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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 들머리 오리나무 길
갑사 들머리 오리나무 길 ⓒ 안병기

오전 11시에 열린다는 산사 음악회 가는 길은 밀리는 차량들과 인파 때문에 이미 많이 늦어 있었다. 오늘의 이 음악회는 갑사의 범종각 낙성식을 기념하고 갑사 창권 1583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것이다. 근래 들어 여기 저기서 산사 음악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해남 달마산 미황사나 봉화 청량산 청량사의 산사 음악회는 운치 가득하기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산사 음악회가 실내 공간에서 열리는 음악회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산사 음악회가 닫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에서, 굳어진 형식이 아닌 틀을 벗어나서 산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맛보게 하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말하자면 단풍이 짙게 물든 산 자체가 이미 하나의 노래이거니와 여기에 가수의 음악이 덧붙여지니 그 화음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범패를 부르는 법해스님 일행(2002년 11월)
범패를 부르는 법해스님 일행(2002년 11월) ⓒ 안병기
나 역시 작년 이맘 때 갑사에서 열린 개산대제(開山大祭)에서 본 스님들의 바라춤과 나비춤, 그리고 스님들이 부르던 범패 소리의 여운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범음(梵音) 또는 어산(魚山) 혹은 인도(印度) 소리라고도 부르는 범패는 절에서 재을 올릴 때 부르는 성악곡이다.

작년 개산대제에서 법해 스님 일행이 부르던 범패 소리는 고요한 산사를 여울져 내 가슴으로 굽이쳐 흘러 마음을 가득 채웠다. '건달'이라는 말이 본디 불교 음악의 신을 이르는 불교 용어라는데 그 건달들이 부르는 노래는 그야말로 신(神)의 노래였는지도 모른다. 그 덕분이었을까. 그날 계룡산을 오르는 내 발길이 유난히 가벼웠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난 때로는 채운다는 것이 마음을 비운다는 것과 통한다는 것을 얼마나 절감했던가.

음악회가 열리는 대웅전 앞마당은 송곳 하나 꽂을 여지가 없었다. 음악회는 이미 절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때 마침 정태춘과 박은옥이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먼저 박은옥의 단골 레퍼토리라는 <사랑하는 이에게>가 불리워졌다.

<사랑하는 이에게>를 부르고 있는 박은옥
<사랑하는 이에게>를 부르고 있는 박은옥 ⓒ 안병기
그대 고운 목소리에 내 마음 흔들리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네/ 깊은 밤에도 잠 못들고 그대 모습만 떠올라/ 사랑은 이렇게 말없이 와서 내 온 마음을 사로잡네

어느 순간 노래 한 소절이 내 마음의 상처를 잔잔하게 어루만지고 지나가는 듯 싶었다. 간절하다는 것은 박은옥의 노래를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시인의 마을>을 부르는 정태춘
<시인의 마을>을 부르는 정태춘 ⓒ 안병기

이번에는 정태춘이 노래할 차례였다. 그는 <시인의 마을>이란 노래를 불렀다.

누가 내게 탈춤의 장단을 쳐 주리오/ 그 장단에 춤추게 하리오/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이라도 좋겠오

그랬다. 80년대 내내 노래와 정치 의식, 사회 의식의 변증법적 통일을 위해 그는 혼자서 고군분투했다. 누구도 그에게 탈춤의 장단을 쳐준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가장 음유시인다운 그에겐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는지도 모른다. 산사 음악회는 점점 대미(大尾)를 향해 노를 저어갔다. 두사람은 노래를 끝내고 무대를 물러났다.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를 부르는 두 사람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를 부르는 두 사람 ⓒ 안병기

잠시 후 커튼콜을 받은 두 사람이 다시 무대로 나와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를 불렀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마
막차는 생각보다 일찍 오니
눈물 같은 빗줄기가 어깨 위에
모든 걸 잃은 나의 발길 위에
싸이렌 소리로 구급차 달려가고
비에 젖은 전단들이 차도에 한 번 더 나부낀다
막차는 질주하듯 멀리서 달려오고
너는 아직 내 젖은 시야에 안 보이고
무너져, 나 오늘 여기 무너지더라도
비참한 내 운명에 무릎 꿇더라도
너 어느 어둔 길모퉁이 돌아 나오려나
졸린 승객들도 모두 막차로 떠나가고

그해 이후 내게 봄은 오래 오지 않고
긴 긴 어둠 속에서 나 깊이 잠들었고
가끔씩 꿈으로 그 정류장을 배회하고
너의 체온, 그 냄새까지 모두 기억하고
다시 올 봄의 화사한 첫차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내 영혼 비에 젖어 뒤척였고

뒤척여, 내가 오늘 다시 눈을 뜨면
너는 햇살 가득한 그 봄날 언덕길로
십자가 높은 성당 큰 종소리에
거기 계단 위를 하나씩 오르고 있겠니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마
첫차는 마음보다 일찍 오니
어둠 걷혀 깨는 새벽 길모퉁이를 돌아
내가 다시 그 정류장으로 나가마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차를 타고
초록의 그 봄 날 언덕길로 가마
초록의 그 봄 날 언덕길로 가마


그가 부르는 노래가 너무 뜨거워서 한 순간 내 영혼의 살점이 부르르 떨었다. 80년대 오랫동안 역사의 비에 젖어 영혼을 뒤척였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첫차는 마음보다 일찍 온다는 것을, 그러므로 첫차를 타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가수는 꿈을 노래하고 사람들은 제 엉켜진 시름 위에다 가수의 아름다운 꿈을 포갠다. 누추한 삶이 조금 환해진 것 같다.

삶이 계속되는 한 사람들이 부를 노래 역시 종지부를 찍지 못할 것이다. 아니, 삶이 고달플수록 노래는 더 간절하게 굽이칠 것이다. 오늘 정태춘·박은옥이 부른 노래가 움치지도 뛰지도 못하는 고단한 삶을 사는 이 땅의 민초들의 가슴에 한가닥 위안처럼 안기기를 기원하며 계룡산 삼불봉으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멀리서 누군가 부르는 노래 소리가 산자락을 타고 들려온다. 나도 점점 마음이 호젓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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