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벗어나 프랑스의 해변도시 니스로 향하는 밤기차에 올랐다. 일반좌석이 아닌 침대 칸(쿠셋)을 미리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비교적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악명 높은 기차는 이번에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넓이 2.5m, 높이 3m 정도 되는 공간에 마련된 6개의 침대는 너무나 비좁게 느껴졌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게 침대열차인지, 양계장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게다가 유럽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열대야 현상으로 50년 만에 찾아온 더위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에어컨은 작동되지 않았고, 열차 칸 맨 끝에 자리잡은 세면대에서는 오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자정을 넘긴 시각까지 침대 칸의 통로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으로 간신히 열을 식혔다. 달리는 기차 밖으로 칠흑같이 검은 이탈리아의 들판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해야만 했기에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20kg짜리 배낭을 메고 감행한 강행군으로 몸은 녹초가 되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계속 뒤척이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잔 걸까. 눈을 떠보니 밤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이딸리아의 밤풍경이 달력의 그림처럼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희미한 의식 사이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마치 이 밤기차 같다는 생각이었다.
기차는 우리를 태우고 달려간다. 그리고 시간도 역시 우리를 어딘가로 데리고 간다. 둘 다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것이다. 시간을 멈출 수 없듯이, 달리는 기차도 멈추지 않는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기차는 달리고 있고,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만약 우리가 기차의 종착역과 타임테이블을 꼼꼼하게 살피고, 확실히 방향을 정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역 간판에 적혀있는 낯선 역 이름을 보고서야 잘못된 기차를 탔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 기차 창문으로 밤풍경을 보며 나는 내게 물어보았다. 서른 해가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내가 방향을 정하고 기차를 탄 걸까. 아니면 기차가, 시간이 나를 데리고 가는 방향으로 무작정 내 몸을 맡긴 것일까.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읽었던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라는 소설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넌 마치 강물에 떠내려 가는 나무 토막 같아. 니가 가려고 하는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강물이 데려가는 데로 가고 있어.”
시간이, 운명이 장난을 치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기차는 달리고 있고, 시간은 쏜 화살처럼 흐르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