고의 경우 시신이 발견되지 않으면 1년이 지나서야 사망으로 간주하는데 정부는 3개월 만에 일괄적으로 사망신고를 했습니다. 어떻게 아무런 증거도,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가족들도 모르게 사망신고를 할 수가 있습니까."

의문 4: 사진자료 한 장도 없다?

115명의 탑승객의 생사를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대형사고였지만 사고와 관련한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다. 차 회장은 교통부·안기부·건교부 등 찾을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다녔지만, 사건 현장 수색 장면을 담은 사진 한 장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교통부 차관에게 수색현장 자료라도 보여 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제발 보여 달라고는 하지 말라'고 저에게 빌더군요. 안기부, 건교부에 찾아가 비행기 찾아내라고 애걸복걸도 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떻게 사진 한 장 없을 수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희생자 가족에 대한 예우도 없었습니다."

사건 3년 후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현희는 사형 선고 1달 만에 특별사면 조치됐다. 하지만 KAL 858기 '폭파범'이라는 김현희를 가족들은 만나볼 수도 없었고, 김현희로부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의문 5: 김현희와 희생자 가족 만남 왜 막아서나

"반공교육 명목으로 전국 순회강연을 다닌 김현희를 희생자 가족에게는 만날 기회를 주지 않았죠. 그래서 강연이 끝날 때까지 숨어서 기다렸다가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은 김현희가 범인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데 그에게 해라도 끼친답니까? 왜 김현희와 가족들이 만나면 안되는 거죠?"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던 차 회장의 집에는 정체모를 이의 방문도 잦았다고 한다. 또 주변 사람을 통해 차 회장의 활동을 중단시키기 위한 압력도 많았다고 그는 말한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덮어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밝혀내는 것이 남편에 대한 제 마지막 도리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왜 진실을 밝히고자하는 일을 막지 못해서 안달인지 모르겠습니다. 대한항공 관계자부터 정부 관계자까지 저희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었습니다. 먹히지 않으니까 남편의 지인을 통해서도 이야기를 전하더군요. 제발 이 일에서 손을 떼라고."

느닷없는 국정원의 방문 "한 점 부끄럼 없다...나서지 말라"

KAL사건진상규명대책위원회(대표 김병상 신부)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신성국 신부는 지난 10월 중순 경 국정원 관계자의 느닷없는 방문을 받았다. 신 신부는 "예고도 없이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들이 내가 있는 수련관으로 찾아와 이 일(진상규명)에 나서지 말라고 강하게 요구했다"고 밝혔다.

"수사에 최선을 다했으니 한 점 부끄럼이 없다더군요. 또 대책위의 주장은 근거 없는 것이며, 당시 북한이 주장했던 내용들이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저나 대책위의 활동은 의미가 없는 것이니 나서지 말아 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신 신부는 "거리낄 게 없다면 제기된 의혹에 답하면 될 것을 왜 일방적 주장만 되풀이 하고 의문마저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냐"며 항변했다.

"떳떳하다면 왜 자꾸 숨고 가로 막으려고만 하는 것입니까? 왜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지난 2001년에 결성된 대책위는 지난 달부터 광주·대전·청주 등 전국을 돌며 순회 설명회를 갖는 등 KAL 858기 사건의 진상규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진실이 밝혀지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변의 압력에도 차 회장은 굴하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마지막 도리가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건 직후 KAL858기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가족회가 결성됐다. 100여명의 희생자 가족이 함께 하고 있는 가족회는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졌으면 하는 바람 하나뿐이다.

"유품 하나라도 나온다면 죽었다는 걸 인정하겠지만 유품 하나 없고, 어디에 추락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인정하겠습니까. 모든 게 음모라 할 수 밖에요.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져야 합니다. 사건을 이렇게 은폐하는 것은 국민 전체를 우롱하는 겁니다. 10년을 넘게 싸웠습니다. 오로지 진상규명 하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알면서도 밝히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꼭 밝힐 것입니다."

차 회장은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 남편과 함께한다. 안방에 놓인 남편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건넨다. '여보, 나 오늘은 00에 다녀올 거야. 무척 바쁘겠지? 조심해서 잘 다녀올께요'하고.

"너무나 자상한 남편이었어요. 30년간 살면서 화 한 번 안 내고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던 사람이었죠.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결혼 전에 남편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다시 읽어봤습니다. 그러고는 며칠간 밥도 못 먹었죠. 마치 남편이 옆에 살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진상규명 하나에만 매달려 살아온 차 회장은 지금도 남편 이야기만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자식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밤길 조심해서 다니라고 합니다. 이 일에만 매달려 17년간 쑤시고 다닌 데가 여간 많겠어요. 하지만 전 무섭지 않습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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