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를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부끄러움'이다, 국민을 오도했던 과거에 대해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이념적, 정치적, 정략적으로 KBS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나라당이 KBS 수신료 징수폐지까지 거론하면서 공영방송 압박 강도를 높여가는 가운데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KBS 죽이기'에 나선 보수세력를 향해 쓴소리를 토했다.
강 교수는 KBS노보 17일자에 기고한 'KBS 죽이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통해 "'KBS 죽이기'와 'KBS 살리기'는 여론투쟁의 게임"이라면서 "시청자들이 KBS를 '우리의 방송'으로 느끼게 할 수 있도록 KBS인 스스로 공영방송 정체성 찾기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조·동-한나라당-일부 지식인' 3자동맹을 'KBS 죽이기' 주범으로 지목한 그는 1987년 방송민주화운동에서 공영방송 사원들이 과거 독재정권의 주구로 전락했던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면서 직업적 자존심의 회복을 간절히 원했던 사실을 회고했다.
이에 따라 그는 최근 논란을 빚고있는 프로그램들은 당시의 개혁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과거 국민을 오도했던 과오에 대해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 과오를 방관해놓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KBS의 개혁 프로그램을 이념적·정치적·정략적인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에 따라 KBS를 둘러싼 상황을 '여론투쟁의 게임'으로 규정짓고 "KBS 사원들이 공영방송에서 '공영'에 액센트를 두어 그 정신에 부합되는 일을 일종의 느슨한 문화운동을 하면서 시청자들을 감동시켜 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그는 KBS 사원들이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고 나설 것인가와 함께 전문직종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으로 다소 오만하게 굴거나 그렇게 보이는 기존 삶의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또 KBS의 지방 25개국 사원들에 대한 충고도 덧붙였다. "중앙방송의 송신소 역할을 하는 것 이외에 지방문화 육성을 위해 별로 하는 일이 없다는 게 많은 지방민들의 판단"이라는 분위기를 전한 그는 "지방경제 수준을 넘어선 '고소득자'로 선망의 대상은 될지언정, 시청자들이 몸을 던져서라도 보호해야 할 '우리의 공영방송' 사원들이라는 생각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 평했다.
아래는 강 교수가 기고한 글의 전문이다.
긴급기고-KBS 죽이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KBS 죽이기'의 열기가 대단하다. 조동(조선-동아일보)-한나라당-일부 지식인의 3자 동맹이 KBS에 대해 퍼붓고 있는 공격을 '정당한 비판'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건 이들의 공격이 모두 KBS 사원들의 선의(善意)를 전면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일을 악의적으로만 해석하고자 들면 남아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 어떤 성인(聖人)도 위선자로 전락하기 십상일 것이다. 내가 보기엔 KBS를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부끄러움'에 관한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전개된 방송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방송사 노조들이 발표한 수많은 성명서들을 다 읽어본 나로서는 "인간이 결코 권력이나 금력만으로 세상을 사는 건 아니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공영방송사 사원들은 공영방송이 과거 독재정권의 주구로 전락했던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직업적 자존심의 회복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이제 그들에게 자유가 주어졌다. 그들은 잘못된 과거에 대해 참회하고 싶어한다. 국민을 오도했던 과거를 바로잡고 싶어한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프로그램들은 모두 그런 의지가 담겨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과거 국민을 오도했던 과오에 대해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 과오를 방관해놓고도 역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KBS의 그런 프로그램들을 이념적·정치적·정략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까지 펴고 픽션을 써댄다. 아, 부끄러움을 알고 모르는 것의 차이가 이토록 크단 말인가?
KBS가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한국 사회의 성찰에 바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극소수 몇 개 프로그램일 뿐이다. 겨우 그 정도도 참아내지 못하고 그걸 빌미로 대대적인 'KBS 죽이기'에 임하는 사람들의 편협이 안스럽다. 아니면 고도의 정략적인 악의가 있는 건가? 그 일을 KBS의 경영과 수신료 징수에 연계시켜 공영방송을 고사시키려는 시도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모든 신문 기사가 완벽할 수 없듯이, 모든 방송 프로그램이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완벽하지 못한 점을 차분하게 지적하는 게 비평의 소임일 것이다. 매카시즘 수법까지 동원한 'KBS 죽이기'라는 선동적 캠페인으로 대처할 일은 아니란 말이다.
KBS는 'KBS 죽이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너무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과격한(?) 제안을 하고 싶다. 대단히 장기적인 대안이다. 내가 던진 화두를 지금 당장 전면적으로 실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 계속 논의의 주제로 삼는 정도의 성의만이라도 보여주기 바란다.
모든 건 여론에 달려 있다. 'KBS 죽이기'와 'KBS 살리기'는 모두 여론투쟁의 게임이다. 한국인들은 위선과 형평 감각에 대단히 민감하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KBS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KBS의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으로서의 미래를 위협하는 건 외부의 도전에서만 비롯되는 건 아니다. KBS 조직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매우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혼재해 있다는 뜻이다. 이는 KBS 내부에도 외부의 'KBS 죽이기' 세력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어느 조직에건 있기 마련인 냉소주의자들도 많고 무사안일주의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시청자들은 KBS 내부의 그런 복잡 다단한 문제를 고려해주지 않는다. 그들에겐 KBS의 어떤 이미지 하나가 KBS 전체를 대변해버린다. 'KBS 죽이기' 세력은 시청자들이 불만을 느낄 법한 KBS의 어떤 약점을 파고들어 그걸로 KBS의 전체 이미지를 대신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KBS 이미지 조사를 은밀하게 해보기 바란다. 시청자들의 뇌리와 정서에 구축된 KBS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KBS 사원들이 '공영방송'에서 '공영'에 악센트를 두어 그 정신에 부합되는 일들을 브라운관 밖에서 상시적으로 벌이면 안될까? 일종의 느슨한 문화운동을 하면서 시청자들을 감동시켜 보자는 것이다.
KBS가 한국인들의 일상적 삶의 문화를 책임진다는 건방을 좀 떨어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대한 KBS 팬클럽을 조직해보자는 것이다. 큰 돈 드는 일 아니다. KBS에겐 충분한 역량이 있다.
중요한 건 모든 KBS 사원들에게 그런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할 뜻이 있느냐하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전문직종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으로 다소 오만하게 굴거나 그렇게 보이는 기존 삶의 방식에 다소 변화를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KBS의 지방 25개국 사원들은 각 지역에서 어떤 이미지로 보여지고 있을까? 그 이미지와 KBS에 대한 이미지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한번 조사해보기 바란다.
내가 알기론 부정적인 것에 가깝다. 지방문화 육성을 위해 중앙방송의 송신소 역할을 하는 것 이외에 별로 하는 일이 없다는 게 많은 지방민들의 판단이다. 좀 억울하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저 낙후된 지방경제 수준을 넘어선 '고소득자'로 선망의 대상은 될지언정, 시청자들이 몸을 던져서라도 보호해야 할 '우리의 공영방송사' 사원들이라는 생각을 하진 않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더욱 거세게 불어오는 신자유주의 바람은 공영방송의 민영화라는 카드의 설득력을 더욱 높여줄지도 모른다. 발등에 불 떨어진 다음에 뛰어봐야 소용없다. 지금부터 '체질 개선'에 나서는 게 최상의 방법이다. 처음이 어색해서 그렇지 모든 사원들이 다양한 문화운동을 통해 시청자들과 접촉하는 걸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나중엔 큰 재미를 느낄 지도 모를 일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KBS를 '우리의 방송'으로 느끼게끔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 네트워크 체제를 단단히 굳혀 놓으면 '매미'가 몰려와도 끄떡하지 않는다. 밤낮 BBC가 어떻고 NHK가 어떻고 남의 나라 공영방송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그들이 KBS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우리가 이 모델을 세계로 수출해보자.
KBS의 승리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