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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운 전 서장이 대전교도소에서 7개월 21일 동안 수감생활을 하며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박 전 서장은 많게는 하루 3-4통씩 편지를 쓰며 분통한 심정을 달랬다.
박용운 전 서장이 대전교도소에서 7개월 21일 동안 수감생활을 하며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박 전 서장은 많게는 하루 3-4통씩 편지를 쓰며 분통한 심정을 달랬다. ⓒ 심규상
박용운 전 옥천경찰서장의 구속에서 무죄판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할만큼 극적이다.

그는 지난 2001년 4월 영문도 모른 채 충북 옥천경찰서장 집무실에서 불법 강제연행 당한 후 뇌물수수죄로 구속됐다. 같은 해 8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3개월 후인 11월 대전고법은 징역 2년 6월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 출소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망이 없어 보이던 이 사건은 2002년 5월 대법원이 전부 무죄 취지로 원심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서 반전된다. 이어 지난 6월 대전고법이 무죄확정판결을 선고했다. 검찰이 이에 불복,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박 전 서장의 옥중 편지글은 구속 직후부터 출소할 때까지의 마음의 여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박 서장이 부인과 아이들에게 쓴 옥중 편지글(300여통)을 통해 7개월 21일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들여다보았다.

"오늘 면회 시 끝내 당신의 눈물을 보고 돌아 와서 나도 그만 꺼이꺼이 울고 말았소. 당신이 오늘처럼 애처롭고 마음 아프게 느껴진 적이 없었는데…"

2001년 4월 12일, 당시 박 서장의 옥중 첫 편지는 부부의 '눈물'로 시작하고 있다. 구속된 지 꼭 4일만이다. 박 서장은 눈물의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당신 표현처럼 이제 겨우 우리 부부 은은한 사랑을 나누며 살아 가려할 즈음 가장 고약한 운명의 장난이 왜 하필 나였단 말이오…당신 아다시피 공직의 정도를 걸어온 사람 중 하나인데 내가 타깃이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하지만 다음 날 박 서장은 곧바로 마음을 다 잡아 먹는다.

박용운 전 옥천 경찰서장
박용운 전 옥천 경찰서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여보. 사필귀정이오. 아무리 교활하고 악랄한 인면수심의 인간일지라도 한 가닥 양심은 있을 것이고, 거짓이 거짓을 낳는다고…(중략)…진실이 밝혀질 것은 시간문제요. 나는 오늘 새벽 비몽사몽간에 그 확신을 얻었고 반드시 결백이 증명되어 나의 명예와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오"(4월 13일)

박 서장의 억울함은 '고통'과 '울분'이 되어 다음 편지글로 이어진다.

"이번 나의 사건의 경우가 바로 이와 같은 경우에 해당하는 이른 바 '희생양'으로, 여러 사람을 위해 누구 한사람을 책임지는 것을 말하는데, 그러나 거기엔 어느 정도 비위가 있고 사실과 진실에 입각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도대체 용납할 수 없는 거짓과 허위사실에 의한 농간이므로 절대로 타협하거나 승복할 수 없는 것이오" (4월 15일)

"한순간 울컥 울화가 치미는 것은 내가 지은 죄도 없이 살인적 무고와 검찰권의 사회여론 호도용의 희생양으로 찍혀 이렇게 인생파멸식 짓밟힘을 당하고 있으니 하늘도 무심하오"(4월 18일)


박 서장은 기소(4월 28일)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도 검찰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쏟아 냈다.

"결국 공판정에서 가려질 터인데 나는 이렇게 갇혀 묶여 있고 검사는 온갖 강제력을 다 행사할 수 있으니…"(4월 18일)

"평소 같으면 당신이 면회 왔을 시간이지만 검찰에서 무엇이 두려운지 접견을 금지시키고 아직 구와 대질조사 조차 하지 않고 있소" (4월 20일)

"대명천지에 이렇게 새빨간 거짓말로 멀쩡한 사람을 능멸해도 그것이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소" (4월 22일)

"…국가기관의 관서장이오, 직위가 총경에 이르러 이른바 희생양으로 찍혔다는 사실, 조금만 파고드는 수사라면 허무맹랑한 거짓말임을 금방 알 수 있을 텐데도 그냥 밀어 부친 것이 그 이유의 첫째요. 둘째는 정신질환 또는 착란증 환자의 연극과 시나리오에 의해 이렇게 된 것이오"(4월 23일)


하지만 박 전 서장은 이때까지만 해도 굴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듯 하다. 박 서장은 고3이였던 막내딸에게 쓴 편지를 통해 "2개월 후에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다독였다.

"아빠의 이 모습이 어린 진영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메인다. 아직은 네가 모르겠지만 기성세대의 사회 속에는 네가 모르는 모순과 이기성이 많다. 아빠는 재판을 통해 명예를 회복한 후 잘하면 2개월 후에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의젓하고 의연하게 사기 잃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4월 18일)

1심 공판이 시작되면서 검찰 진술서의 모순과 사건 조작 내용이 밝혀지면서 박 서장의 기대와 확신은 커진다.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 정말 오랜만이오...이제 서서히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하였소. 오늘 충남경찰청으로 터 추가 감찰조사를 받았소"(5월 21일)

"…사실 지금이야 이렇게 표현하지만 초기만 해도 이렇게 억울하게 당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할 땐 아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소"(5월 23일)

"도둑질 한 놈보다 도둑 맞은 놈이 다리 뻗고 잔다고, 이젠 모든 액땜한듯 기분이나 육감이 산뜻하오. 사필귀정이란 말이 있지만 이렇게 뻔하고 속보이는 사건이 진상이 안 밝혀 질 리가 있소?" (6월 10일)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소. 날아갈 것 같고 희망이 보이오.. 마음의 여유와 희망, 자신감을 갖고 있소."(6월 12일)

"나로서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해 왔고 거짓말 하던 상대방도 진실을 밝혔으니 만큼 이제는 재판부에서 그 진실을 헤아려야 할텐데…"(6월 21일)

"너무 걱정 마오. 이제는 서서히 먹구름이 걷히고 있소… (중략) 사랑하는 우리딸 진경아! … 상처받지 말고 상심 말아라. 너의 아빠는 결백하고 명경지수다(* 엄마한테 물어봐라)" (7월 10일)


하지만 1심 재판 막바지쯤부터 재판부가 박 서장의 진술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등 석연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8월 1일, 1심 재판부는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세상에 이렇게 억울하고 기막힌 누명을 쓰고 감방에 있어야 하다니… 처자식만 아니라면 금방 미쳐 버리지 않는 게 이상하오만…(중략)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과 한을 안고 잠들지 못한 영혼이 되어 불귀의 객이 되었을지 생각하면 끔찍하고 몸서리 쳐질 일이오"(8월 6일)

"정말 우리 부부가 원통하고 억울해서도 이런 누명을 쓰고는 죽어 눈을 감을 수 없지 않겠소"(8월 16일)


박 서장은 2심 재판이 시작되자 다시 무죄 판결을 확신하며 희망을 갖는다. 담당 검사가 사건을 고의적으로 꾸몄다고 실토한 '육성 녹취록'이 재판부에 제출된 것. 가족들에게 보낸 글에도 여유가 묻어 난다.

"아무튼 이제 할만큼 최선을 다했으니 기다립시다. 사필귀정을 믿어봅시다. 그 좋은 말과 뜻이 나만 피해갈 이유가 없지 않소?"(9월 어느 날)

"그냥 대범하게 넘기 자구. 내 걱정 일체 말구. 원한 건 아니지만 이런 기회에 인생 고귀한 공부 많이 하고 있소… 나 절대로 명절 (같이) 못 보내 서운한 것 없으니 걱정 마오. 이제는 바위가 움직일 차례요" (9월 26일)


하지만 이도 잠시. 선임 변호사의 "자백을 하지 않으면 2심에서도 실형이 떨어질 지 모른다"는 말에 번민한다.

"재판의 관행상 거짓말로라도 자백해야 반성하는 것으로 받아 들여 형량을 감해준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소. 어떻게 그렇게 뻔한 사실을 허위로 자백한단 말이오? 그렇게 자학해서 구걸형 받아 나간 들 죽어서도 눈이나 감을 수 있겠소? 아무리 굴욕적으로 생각해도 차마 그렇게 한단 말이오… 나는 이제 처음보다 자신감을 많이 잃었소"(11월 8일)

결국 박 서장은 2심 공판에서 일단 허위자백을 한 후 집행유예를 받고 나온 후 상고를 통해 무죄를 입증하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른다. 당시의 편지글은 이에 따른 절망과 출소에 거는 희망이 교차하는 극심한 감정의 기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 생각만 하면 심히 기분이 나쁘지만 그것이 그나마 최선의 길이라면 진실은 아니지만 눈물을 머금고 연극을 해야 하지 않겠소… 이 세상 모두가 속아도, 당신 한사람이 진심을 아는 한 나는 되었소"(11월 어느 날)

"불가사의한 일이 계속 빚어지고 있으니. 더 이상 안간힘으로 저항하다간 제 명대로 살 수도 없을 것 같은 공포감이 엄습하오"(11월 12일)

"이렇게 비굴하게라도 살아 남으려고, 아니 당신 곁에 살아서 돌아가려고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울듯 혹독한 세월을 절규했던가… 희한한 세상에서 어떻게 수 많은 날들을 다 보내고 이제 며칠만 남겨 놓았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서럽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는구료"(11월 19일)


박 서장의 마지막 옥중 편지글은 이렇게 끝맺고 있다.

"하도 억울하고 원통하여… 이 나라 사법부에는 정녕 정의와 진실과 양심과 상식이 없는 것인지, 상고를 통해 물어나 볼 것이오."(11월21일)

2001년 11월 30일. 박 서장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출소했다. 그러나 2년 뒤 대법원은 박 전 서장에게 무죄 판결문을 안겨 줬다. 박 전 서장은 이같은 옥중 편지글을 조만간 책으로 묶어낼 생각이다.

무죄 판결 받았지만 '파면' 불명예 여전
대통령 사면권에 한 가닥 ‘기대’

박용운 전 옥천경찰서장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과 이에 따른 대전고법의 선고로 사실상 무죄를 확정 받았지만 그의 신분은 여전히 비위행위로 '파면당한 경찰관'이다. 이같은 신분은 대법원의 최종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 서장이 구속된 후 당시 경찰청장은 검찰의 '기소 범죄사실'을 그대로 인용해 파면했다. 박 전 서장은 이에 불복해 행정자치부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했으나 이마저 기각 당했다.

문제는 소청심사위 기각 통지문을 직접 받지 못해 ‘취소 소송 제기 기간’마저 놓쳐 버린 것. 이 때문에 법원에 의해 무죄 판결을 확정 받고도 권리회복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박 전 서장은 "당시 교도소에 수감돼 있어 소청심사위의 기각통지문을 직접 받지 못해(자택 으로 우송됨) 행정소송법상 소청 기각 후 90일 이내에 제기하도록 한 '취소 청구의 소' 기간을 놓치고 말았다"고 말했다.

박 전 서장은 이후 경찰청장에게 파면 처분에 대한 직권 취소를 청원했으나 ‘총경급은 임명권자가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징계처분 된 공무원에 대한 면제권이 있는 만큼 이에 따라 사면할 수 있다.

박 전 서장은 "국가기관의 불법 수사로 억울한 형사처벌을 받은 것도 통탄스럽지만 무죄를 선고받고도 공무원 신분의 사형에 해당하는 파면처분에 그대로 놓여져 있다"며 "대통령께 사면을 청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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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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