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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벽 운전을 좋아한다. 밤에 잠을 충분히 못 잤어도 새벽 운전을 할 때 졸음을 겪은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어둠 속에서 깨어나는 자연 사물들, 변함이 없는 듯하면서도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산과 들의 풍경들을 볼 때는 늘 어떤 설렘 같은 것을 가슴 가득 안곤 한다. 운전을 하면서도 특히 동녘 하늘의 먼동 빛을 볼 때는 내 신선한 감동이 얼마나 명료한지….

어쩌면 이른 아침 동녘 하늘의 먼동 빛에 대한 명확한 질감과 사랑 때문에 내가 새벽 운전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동녘 하늘의 먼동 빛에 대한 그런 질감과 사랑만 계속 간직하고 산다면 내게는 늘 어떤 '희망'이 살아 있을 거라는 모호한 생각도 하곤 한다.

새벽 운전을 하면서 가끔 가지게 되는 이른 아침에 대한 갖가지 기억이나 상념들도 나는 사랑스럽다.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군대 시절 중동부 전선 대성산 철책선 잠복호에서 밤새 경계 근무를 하다가 벅차게 맞고 하던 그 아침의 환희도 왠지 그립다. 월남의 정글 속에서 밤새 매복을 하고 난 다음 먼동 빛을 보고 이슬을 차며 철수를 할 때의 그 안도감도 불현듯 그리워지곤 한다.

이 달에도 여러 번 먼길 새벽 운전을 했다. 처가가 있는 공주로부터, 딸아이가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천안으로부터 동녘 하늘의 먼동 빛을 즐기며 새벽 운전을 한 것이 벌써 다섯 번이다. 거기다가 덕산온천에 가서 목욕을 하는 일로 새벽 운전을 한 것이 두 번이다.

새벽에 덕산온천을 가고 오는 일은 나 혼자가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일종의 '가족 행사'여서, 그 새벽 운전에서 나는 색다른 질감을 얻곤 한다. 내 고장인 태안에서 80∼90리 거리인 덕산까지는, 서산시 해미면과 예산군 덕산면 사이의 긴 고개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길이 좋아져서 50분 정도 걸린다.

한 달에 두세 번 꼴로 새벽에 그 길을 달려 덕산온천 목욕을 즐기며 살아온 세월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 전에 몇 년 동안은 휴일을 택해 주로 낮에 목욕을 다녔으나 10년 전쯤부터는 거의 새벽에 그 행사를 해오고 있다.

고장의 여러 개 목욕탕들을 외면하고(그래서 좀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8,90리 거리인 덕산온천을 다니는 것에는 내 '효심'도 조금은 결부된다. 올해 팔순이신 내 노친네께서 온천목욕을 좋아하시는 까닭이다. 온천목욕이 노인 건강에 여러 모로 좋으리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는 탓이다.

지금은 깨끗이 나았지만 아내가 한때 엄지발톱에 무좀을 달고 살았다는 사실도 결부된다. 세상에 여자 발에도 무좀이 생기느냐고 아내에게 타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타박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확실했던 것이다.

주로 휴일을 택해 낮에 덕산온천 목욕을 다니다가 새벽 목욕으로 바꾼 것에는 역시 이미 10여 년 세월을 헤아리는 내 '물장수 노릇'이 가장 큰 이유였다. 1996년부터는 천주교 해미성지의 물을 길어다가 열 집이 넘는 이웃들과 나누어먹고 있고 그 물긷는 행사를 일주일에 한 번씩 별도로 하고 있지만, 그전에는 가야산의 지류인 한티고개 태암석산이라는 데서 물을 길었다.

그 태암석산에서 물을 길으려면 새벽이 좋았다. 내 물통이 워낙 많아 낮에는 물을 길으러 오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거나 중간중간의 양보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상황이 발생하곤 했다. 그래서 아무도 오지 않는 새벽에 물긷는 공사를 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새벽 3시에 일어나 출발을 해야 했다. 우선 태암석산에 들러 물긷는 일부터 하고, 덕산으로 넘어가서 다섯 시부터 문을 여는 온천탕의 첫 손님으로 목욕을 한 다음 돌아와서 이웃들에게 물 배달을 하곤 했다.

조금은 고생스럽기도 한 새벽의 그런 내 '행각'을 우연히 알게 된 해미성지 사무장인 김상묵 아우님의 권유로, 서산시청에서 일년에 네 번씩 수질검사를 시행할 때마다 전혀 오염이 되지 않은 깨끗한 물인 데다가 '약약수(弱藥水)'로 판정이 나곤 하는 해미성지 물을 1996년 가을부터 먹게 되었지만, 이미 습관처럼 되어 버린 우리 가족의 새벽 덕산온천 목욕 행사는 변하지 않았다.

태암석산에서 물을 긷지 않게 된 때부터는 한 시간을 더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출발을 하게 되었는데, 변함 없는 나의 그 물장수 노릇은 물론이고, 우리 집의 새벽 덕산온천 목욕 행사는 그야말로 내 12인승 승합차 덕이 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우선 승합차의 중간 좌석 두 개를 마주보게 해놓고 그 좌석들에 각기 이불을 깔았다. 반은 깔고 반은 덮도록 해놓은 다음에 아이들을 깨웠다. 아이들은 곤한 새벽 잠 속에서도 매번 어렵지 않게 일어나곤 했지만 그 새벽잠을 좀더 연장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옷을 입고 집을 나가서는 곧장 차안으로 들어가서 좌석 하나씩을 차지하고 누웠다.

나는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신발들을 챙겨주고 춥지 않도록 이불을 잘 다독거려 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아비라는 사실이 절로 새롭게 확인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맨 뒷좌석은 어머니 차지인데, 어머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누우신 적이 없다. 그 시간은 거의 매일 어머니의 기도하시는 시간인 까닭이다. 어머니는 덕산에 가고 오는 동안 줄곧 묵주를 쥐고 계시는데, 바로 눈앞에서 자고 있는 손자 손녀와 내 차의 안전 운행을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하시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어머니의 기도를 느낄 때마다 운전에 더욱 신경을 썼다. 차의 왼쪽으로 아이들이 머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늘 유념하곤 했다. 반대 차선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잠 속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정말 바짝 조심 운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덕산온천 목욕탕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깨우면 아이들은 비교적 쉽게 일어났는데, 역시 아들녀석보다는 누나인 딸아이가 좀더 수월한 편이었다.

다섯 시 정각에 거의 매번 첫 손님으로 입장을 한 다음 사람이 별로 없는 넓은 욕실에서 깨끗한 온천물을 즐기는 맛이란…. 그리고 벌거벗은 그 욕실 안에서 아들녀석의 신체의 성장과 변화를 감지하는 기분이란….

고추 달린 녀석을 낳았을 때 아내가 내게 맨 처음 했던 말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당신, 목욕동무 생겨서 좋겠네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많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녀석이 커서 아빠와 목욕 동무할 때가 언제 올까" 하며….

그런데 녀석이 자라서 아빠와 목욕동무를 하게 되더니, 그리고 일방적으로 아빠만 수고를 하는 시기도 어느덧 지나는가 싶더니, 얼마 전에는 녀석의 고추를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포경 수술 같은 것을 하지 않아서 아직 고추는 귀여운 모습인데, 이미 고추 주위에 검은 숲이 생겨 있는 것이었다.

그 변화가 아빠보다 빠르다는 사실에서 나는 묘한 충격과 당혹감을 맛보는 듯싶었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인 녀석은 175센티미터인 아빠의 키를 이미 지난 여름에 추월해 버렸다. 그러고는 어느새 고추 부위도 어른 같은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을 보자니 처음에는 징그러운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집에 와서 어머니와 아내에게 슬그머니 녀석의 고추 상황 얘기를 했더니 어머니와 아내도 약간의 경색과 함께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의 새벽 덕산온천 목욕 행사에서 좀더 중요한 것은 목욕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그 개운하고 신선한 기분으로 차 안에서 기도를 하는 일이다. 통상적인 '아침기도'와 '삼종기도', 그리고 '수호천사께 바치는 기도'와 '주보성인께 바치는 기도'를 하는데, 수호천사께 바치는 기도는 "언제나 저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수호천사님들이시여"라고 '복수' 지칭으로 기도를 한다.

그리고 주보성인들께 바치는 기도에는 어머니의 영세명부터 시작해서 가족 모두의 세례명을 부르며 하는데, 기도문이 긴 편이고 어른들은 모두 온전히 외우지를 못해서, 그 기도는 딸아이와 아들녀석의 몫이다. (나는 20여 전부터 주보성인께 드리는 짧은 기도를 지어서 평소 사용하고 있다.) 아무튼 목욕을 하고 나온 상쾌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며 차안에서 아침기도를 하는 기분은 정말 상쾌하다. 짜릿한 행복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다.

기도를 마친 다음 아이들은 다시 자기도 하는데, 자지 않고 해미성지와 서산 석림성당 앞을 지날 때는 어른들을 따라 아이들도 성호를 긋곤 한다. 그 모습을 백미러를 통해 볼 때는 내 흐뭇한 마음이 한량없다.

우리가 덕산호텔 온천탕의 욕실에서 나오는 시각은 6시 20분, 그러면 30분쯤에는 출발 할 수가 있다. 그리고 7시 20분쯤에는 집에 도착을 한다. 아침식사를 하고 아내와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일이 전혀 바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평일에 목욕을 간다. 일요일 새벽에 목욕을 가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주일 새벽에는 아이들이 아침미사 오르간 반주나 미사복사 당번에 걸리는 날이 많아서 모처럼 찾아오는 늦잠 잘 수 있는 기회를 빼앗지 않기로 했던 방침은 아직 유효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새벽 덕산온천 목욕 행사 때마다 좀 허전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딸아이가 빠진 탓이다. 딸아이가 천안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지난 3월부터 우리 가족의 목욕 행사는 이가 하나 빠진 것 같은 형국인 것이다.

만추(晩秋)로 가는 계절 탓인가, 지난주 금요일 새벽의 덕산온천 목욕 행사 때는 허전한 기분이 더욱 확실했다. 그 허전한 기분이 쓸쓸함을 지나 종래에는 인생 무상에 대한 우수(憂愁)마저 안겨 주는 듯했다.

밝아오는 아침의 한티고개,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가야산과 덕숭산 줄기의 풍경을 보면서 나는 옆 좌석의 아내에게 말했다.

"올해는 우리 딸아이가 집을 나가 살게 되었고, 2,3년 후에는 아들녀석도 집을 나가 살게 될 것 같은데…그리고 어머니도 언제 돌아가실 지 모르는데…종래에는 우리 둘만 남게 되겠지?"

"그렇겠지요."
아내는 짧게 대답했다.

"우리 둘만 남게 되었을 때도, 우리가 이렇게 새벽의 덕산온천 목욕 행사를 계속할 수 있을라나?"

이 물음에는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나도 입을 다물었다. 운전에 신경을 쓰면서도 다시 한티고개 주변의 단풍 풍경에 눈을 주자니 좀더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산자락을 곱게 물들이는 단풍은 다만 낙엽의 전 단계일 뿐이었다. 단풍이 확실하고 아름다울수록 그 고운 나뭇잎들은 바야흐로 낙하를 준비하는 모습인 것이었다.

온천 목욕을 막 하고 나온 개운한 기분에도, 그리고 가족과 아침기도를 하고 난 상쾌한 마음 속으로도 돌연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인생 무상과 연관하는 우수를 체감하자니 이상하게 가슴이 저미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을 만지다가, 결국은 그 손으로 성호를 긋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의 주인이신 분의 존재와 섭리를 다시 느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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