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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대학로에서 집회를 마친 노동자들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6일 오후 대학로에서 집회를 마친 노동자들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동자가 다시 죽어가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4명의 노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른바 '귀족노조'라는 딱지가 붙은 대기업 노조위원장부터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 그리고 국가의 노동정책을 총괄한다는 노동부 산하기관의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그들이다.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에게는 방패와 곤봉, 그리고 무차별적인 폭력이 날아들고 있다. 80년대말 독재정권 시절 노동자 투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2003년 11월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참여정부 출범 8개월, 한국사회 노동자들과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은 서로를 향해 마주달리는 폭주 기관차의 모습으로 서 있다. 문제는 두 기관차의 기관사들에게 브레이크가 좀처럼 보이지 않은데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노동자들의 잇단 분신에 대해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 달성을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대통령이 언론 보도대로 말하고 생각한다면 노동 인식 문제를 넘어 노동자 주검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라며 "노동자가 사회적 타살로 내몰리는 노동현실과 대통령의 인식 사이에는 넓고 넓은 구만리 장천의 바다가 있는가"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의 '노동탄압 규탄대회' 집회장에서 회사원이라고 자신을 밝힌 최아무개(38)씨의 말이 귓가에 여전하다.

"몇달전 파업으로 시끄러울때 신문인가, 인터넷인가에서 '선무당이 사람잡네'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그런 것이 아닌가 싶네요. (고 김주익 지회장의 간이 분향소를 보며) 아직까지도 이런 것이 우리 사회에 있구나하니 안타깝고 씁쓸하네요. 노 대통령처럼 젊은 층과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당선된 사람이 어디 있었나요. 그런데 그들이 멀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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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0일 정부중앙청사 별관 대통령직인수위 집무실에서 당사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손길승 신임 전경련 회장의 예방을 받고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10일 정부중앙청사 별관 대통령직인수위 집무실에서 당사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손길승 신임 전경련 회장의 예방을 받고 악수를 하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인수위 시절 : 재계는 '찾아오고' 노동계는 '찾아가고'

지난 2월 10일 오후, 재계의 맏형 구실을 한다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손길승 SK그룹 회장이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방문했다.

당시 손 회장은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은 노무현 당선자를 만나 '재계가 재벌 개혁에 반대하는 듯한 인상을 준 데에 유감을 나타내고, 새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일부에서는 '재계가 백기 들고 투항한 것'이라는 해석이 붙었다.

3일 후, 2월 13일 노 당선자는 두루마기 차림으로 직접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과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을 잇따라 방문했다. 무엇보다 양대 노총 간부들과 노동계 현안을 놓고 대통령 당선자가 직접 찾아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다. 또 "5년 안에 재계와 노동계의 불균형을 시정하겠다"는 노 당선자의 의지도 전달됐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당시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누구는 찾아오고, 누구는 찾아가는 당선자의 행보 자체만 놓고 봐도 기업 등에서 과거와 같은 노사관계에 기대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라며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큰 변화가 있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실제로 참여정부 출범 당시 노사 대등주의에 입각한 '사회통합적' 노동정책의 기조는 과거 정부와 차별성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노사간의 실질적인 세력관계 불균형을 제도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방안을 마련한다든가, 그동안 경제부처나 공안당국에 종속돼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노동부가 정부 내에서 노동을 대변하는 기능을 강화한 점, 또 노동 현안에 대해서는 대화와 타협 해결 방식이 강조된 점 등이 꼽히고 있다. 또 정부 출범과 함께 여러 노동정책 추진 기구들에 과거 노동계 인사가 다수 진출한 점을 들 수도 있다.

6일 오후 서울 탑골공원앞에서 노동자들과 진압경찰이 각각 각목과 방패·곤봉을 들고 서로 맞서고 있다.
6일 오후 서울 탑골공원앞에서 노동자들과 진압경찰이 각각 각목과 방패·곤봉을 들고 서로 맞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4개월만에 반(反) 노동자적 노동정책으로 회귀

'대화와 타협'이 강조된 참여정부의 이같은 노동정책 기조는 정권 출범 초기, 상당 부분 노사현장에 적용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정부의 조흥은행 지분 매각을 놓고 이용득 금융노조 위원장과 허흥진 조흥은행 위원장 등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이어 권기홍 신임 노동부 장관은 지난 1월 배달호 노동자 분신으로 석달여 동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두산 중공업 노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대화로 사태 해결을 이끌어냈다.

이후 4월 철도노조가 민영화 반대 등 구조개편 백지화를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자 정부는 노조의 요구를 적극 반영했다. 5월 화물연대의 파업을 놓고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과 노동부, 건설교통부 등이 협상테이블로 나와 앉아 적극적으로 타결을 주도했다.

이를 두고 재계와 일부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정부나 회사쪽에서 노동계에 퍼부기식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포퓰리즘적' '친 노동자적' 정부라며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라크 파병과 사스(SAS) 등으로 인한 국론분열과 경기침체 가속화 등의 이유와 논리를 들면서,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특히 재계는 더 이상 노동계에 밀리기 시작하면 하반기 개별 기업 노사관계에서 크게 위축될 것을 우려했다.

A 대기업 한 임원은 "3월부터 이어진 각종 노동현안에서 정부가 사용자나 기업보다는 노동조합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자칫 이것이 지속될 경우 7월이후 대기업 중심의 임금단체협상 등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고, 한번 밀리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같은 재계의 움직임은 조흥은행 파업사태가 마무리되던 시점에 본격적으로 나왔다. 6월 23일 전경련 등 경제 5단체는 긴급 회장·부회장단 회의를 열었고, 재계를 대변하는 연구소들은 노사불안을 경고하는 각종 '빨간 보고서'를 내놓았다.

요지는 '더이상 참고 볼수가 없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 '정부가 제스처만 법과원칙을 강조하지말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외국인 투자가 노조 파업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 '기업이 회사 문닫고 해외로 공장 옮기면 모든 책임과 피해는 근로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정부에 대놓고 이런 식으로 하면 해외로 나가버린다는 사실상의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6월 28일 새벽 6시 정부는 구조개혁법안의 국회 처리를 반대하며 연세대 대강당 등에서 농성중인 철도노조 조합원을 상대로 경찰력을 과감히 투입했다. 조합원들은 강제해산됐고, 노조 지도부에 대해 검거령이 내려졌다. 이번에는 정부가 참여하는 노사간 어떤 심야 막판 협상도 없었다.

민주노총 박진현 교육선전부장(부산본부)은 지난 2일 한 일간지에 '노동자 죽음의 함성 의미를 아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노무현 정부 노동정책은 출범 4개월만에 반 노동자적으로 바뀌었다"면서 "노무현 정부는 철도 파업 공권력 투입 이후 8개월 동안 5차례에 걸쳐 공권력을 동원했고, 무려 138명의 노동자를 구속했다"며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힘을 통해 노동자를 억누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6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들과 사회단체 대표자들이 펼침막을 들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6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들과 사회단체 대표자들이 펼침막을 들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참여정부의 '죽음의 정치' 이데올로기 다섯가지

이에 대해 가톨릭대 조돈문(사회학부) 교수는 "노태우 정권도 출범하고 공안정국으로 전환하는데 14개월이나 걸렸는데, 노무현 정권은 '신' 공안정국으로 전환하는데 불과 넉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이어 지난 대선공약과 집권 초기 제시됐던 친 노동적·진보적 약속들이 넉 달도 안돼 파기됐으며, 지금도 과거 독재정권 때부터 노동자들에게 익숙한 '죽음의 정치'가 진행중이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가 내놓은 참여정부 노동정책의 다섯가지 이데올로기는 △노동시장 유연화는 더 진전돼야 한다 △노동자간 임금격차는 대기업 노동자 이기주의 때문이다 △노조는 힘이 너무 세다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면 안된다 △노동운동은 서민들의 삶의 조건 향상에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한국의 노동시장은 비정규직 비율이 60%에 달할 정도로 대단히 유연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격차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 소득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한국의 노조 조직율이 12%에 불과하고, 미조직 사업장은 단체협약 혜택도 받지 못하는 실정인데다, 노동계급 정당이 의회 진출도 못하는 상황에 노조가 힘이 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또 기업의 운명을 같이하는 노동자와 노조가 기업의 내부감시자로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과 서민들의 복지와 소득불평등 개선 등 삶 향상은 정부가 해야할 일이라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은 지난 31일 <오마이뉴스>의 특별기고를 통해 "비정규직과 개인 손배 가압류를 해결하겠다던 노 대통령은 말만 바꾼 것이 아니라 철도 파업에 직접 75억 손배 소송을 냈으며, 비 정규직을 더 늘리고 사용자의 대항권을 강화는 법안을 들고 나왔다"고 비판했다. 단 위원장은 이어 노 정권은 이틀에 한명씩 144명의 노동자 육신만을 감옥에 가둔 게 아니라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송두리째 가둬버리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서강대 손호철(정치외교) 교수는 "노 대통령의 경제관과 노동관 변화가 노동개혁 실종의 근본적인 이유"라며 "국민소득 2만달러처럼 성장 제일주의로 돌아섰고, 노동운동을 경제발전의 장애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앙대 이병훈(사회학) 교수는 "노 대통령이 첫 일성은 사회통합을 추구하겠다고 해놓고 현재까지는 과거 정부와 별로 다름없이 노동자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면서 "참여정부가 지난 10개월동안 가치의 충돌 속에 노사 양쪽으로부터 샌드위치 된 점도 있지만, 진정한 사회통합을 위한 자기반성과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당부했다.

한국노동혁신연구소 조자명 부소장은 "현 정부의 개혁 리더십이 실종된 상태에서 청와대 등 정부의 사회갈등 조정 기능마저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노동 개혁에 대한 리더십 확보와 함께 노사간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조정자 역할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진과 노무현, 고 김주익 위원장과 문재인 민정수석

▲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
6일 민주노총은 '노무현 대통령의 노동자 분신에 대한 발언을 듣고'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 놓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분신을 투쟁의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라는 발언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성명 내용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지난 10월 17일 고공 크레인에서 자살한 고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사이의 개인사를 언급한 부분이다.

성명에 따르면, 지난 91년 독재정권에 항거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분신이 이어졌을때, 당시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인 박창수씨의 의문사 진상조사단 위원으로 노 대통령이 참석했다. 또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1994년 한진중공업 노조원들이 선상파업을 벌였을때 당시 노조 사무국장으로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던 김주익 위원장의 변호를 맡았었다.

성명은 "인권변호사 노무현은 대통령이 됐으니 '민주화된 세상'에서 산다고 느낄지 모르나, 손배 가압류를 비롯한 노동탄압에 시달려야 하는 김주익에게 '민주화된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성명의 한 부분이다.

"지금도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있는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을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민정수석은 아마도 개인적으로 모르지 않을 것이다. '부산 한진중공업 노조'라는 존재 자체가 노 대통령이나 문 수석의 이른바 '노동운동과 연관된 경력'에서 빠질수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했을때 어쩌면 1991년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노태우 군사독재 시절 폭압에 맞서 잇단 분신과 죽음의 행렬로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1991년 바로 그해 말이다.

그 해에 한진중공업 노조 박창수 위원장이 노태우 정권의 전노협 탈퇴 공작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을 때, 노 대통령은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 자격으로 진상조사단 위원으로 활동했다. 1994년 한진중공업 노조원들이 LNG선 위에서 선상파업을 벌였을 때 고인이 된 김주익 지회장은 당시 노조 사무국장으로 이 파업을 주도한 뒤 구속됐고, 그 변호인이 바로 문재인 수석이었다. 왜 그 상황을 모르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당시 적어도 재벌의, 독재정권의 노동 탄압에 맞서 함께 발을 맞췄던 노무현변호사가 대통령이 돼 '지금은 민주화됐는데 웬 분신자살이냐, 자살해도 요구를 들어줘선 안된다'는 극단의 인식에 도달해있다는 점이다. 그 때 그 김주익은 아직도 노동현장에 가해지는 손배 가압류와 노동탄압을 못 견디다 하나 뿐인 목숨을 던지며 자살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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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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